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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터 사이언스 Cage Match

과학은 세상을 진화시키는 원동력이다. UFC 이종격투기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렉 잭슨은 수십억 달러 규모의 프로 이종격투기 업계에서 가장 크게 출세한 트레이너다.

Story by Matthew Shaer

현재 그는 미국 뉴멕시코주 샌디아산 자락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앨버커키에서 오래된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가 찾아간 날, 그는 '옥타곤'이라 불리는 철망으로 둘러쳐진 팔각형의 링에서 혈투를 앞두고 있는 제자 두 명과 훈련에 한창이었다.

그의 제자 중 한명은 바로 그 유명한 존 존스 선수. 종합격투기의 프리미어 리그라 할 수 있는 UFC(얼티밋 파이팅 챔피언십)의 라이트 헤비급 세계챔피언이다. 당시 존스 선수는 강력한 라이벌이자 과거 함께 훈련을 받았던 친구인 라샤드 에반스 선수와 챔피언 타이틀 방어전을 앞두고 있었다. 이날 잭슨은 존스의 훈련을 위해 UFC 헤비급 이종격투기 선수인 숀 조던과의 스파링을 준비했다. 경기가 시작되고 주먹과 발이 오고가자 잭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빈틈을 찾아, 존스! 절대 그 각도로 파고들게 놔둬서는 안 돼."

필자에게 이 광경은 다소 생경했지만 잭슨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이었다.

"존스! 안쪽으로 파고들란 말이야."

잭슨의 요구에 존스는 망설이는 듯 보였다. 그랬다가는 조던의 주먹 사거리에 들어가 카운터펀치를 얻어맞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잭슨은 계속 재촉했다.

결국 존스는 한쪽 주먹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오른발 로우 킥을 날렸다. 그러나 킥은 빗나갔고 조던의 폭풍 주먹질이 이어졌다. 이에 대응해 존스는 고개를 한쪽으로 젖히고 몸을 낮추는 듯싶더니 외발로 점프를 해서 플라잉 잽을 날렸다. 그리고 곧바로 조던의 복부를 니킥으로 가격했다. 이번엔 제대로 통했다. 조던이 매트 위에 나뒹굴었다.

"잘했어, 존스! 바로 그거야."

잭슨이 뒷주머니에서 노트패드를 꺼내더니 동그라미와 선으로 이뤄진 복잡한 그림을 그려나갔다. 그에 따르면 이는 일종의 게임 흐름도다.

선수들이 행한 특정 결정의 결과를 분석하기 위해 사용하는 격투 분석가들의 자료라 할 수 있다. 서클, 즉 동그라미는 대개 결정이 내려진 시점을 뜻하고 선은 결정 그 자체를 의미한다. 흐름도는 경기의 시작 순간을 알리는 서클에서 시작해 종결 서클로 끝나는데 승리 또는 패배를 상징하는 부호가 그려져 있다.

이 흐름도만 봐도 선수들의 경기 내용을 복기하는 게 가능하다. 존스 선수가 망설였던 순간의 서클을 보면 그곳에는 세 개의 선이 그려져 있 다. 발차기, 펀치, 그리고 상대방의 다리를 잡고 쓰러뜨리는 테이크 다운을 의미했다. 존스는 발차기를 택했지만 잭슨은 자신이 요구했던 파고들기가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발차기는 조던이 주먹을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는 반면 파고들었다면 선택 가능한 타격기술이 한층 다양해졌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존스는 위험하다고 느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충격 서클(damage circle)', 다시 말해 니킥을 성공한 뒤 얻은 것과 같은 유리한 상황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노트패드에는 존스가 파고들었다면 선택할 수 있었을 서클들도 표시돼 있었다.

"보세요. 니킥을 할 수도, 어퍼컷을 날릴 수도, 팔꿈치로 가격을 해도 돼요. 뭐든 다 할 수 있다니까요. 그것도 아주 효과적으로 말이죠."

17세이던 1992년 처음 격투기 체육관을 오픈한 이후부터 잭슨은 다른 이종격투기 코치들과는 달리 수학을 이용해 훈련기법을 다듬어왔다.

경기 현장이나 예전 경기의 동영상을 보며 언제, 어떻게 움직여야 효과적인지 데이터를 수집한 것. 그의 노트북은 이를 바탕으로 경기 중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상황에서 최적의 충격 서클을 찾기 위해 그가 그린 게임 흐름도로 꽉 차 있다.

"전 항상 링을 실험실처럼 바라봐요. 모든 걸 논리적으로 엄격하게 생각하려 애쓰죠."

원시적이고 거친 이종격투기의 세계에서 무언가 체계적인 질서를 찾아내려 하는 잭슨의 시도는 이종격투기 분야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을 상징한다. 과학은 격투기를 신사적 스포츠로 바꿔놓을 수는 없지만 경기를 개선하고 선수들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는 있다.

실제로 이미 이종격투기와 관련한 통계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는 전문기관들이 생겼다. 스포츠채널 ESPN에서는 현역 이종격투기 선수들이 나와 머리에서 발끝까지 센서를 장착하고 타격 강도와 스피드를 겨루고, 학계에서는 유명 선수들의 생리학적 특징에 대한 리포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이제는 선수들도 이 같은 데이터와 분석결과를 링 위에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 중 대다수는 잭슨에게 가르침을 받은 선수들이지만 말이다.

"전 항상 링을 실험실처럼 바라봐요. 모든 걸 논리적으로 엄격하게 생각하려 애쓰죠."





***
최초의 UFC 경기는 지난 1993년 7,800여명의 관객이 운집한 가운데 콜로라도주 덴버 아레나 오디토리움에서 열렸다. 이는 날이면 날마다 볼 수 있는 경기가 아니었다. 가라데 선수와 권투선수, 킥복싱 선수와 스모 선수가 맞장을 떴고 유혈이 낭자했다. 규칙은 사실상 없다시피했다.

이후 10여년에 걸쳐 콜로라도주 체육위원회 등의 노력으로 UFC는 포괄적이기는 해도 나름의 규칙이 마련됐다. 로우 블로우, 머리카락 잡기 같은 위험한 행위들이 금지된 것이다. 이는 곧 이종격투기의 부흥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모든 주정부가 경기를 불허했지만 2000년대 중반이 되자 수십개 주에서 개최를 허가했다.

UFC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미디어의 관심도 커졌다. UFC 선수 발굴 프로그램 '더 얼티밋 파이터'가 큰 인기를 끌었고, 이종격투기 선수들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표지모델로 등장했다. 그만큼 팬층도 더욱 두터워졌다.

워싱턴에 거주하는 저널리스트인 라미 게나우어도 UFC 열혈팬의 한 명이다. 그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마이클 루이스의 베스트셀러 '머니볼'을 읽으며 이종격투기와 통계학의 접목을 생각한 적이 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 책은 꼴찌를 면치 못했던 메이저리그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팀이 통계를 통해 선수들의 경기력을 평가,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는 실화에 바탕하고 있다.

"문제는 야구와 달리 이종격투기 세계에는 숫자가 없다는 거예요. 보고서든, 기사든 뭐라도 쓰려면 계량화된 숫자로 주장을 입증해야 하는 데 그럴 재료가 전무한 거죠."

그래서 2007년 그는 직접 숫자를 만들어냈다. 비디오의 슬로우 모션 기능을 이용해 UFC 경기 영상을 분석하여 선수들의 타격 시도 횟수, 타격 적중 횟수, 타격 유형, 마지막 결정타의 종류 등을 모두 기록한 것. 이 종격투기 세계에 최초의 데이터 세트가 이렇게 완성됐다. 그는 이런 데이터 수집 프로젝트를 '파이트 메트릭(FightMetric)'이라 명명하고 자신이 파악한 정보들을 분석, 통계화해서 보여줄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일부 UFC 팬들이 불만을 제기하더군요. UFC는 숫자 따위는 필요치 않다나요. 저는 거기에 동의할 수 없었어요."

결국 그는 2008년 UFC를 설득해 과거 경기를 분석해 얻은 파이트 메트릭 데이터를 TV중계방송에 활용토록 하는데 성공했다.

"프로듀서들에게 이는 너무 좋은 아이디어였죠. 장황한 말이 아닌 숫자로 과거 경기를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방송사도 여타 스포츠 경기처럼 숫자로 된 '의지할 구석'이 생겼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어요."

이처럼 높으신 분들의 사랑에 힘입어 UFC는 더 많은 그래픽과 통계 자료를 내보냈고, 이것이 이종격투기를 단순한 싸움이 아닌 진정한 스포츠로 인식시킬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후 오래지 않아 UFC와 파이트 메트릭은 공식 데이터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게나우어는 워싱턴에 사무실을 구해 본격적인 분석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현재 파이트 메트릭은 5명의 상근직원과 15명의 비상근 전문가들을 고용해 특허를 획득한 소프트웨어와 컨트롤러를 가지고 모든 이종격투기 영상을 분석함으로써 방대한 양의 데이터 세트를 생산하고 있다. 여기에는 각 선수의 타격 횟수와 유형, 적중한 타격의 횟수와 유형, 킥과 펀치의 정확성 및 타격 위치 등이 포함된다. 데이터의 생산은 거의 실시간으로 이뤄져 UFC에 제공되고 있으며 UFC는 이에 기반해 방송용, 웹사이트용 그래픽을 제작하고 있다.

로우 블로우 (low blow) 주먹이나 팔, 다리로 상대 선수의 급소를 가격하는 행위.

***
파이트 메트릭, 그리고 이 회사의 주요 경쟁사인 컴퓨스트라이크 (CompuStrike)의 데이터양이 늘면서 여러 사람들은 얼마 전부터 이 데이터들을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분석하려는 시도를 전개하고 있다. 이와 관련 게나우어는 이종격투기의 새로운 조류에 주목하고 있다. 화끈한 KO가 아닌 판정승으로 끝나는 경기의 비율이 높아졌다는 부분이다.

2007년에는 전체 경기 중 3분의 1 정도였지만 지금은 절반 가까이나 된다. 특히 경량급 경기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UFC 선수들의 기량이 평준화됐음을 알려주는 지표에요. 이는 곧 선수들이 그동안 해왔던 KO 중심의 경기 스타일과 훈련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걸 의미하죠."

올해 초 미국 데이턴대학의 경제학자 존 루지에로 박사와 트레버 콜리에 박사, 그리고 텍사스A&M대학 공학부 앤드류 L. 존슨 교수는 '이종 격투기의 공격성: 판정승 승리 확률 분석'이라는 논문을 공동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키, 연령 등 선수들의 특성과 파이트메트릭의 자료를 사용해 승률을 예측했다.

연구팀은 먼저 946경기를 분석하여 타격 시도 횟수와 적중 횟수의 비율, 녹다운, 스탠드업, 슬램 등 수십 개의 변수를 추출했다. 이후 데이터를 이진 반응 모형(binary response model)이라는 알고리즘에 입력, 선수의 어떤 특성 혹은 어떤 행동이 승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했다. 연구논문의 결론 중 일부는 놀랍다. 판정승의 경우 타격 시도 횟수가 실제 적중 횟수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공격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심판들에게 선수의 적극성을 각인시키거나 타격이 적중하지 않았음에도 적중한 것으로 혼동할 확률을 높여준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정확한 이유야 어찌됐든 선수들이 새겨들어야할 내용은 명확하다. 펀치와 킥을 많이 날릴수록 승률도 올라간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게나우어는 경기 정보의 수집에 사용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계속 발전시켜 왔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데이터 수집 수단이 발전할수록 데이터는 풍부해지고, 분석은 정밀해지며, 그 결과는 한결 유용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이종격투기 트레이너들은 현재 데이터 통계 분석에 힘입어 돌려차기나 플라잉 펀치 같은 공격의 경우 니킥이나 암 트라이앵글 초크 등의 큰 공격보다도 오히려 효과가 적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또한 어깨꺾기와 그 이후의 팔 꺾기(암바)로 이어지는 공격기술은 여전히 성공률이 높다는 것도 알고 있다. '직감과 유행보다는 데이터와 검증된 효과에 근거해야 한다'는 파이트메트릭 웹사이트의 광고 카피처럼 이들은 다양한 데이터들을 통해 더 나은 경기를 설계하려 하고 있다.

슬램 (slam) 상대방을 들어서 매트를 향해 강하게 매다 꽂는 이종격투기 기술.

암 트라이앵글 초크 (Arm-Triangle Choke) 팔로 상대방의 머리와 어깨를 감아서 목을 조이는 이종격투기 기술.

연구자들은 UFC의 경기를 분석, 펀치와 킥을 많이 날릴수록 판정승의 승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데이터의 승리
지난 4월 22일 벌어진 존 존스[적색 유니폼] 선수와 라샤드 에반스 선수의 UFC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 매치. 파이트 메트릭의 데이터를 보면 존스의 압도적인 경기력이 한 눈에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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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와 검증된 효과는 잭슨이 수년 동안 강조해온 가치이기도 하다.

그는 특정 무술이 다른 무술보다 우월하다거나 특정 이종격투기 구루의 훈련법을 맹신하지 않는다. 그의 훈련방식은 평범이라는 단어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처음 체육관을 열었을 때부터 다른 코치들처럼 기존의 격투기 스타일을 따르는 대신 합기도, 가라테, 주짓수, 무에타이, 킥복싱, 권투 등 현존하는 모든 무예를 실험해 봤다.

"저는 지극히 실증적인 증거를 찾아 헤맸어요. 이 증거에 따라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실전에 적용했죠. 그렇게 해서 효과가 없는 것은 버리고, 실전에 써먹을 수 있는 것들만 남겼어요. 이것이야말로 지극히 순수한 형태의 과학이 아닐까요."

잭슨은 지금도 동급 선수들 간의 연습경기를 한 번에 10회에서 15회, 심지어 20회까지도 치른다. 그때마다 링 근처에 노트패드를 들고 서서 매 순간마다 선수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동작과 기술을 부지런히 기록한다. 그는 특정 기술이나 동작에 대한 호불호가 전혀 없다. 데이터 분석에 의해 어떤 기술이 이제는 충분한 데미지를 입히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지체 없이 그 기술을 가르치지 않을 뿐이다.

1990년대 초반 잭슨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집대성해 레슬링과 유도, 주짓수, 킥복싱 등이 융합된 '가이도주츠(Gaidojutsu)'라는 무술을 직접 창안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혼합 무술은 극히 드물었다. 대다수 선수들은 하나의 무술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잭슨의 제자들은 여러 종류의 무술 속에서 자기에게 꼭 맞는 기술들만 모아 믹스앤매치 시키는 것에 대단한 만족감을 느꼈고, 잭슨으로부터 사사받기 위한 선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제자 중 일부는 잭슨을 설득해 맨주먹으로 싸우는 시합에 참가, 기존 선수들을 초토화시키기도 했다.

"UFC가 생겼을 때 저는 완전히 승리에 중독돼 있었어요. 하지만 머지 않아 깨달았죠. UFC와 맨주먹 경기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요."

그는 가이도주츠를 더 다듬어야 함을 직시하고 주변에서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뉴멕시코대학의 수학강사였던 짐 더들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이후 더들리는 수학과는 담을 쌓고 있었던 잭슨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이종격투기에 어떻게 적용시킬지를 함께 고민했다.

"잭슨이 맨 처음 '프랙탈'에 대해 물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는 '게임이론'을 알려달라고 했어요. 그때만 해도 도대체 그것이 이종격투기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몰랐어요. 잭슨이 이유를 설명했지만 이해가 안 되기는 매한가지였죠. 하지만 결국 깨달았죠. 수학이 생각보다 아주 놀라운 주제에 적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요."

주지하다시피 잭슨이 이 수학 개념들을 통해 알고자 했던 것은 옥타곤에서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동작과 위치였다.

"사이드 마운트풀 마운트처럼 UFC 경기 중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포지션들이 있어요. 저에게 그 동작은 게임 흐름도의 선으로 보이더군요. 그래서 생각했죠. 어떤 포지션의 타격 효과가 더 좋을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포지션은 없는지, 어떤 포지션이 가장 빨리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말이에요."

쉽게 말해 잭슨은 선수나 코치의 순간적 직감이 아닌 수학과 논리학에 기반한 새로운 전법을 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속적인 데이터 확보가 중요했다. 때문에 다른 코치들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모으는 동안 그는 항상 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옥타곤 근처를 떠나지 않는다.

현재 그가 보유하고 있는 프로 이종격투기 선수들은 챔피언과 유망주를 합쳐 60여명이나 된다. 그러나 이들이 스파링을 할 때 그 곁에는 어김없이 잭슨이 노트패드를 들고 서 있다. 스파링이 없을 때는 아이폰과 TV, 노트북으로 과거 경기 동영상을 본다.

체육관 한켠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그가 손으로 작성한 승리의 기록들과 급하게 그린 스파링 경기의 게임 흐름도 등이 잔뜩 굴러다니고 있었다. 이 모든 기록들 속에는 유용한 데이터가 숨어 있다. 이들을 분석하면 경기 중 특정 시점마다 가장 적합한 움직임을 알 수 있고, 상대 선수의 과거 경기 기록을 통해 어떤 공격과 동작을 취할지 예견할 수 있다. 심지어 자신의 선수와 맞붙었을 때 경기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거의 정확히 추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는 평범한 트레이너들이 결코 알려주지 못 하는 정보임에 틀림없다.

프랙탈 (fractal) 특정 구조를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되풀이 되는 구조. 단순한 구조가 무한히 반복되며 복잡하고 묘한 전체 구조를 만든다.

게임이론 (game theory) 이해관계가 상충된 상태에 있는 집단의 행위를 수학적으로 다룬 이론.

사이드 마운트 (side mount) 측면에서 상대방의 가슴을 자신의 가슴으로 누르고 있는 상태. 풀 마운트(full mount)는 누워있는 상대의 배나 가슴에 말을 타듯이 올라 앉은 자세를 말한다.

"승리로 가는 서클 같은 것은 그려본 적도 없어요. 제게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해요. 그건 다른 과학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충격 서클의 순간
경기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다양한 공격을 효과적으로 구사할 최적의 위치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
지난 4월 22일 존스 선수는 에반스 선수에 맞서 챔피언 벨트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사실상 압승이었다. 두 선수는 한때 절친이었지만 지금은 UFC에서 유명한 앙숙이다. 경기 전 미디어 데이에서도 상대방에 대해 엄청난 독설을 퍼부어댔다. UFC의 표현을 빌리면 이번 경기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끝장 대결이었다.

옥타곤 위에서 맞선 두 사람의 경기는 천천히 진행됐다. 경기의 중요성을 인식한 듯 방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에반스는 잽을 날려댔고 존스는 옆으로 살짝 피하며 몸을 앞으로 내던지며 주먹을 날리는 일명 '슈퍼맨 펀치'와 니킥으로 반격했다.

1라운드가 끝나고 존스가 코너로 오자 빨간 모자를 쓴 잭슨이 그를 맞았다. 그의 시선은 정확했다. 에반스가 방어력이 뛰어나고 펀치가 빨라서 존스가 선택할 수 있는 공격의 폭을 줄이고 있음을 파악하고 머릿 속에서 게임 흐름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서클에서 존스는 펀치를 날려도 되지만 에반스는 펀치 대부분을 막아내는 만큼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더 많은 선택의 폭을 가진 서클로 이동해야 했다. 이윽고 최적의 서클이 떠올랐다. 에반스의 두 손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위치로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큰 것 한방이 가능했다.

잭슨은 자신의 분석 결과를 존스에게 전했고, 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2라운드가 마무리될 즈음, 존스는 잭슨의 조언을 따라 양손을 벌리고 팔을 길게 뻗는 상태로 에반스를 상대했다. 이에 맞서 에반스도 팔을 뻗으면서 마치 짝짜꿍놀이를 하는 듯한 모습이 연출됐다. 바로 잭슨이 원하던 서클이었다.

실제로 에반스는 아주 잠시 허점을 노출했다. 존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에 오른쪽 팔꿈치로 에반스를 가격하고는 왼쪽 팔꿈치, 다시 오른쪽 팔꿈치로 연속 타격을 이어갔다. 에반스는 흔들렸고 존스는 앞으로 나아가며 니킥과 레프트 훅을 날렸다.

3라운드에 들어서도 에반스는 계속 수세에 몰렸다. 한쪽으로 몸을 돌리면 그곳에 존스가 있었다. 다른 쪽으로 돌려도 어느새 다가온 존스가 공격을 퍼부었다. 급기야 4라운드 들어 존스는 에반스의 복부에 강력한 니킥을 꽂아 넣었고 1만5,000여명의 관중은 일제히 우레와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아쉽게 KO로 연결되지는 아니었지만 존스는 4라운드 종료를 알리는 공이 울린 후 판정에서 만장일치로 승리했다.

심판들의 판정이 옳았음은 파이트 메트릭의 수치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데이터를 보면 존스는 총 116회의 타격을 적중시켰고 그중 105회는 의미 있는 데미지를 가했다. 반면 에반스는 49회의 타격만 적중했고 유효 타격은 45회에 불과했다. 옥타곤에서도, 타격에서도 두 배 정도 압도한 경기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는 분명 존스가 최적의 충격 서클을 지속적으로 찾은 덕분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며칠 후 필자는 잭슨에게 전화로 축하인사를 건넸다.

그는 이미 경기 분석을 완료하고 다음 경기에 접목할 전략을 구상하고 있던 중이라고 했다. 물론 잭슨도 다른 트레이너들이 자신의 분석법을 도입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그가 이종격투기 세계에서 왕좌를 유지하려면 그만큼 더 열심히 연구해야 한다. 전화를 끊기 전 필자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당신에게 승리는 얼마나 중요한가요?"

한동안 침묵하던 그는 이렇게 답했다.

"승리로 가는 서클 같은 것은 그려본 적도, 생각해 본적도 없어요. 이기고 싶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선수들에게 가장 많은 선택의 여지가 있는 서클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라고 주문합니다. 제게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해요. 그건 다른 과학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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