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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카메라 부흥시킨 후지필름의 성공방정식

후지필름이 즉석카메라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고 있다. 즉석카메라의 대명사인 폴라로이드는 사업을 포기했지만 후지필름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제헌 기자 azzuru@hk.co.kr

"찰칵, 지이잉~." 즉석 인하 카메라(이하 즉석카메라)가 가장 매력적일 때는 바로 사진 찍은 직후다. 가느다란 기계 소리가 나오며 카메라 몸체에서 인화지가 나오는 걸 보고 있으면 묘한 기대감이 피어 오른다. 하얀 인화지에 이미지가 맺혀 오르는 짧은 순간, 어떻게 찍혔을까, 눈은 감지 않았을까 같은 궁금증이 솟아 오른다. 셔터를 누른 순간 짱짱한 화질로 사진을 디스플레이해주는 디지털카메라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후지필름이 최근 새로운 즉석카메라를 출시했다. 인스탁스 미니8이다. 기존 제품보다 사용하기 쉽게 만들어진 인스탁스 미니8은 후지필름이 만든 기존 즉석카메라 가운데 가장 크기가 작고 가볍다. 배터리를 제외한 무게가 307g. 크기는 가로 116mm, 세로 118.3mm, 두께 68.2mm다. 노출 조정도 수동에서 반 자동으로 업그레이드했다. 장소와 환경에 따라 카메라 스스로 빛의 양을 판단해 LED로 촬영 모드를 알려준다. 촬영자는 카메라가 알려주는 모드에 다이얼을 맞추고 셔터만 누르면 된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능도 추가했다. 후지필름 인스탁스는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즉석카메라 브랜드다. 후지필름은 1995년 인스탁스라는 브랜드로 즉석카메라 시장에 처음 진입했다. 처음엔 폴라로이드라는 거대한 산을 넘지 못했지만, 폴라로이드가 시장에서 철수 한 뒤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흔히들 즉석카메라를 폴라로이드 카메라 라고 부른다. 1946년 미국 물리학자이자 발명가인 에드윈 랜드가 촬영 후 즉석에서 인화된 사진을 보여주는 ‘폴라로이드 모델 95’를 만들어 출시한 것이 시초였다. 이후 즉석카메라는 곧 폴라로이드라는 공식이 자리잡았다.

폴라로이드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소비자를 폴라로이드로 이끈 건 실시간성이었다. 찍은 사진을 몇 초 뒤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게다가 즉석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세상에 한 장만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재미에 흠뻑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폴라로이드는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디지털카메라가 지닌 파괴력이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친 곳이 폴라로이드였다. 1980년대에 출현한 디지털카메라는 ‘즉석 확인’이라는 폴라로이드의 매력 포인트를 완벽하게 무력화시켰다. 하지만 위기에 직면한 폴라로이드는 실적 악화의 원인을 환율 불안, 남미 시장 고전 등 지엽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새로운 기술의 부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위기에 몰린 폴라로이드는 2006년 즉석카메라 생산, 2008년에는 필름 생산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폴라로이드는 즉석카메라에서 손을 떼면서 ‘필름을 인화하는 사진기 시장에는 미래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폴라로이드가 비즈니스 무대에서 퇴장하면서 즉석카메라 시장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무성했다. 하지만 이런 시장 전망을 보기 좋게 뒤엎은 기업이 있었다. 즉석카메라 시장에 후발주자로 나섰던 후지필름이었다. 후지필름은 경쟁사가 떠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인스탁스는 폴라로이드가 즉석 카메라 사업을 중단한 2006년엔 45%, 이듬해인 2007년엔 30%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다. 강신황 한국후지필름 마케팅 팀장은 말한다. “후지필름은 1995년 인스탁스 첫 발매 후 즉석카메라 시장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내다봤습니다. 아무리 기술 발전이 이뤄져도 아날로그 감성에 대한 욕구와 수요는 반드시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혁신적인 마케팅 방법으로 사업을 추진했어요.”

후지필름은 여성들이 크고 무거운 전문가용 카메라에 부담을 느낀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또 즉석카메라가 트렌드를 거스를 수 있다는 점도 파악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재질로 만든 장난감 같은 카메라 속은 필름을 끼워 넣는 자리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아날로그 카메라처럼 재인화할 수도 없고, 디지털 카메라처럼 복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즉석카메라는 초점을 맞출 필요도 없고 셔터 속도를 바꿀 필요도 없다. 그저 뷰파인더에 찍고 싶은 것을 담으면 끝이다. 가볍고 조작이 쉬운 즉석카메라는 여성에게 더 맞는 제품이라고 판단을 내린 후지필름은 마케팅 타깃을 여성으로 변경해 각종 판촉 활동을 펼쳤다.

인스탁스가 국내에 첫선을 보인 건 1999년이었다. 당시엔 디지털 카메라의 인기에 눌려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한국후지필름이 그때 남성 일변도였던 고객 타깃을 20~30대 여성으로 바꾸고 즉석사진기를 액세서리 같은 팬시상품으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본사에 제출했다. 강 팀장은 말한다. “한국 여성의 감성에 맞는 제품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출시했습니다. 디자인도 여성 취향으로 둥글게 바꾸고 다양한 캐릭터도 도입했어요. 판매점도 카메라용품점 대신 여성들이 자주 찾는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대형서점과 대학로 액세서리 판매점, 롯데마트 등으로 다변화했죠.”

현재 한국은 세계에서 즉석카메라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 중 하나다. 후지필름이 새로 나온 인스탁스 미니8을 일본보다 한국에 먼저 선보인 이유다. 후지필름이 지난해 전 세계에 판매한 인스탁스 140만여 대 중 20%인 28만 대를 한국 소비자들이 구매했다. 지금까지 한국 시장 누적 판매 수는 160만 대에 달한다.

2005부터 2012년까지 한국 시장 연평균 성장률이 39%에 이를 정도로 한국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강 팀장은 덧붙인다. “한국 소비자들은 ‘세상에서 단 한 장밖에 없는 사진’, ‘한 번만 찍을 수 있는 사진’, ‘빨리 인화할 수 있는 사진’이라는 점에서 특히 즉석카메라를 선호하고 있어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도 즉석카메라 시장 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인스탁스는 놀랍게도 스마트폰 판매 성장률과 비슷한 성장 곡선을 그리며, 즉석카메라 시장을 전 세계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스마트폰 세계 시장 연평균 성장률(CAGR·2008년~2012년)이 30%인데, 인스탁스의 연평균 성장률(CAGR, 2005년-2012년)은 그보다 높은 33%다. 이에 따라 인스탁스의 판매량(2012년 세계 시장 200만 대 판매 목표)도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이윤하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말한다. “즉석카메라는 성능이 월등히 뛰어난 디지털 카메라와 함께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전시·판매 됐기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후지필름은 즉석카메라가 추억을 기록하는, 이 세상의 단 한 장뿐인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기기라는 가치를 포착했어요. 고객들이 원하는 가치를 생각하고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강조한 덕분에, 사장되고 있다고 여겨졌던 즉석카메라 시장을 새로 만들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인스탁스는 아날로그 시절의 감성을 자극하는 일 외에도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단순한 감성 마케팅이 아닌, 끊임없는 품질개선으로 인기가 지속되게 만들었다. 피사체와의 거리에 따라 광량을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플래시와 접사기능 등을 통해 디지털세대 소비자들이 보다 친근하게 즉석 카메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결과물이 제공하는 아날로그적 만족감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윤하 연구원은 인스탁스의 성공 요인을 이렇게 분석했다. “시장은 다양하고 고객의 바람은 무한합니다. 디지털화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후지필름은 그에 좌절하기보단 아날로그적 향수를 그리워하고 디지털이 제공하지 않는 편리함을 주기 위해 고민을 멈추지 않았어요. 과거 소비자는 제품을 구매할 때 기능(기술)을 중시했습니다. 하지만 개성, 가치 중심의 소비문화가 형성되면서 구매자의 심리를 꿰뚫는 감성(사람)이 기술만큼 구매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꾸준한 판매량이 보여주듯이, 단 하나의 원본만을 갖는 즉석카메라의 매력은 여전해 보인다. 이미지 홍수 시대에도 원본 한 장이 전부인 즉석카메라를 찾는 까닭은 촬영자의 실수마저도 필름 안에 고스란히 담아 추억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강 팀장은 카메라 시장이 디지털로 급격하게 전환된 건 맞지만, 보다 인간적인 느낌의 아날로그 카메라에 대한 수요와 필요성 또한 분명히 지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폰 보급 이후 이미지를 촬영하는 횟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추억을 기록하고 간직한다’라는 문화적인 측면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인스탁스는 종이 인화의 근본적인 속성을 강조해 추억을 즐겁게 간직해 주는 제품으로 남을 것입니다.” 사진은 인화된 종이로 봐야 제맛이라는 후지필름의 생각이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시장에서 먹힐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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