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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음료가 품은 에너지의 실체

Do Energy Drinks Really Give Me Energy?

언제부터인가 우리 곁에 자리 잡은 에너지 음료들. 일 권하고 잠 안 재우는 사회 풍조 탓에 때때로 마셔주지 않으면 촌놈 내지는 게으름뱅이 취급을 받는 분위기도 알게 모르게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에너지 음료는 과용할 경우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려는 당신을 위해 에너지 음료의 숨겨진 속살을 과학의 시선으로 해부한다.

잠 귀신 퇴치 아이템

몬스터, 레드불, 핫식스 등의 상품명으로 유명한 에너지 음료는 주로 카페인 성분의 각성제를 다량 함유한 음료다. 정신적·육체적 각성상태 유지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지면서 야근하는 직장인이나 시험기간을 맞은 학생들의 잠 귀신 퇴치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제품마다 탄산가스의 혼입 여부는 차이가 있지만 대개 다량의 카페인과 각성제 성분이 들어 있으며, 설탕을 위시한 감미료와 허브 추출물, 아미노산 등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포 로코Four Loko)’라는 제품은 카페인과 각성제에 알코올까지 혼합한 채 에너지 음료로 판매되고 있다.

물론 커피나 녹차, 콜라 등 카페인을 함유한 음료들을 마셔도 사람에 따라 에너지 음료와 유사한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제조목적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에너지 음료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과거 이 같은 에너지 음료 시장은 가히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했다. 우리나라만 해도 2011년 8월 세계 판매율 1위를 자랑하는 레드불이 시판되더니 롯데칠성음료의 핫식스와 코카콜라의 번인텐스, 그리고 몬스터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크게 늘었다. 시장확대에 발맞춰 이제는 음료업체를 넘어 제약회사와 제과점, 커피전문점들도 이 시장에 뛰어 들면서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졌다.

시장조사업체 AC닐슨에 따르면 2011년 1월 국내에서 판매된 에너지 음료는 총 2억5,000만원어치였지만 단 1년만인 2012년 2월에 이르러 판매량이 30억원으로 12배나 뛰어올랐다. 구매자의 41%는 20대였으며, 10대와 30대가 각각 23%, 21%로 그 뒤를 이었다. 40대는 15%의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시장규모도 2011년 300억원에서 2012년 1,000억원을 돌파했다. 2012년말 카페인 논란이 벌어지며 지난해에는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말이다.

카페인에서 인삼까지

이런 에너지 음료의 주요 성분은 대략 8종을 들 수 있다. 그 첫 번째는 각성의 대명사인 카페인. 에너지 음료라면 빠질 수 없는 ‘약방의 감초’다. 다만 각성효과는 체중이나 성별, 카페인 민감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에너지 음료를 1캔만 마셔도 정신이 번쩍 든다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카페인의 항산화제 성분을 적절한 양으로 섭취할 경우 알츠하이머병 예방효과가 있다고 하며, 운동지구력 증대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그와는 반대로 과량복용 시에는 불면증과 심계항진을 초래된다.

에너지 음료의 또 다른 주성분인 타우린이다. 타우린은 아미노산의 일종으로 피로회복, 혈압 안정, 뇌졸중 예방 등의 생리기능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건강한 성인의 경우 체내에서 필요한 양이 합성되지만 중환자나 유소아들은 음식을 통해 부족분을 섭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일부 제조사들이 타우린의 운동능력 증대효과를 선전하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는 없다. 대량 섭취했을 때 발생하는 악영향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에너지 음료에 함유된 240㎖당 1,000㎎ 정도의 함량은 안전 기준치 이내다.

아마존 부족들이 피로회복과 각성을 위해 먹는다는 과라나도 들어있다. 과라나의 씨앗은 모든 식물의 씨앗 가운데 카페인 함량이 가장 높다. 그래서 효능과 위험성, 부작용이 카페인과 동일하다.

비타민 B 또한 거의 모든 에너지 음료의 첨가제다. 정신력과 체력 증진 좋다고 선전되고 있다. 그러나 비타민 B가 결핍되면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이 섭취한다고 힘이 세지거나 피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식품영양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상적인 식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충분한 비타민 B를 섭취하고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 만일 에너지 음료 등에 의해 필요 이상의 비타민 B가 체내에 유입되면 소변으로 배출된다. 대다수 비타민 B는 해롭지 않지만 비타민 B6는 하루 100㎎을 초과해 섭취하면 건강에 해롭다. 다행히 에너지 음료의 첨가량은 240㎖당 2~3㎎ 정도다.

이외에 당의 일종인 글루쿠로노락톤(glucuronolactone), 에너지 대사에 관여하는 카르니틴(carnitine), 인삼, 은행잎 추출물을 에너지 음료에서 접할 수 있다. 덧붙여 슈가프리 제품을 제외한 모든 에너지 음료에는 240㎖당 30g 수준의 당분, 즉 열량이 들어 있다. 칼로리로 환산하면 약 100칼로리가 된다.







청소년과 에너지 음료

주지하다시피 에너지 음료의 주 소비자는 젊은층이다. 성장기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에너지 음료를 자주 마셔도 문제가 없을까. 2011년 미국 마이애미대학의 사라 M. 자이페르트 박사팀이 발표한 논문을 보면 에너지음료의 주성분인 카페인을 과량 섭취하면 심장질환자의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 또한 아동과 청년층에서 많이 나타나는 유전성 심장병인 이온 채널병과 비후형 심장근육병증도 악화시켜 고혈압, 실신, 부정맥, 급사의 위험을 높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에너지 음료의 과용은 과도한 칼로리 섭취로 이어져 혈압, 혈당, 체질량지수(BMI)를 높이며 칼슘 결핍, 치아 손상, 우울증, 자존감 저하 등이 발현될 수 있다. 여기에다 에너지 음료에 함유된 당분과 카페인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식후 고혈당 증세를 유발, 아동 당뇨병에 걸릴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또 사춘기 초기에는 뼈에 축적되는 칼슘의 양이 최대치에 달하는데 이때 카페인을 다량 섭취하면 칼슘 흡수를 방해한다.

이와 관련해 미국 버팔로대학 약물중독연구소의 캐서린 밀러 박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연구를 수행했다. 에너지 음료 섭취가 미국 대학생들의 문제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인종적 측면에서 분석한 것. 실험은 총 602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것으로 이뤄졌으며 응답학생의 남녀 비율은 52대 48, 백인과 흑인 비율은 87대 13이었다.



그 결과, 한 달에 6회 이상 에너지 음료를 마시는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알코올 관련 문제를 안고 있는 비율이 2배나 됐다. 흡연, 약물 남용, 심각한 싸움 등 위험 행동 비율은 3배에 육박했다. 특히 이 현상은 흑인 학
생에 비해 백인 학생에게서 더 확연하게 드러났다.



알코올 + 에너지 음료

앞서 언급했듯이 에너지 음료 중에는 알코올이 함유돼 있는 제품도 있다. 그리고 술에 취하지 않기 위해, 혹은 더 많은 술을 마시기 위해 술과 에너지 음료를 섞어 먹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매스컴을 통해 여러 번 언급됐지만 이런 행동은 결코 건강에 좋지 못하다. 최근 발표된 한 연구에 의하면 알코올을 에너지 음료와 함께 섭취할 경우 알코올과 카페인, 타우린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면서 급성신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타우린 4,600㎎과 카페인 780㎎이 들어 있는 알코올 함유 에너지 음료와 보드카를 섞어서 마신 사람이 급성신부전을 일으킨 사례가 있다. 연구자들 입장에서 보면 에너지 음료의 성분별 분석에 더해 각각의 성분이 상호작용하면서 일으킬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과제로 제시된 셈이다.

2010년 미 식품의약국(FDA)에서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알코올 함유 에너지 음료 제조사에 해당제품이 공중 보건에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알리는 한편, 카페인 성분을 계속 함유시키면 판매중단 조치를 내리겠다며 경고했다.

군인들의 에너지 음료 사랑

군인은 학생들만큼 에너지 음료를 많이 마시는 집단이다. 군대에서 가장 부족한 것 중 하나가 수면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훈련이 아닌 전장에 실전 배치된 군인이라면 두말할 나위도 없다.

미국 월터리드 육군연구소(WRAIR)가 지난 2010년 제7 합동 정신보건자문팀의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아프가니스탄에서 항구적 자유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미군의 44.8%가 하루 1회 이상 에너지 음료를 섭취하고 있었고, 13.9%는 섭취량이 하루에 3회 이상이었다.

병사들의 연령이나 계급에 따른 섭취량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하루 3회 이상 섭취자는 다른 병사와 비교해 평균 야간수면 시간이 4시간 이하인 경우가 많았으며, 수면장애를 호소하거나 경계근무에서 조는 비율도 높았다.

이에 WRAIR은 병사들에게 에너지 음료를 과용하면 수면장애와 업무능력 저하 같은 부작용을 겪을 수 있음을 교육하고, 전투상황에서는 에너지 음료 섭취를 자체시킬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에너지 음료 제조사들이 피로 감소 및 운동 능력 증대 효과를 주장하면서 운동선수들도 주요 고객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희박한 주장이다. 작년 7월 미국 크레이튼대학과 콜로라도대학 공동연구팀은 대학생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A그룹에는 카페인과 타우린이 함유된 슈가프리 레드불을, B그룹에는 카페인만 들어있는 슈가프리 레드불을, 그리고 대조군의 C그룹에는 카페인을 완전히 제거한 레드불을 마시도록 하고 1시간 후에 운동능력을 측정했다. 하지만 연구팀은 세 그룹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2012년 유타주립대학 G. 와그너 박사팀이 대학풋볼선수들의 달리기 능력에 에너지 음료가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에너지 음료를 마신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의 차이는 사실상 없었다.



과유불급의 교훈

에너지 음료의 안전성은 이미 오래전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지난 2001년 당시 18세의 아일랜드 운동선수 로스 쿠니가 레드불 4캔을 마시고 농구를 하다가 사망하면서 레드불 판매 승인 문제가 유럽 사법재판소에 회부됐다.

이후 영국도 레드불의 안전성을 조사했으며, 아동과 임산부의 섭취를 금지시켰다. 2012년 11월에는 체첸 공화국 람잔 카디로프 대통령이 에너지 음료 판매 금지법안 제정을 정부에 촉구했는데, 2012년 한 해 동안에만 에너지 음료로 인해 1명이 숨지고 530명이 입원했던 게 그 이유였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에너지 음료에 법적 규제를 두는 나라도 생기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는 에너지 음료의 카페인 함량을 1ℓ당 최대 320㎎으로 제한했고, 과라나를 함유한 모든 식품에 카페인과의 동반 섭취를 경고하는 문구를 표시토록 했다. 2012년 6월에는 라트비아 국회가 18세 미만 청소년에게 에너지 음료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에너지 음료는 기능성 음료에 가까운 물건이다. 제조사들이 주장하는 효능도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많으며, 오남용을 하면 탈이 날 수 있다.

적법한 안전인증 절차를 거쳐 판매되고는 있지만 그 안전함도 어디까지나 제조사와 정부가 제시한 안전기준 내에서 섭취했을 때에만 보장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에너지 음료 없이 살 수 없다면 반드시 적정량을 섭취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다른 알코올 음료나 카페인 음료와 섞어 마시는 행위, 더 나아가 속칭 ‘붕붕음료’ 같은 강력한 각성제로 업그레이드시켜 섭취하는 행위는 스스로 건강을 해치는 행동임을 직시해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효과가 확실한 에너지 음료는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서는 살 수 없다. 그 음료는 다름 아닌 충분한 수면과 적절한 식사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야생동물들은 에너지 음료 따위를 마시지 않아도 늘 힘이 넘치지 않은가.

항구적 자유 작전 (Operation Enduring Freedom) 9.11 사건 이후 미국이 전개한 보복작전. 일반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작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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