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로베르토 아스콜리 ‘임페리얼 토바코 그룹(Imperial Tobacco Group, 이하 ITG)’ 아태지역 본부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ITG는 세계 4위 담배업체로, 프리미엄 브랜드인 ‘다비도프’를 선보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2010년부터 KT&G가 ITG에게 로열티를 지급하고 기술을 전수받아 ‘다비도프’를 제조·판매하고 있다. KT&G는 1990년대 말 90%에 육박하던 시장점유율이 2009년 말 60% 초반까지 하락했다. 담배 개비당 타르가 6mg 이상 들어간 고타르 담배 시장에서 젊은층의 이탈이 심해진 게 시장점유율 하락 원인이었다. KT&G는 필립모리스(말보로)와 BAT(던힐) 등 수입 담배가 주도하고 있는 고타르 담배시장의 대항마로 ‘다비도프’를 선택했다. 이전까지 고수했던 토종브랜드 전략을 포기하고 외국 브랜드 도입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로베르토 아스콜리 본부장은 유니레버, 심라이즈 같은 생활소비재 기업을 거치며 마케팅 분야에서만 30년 가까이 일해 온 인물이다. 포춘코리아가 KT&G의 경영진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로베르토 아스콜리에게 국내 담배시장의 특징에 대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뤄졌다.
하제헌 기자 azzuru@hmgp.co.kr
Q. ITG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임페리얼 토바코 그룹(ITG)은 1901년 영국에 설립된 회사입니다. 전 세계 49개 공장에서 담배를 생산하는데, 연 평균 판매량이 3,300억 개비에 달합니다. 시장점유율에선 세계 4위죠. 2013년도 그룹 매출총액은 약 51조 원, 담배부문 총 이익은 약 12조 원에 육박합니다. 주력브랜드로는 다비도프(Davidoff)를 비롯해 굴와즈(Gauloises), 웨스트(West), 파커&심슨(Parker&Simpson)이 있습니다. 다비도프 외 주력 브랜드는 한국 소비자에게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유럽에서는 높은 판매량을 보이고 있습니다. ITG는 그 동안 유럽시장에 주력해왔는데, 2010년 ‘다비도프’ 한국 출시를 기점으론 아시아 시장도 공략 중 입니다.
Q.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이유는 뭔가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아시아, 러시아, 터키, 이탈리아 시장 중 한국은 가장 특별한 곳입니다. KT&G와 브랜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해 한국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이죠. 현재 ‘다비도프 클래식’과 ‘다비도프 리치블루’ 2종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올해가 시장 출시 5년차입니다. 향후 한국시장에서 펼칠 공격적인 마케팅과 새로운 패키지 도입에 대해 KT&G와 논의하고자 방문했습니다. 8월 말부터 글로벌 디자인의 ‘다비도프 클래식’과 ‘다비도프 블루’를 한국시장에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오리지널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고, 더욱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소비자를 만나게 되는 겁니다. 그간 한국 소비자가 애용하던 ‘다비도프 클래식’은 패키지 디자인을 바꾸고 맛을 더욱 순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존 ‘다비도프 리치블루’ 역시 패키지 색상을 바꾸고 제품명도 ‘리치’를 생략한 ‘다비도프 블루’로 수정했습니다.
Q.BAT나 필립모리스처럼 한국시장에 직접 들어오지 않고, KT&G와 라이센싱 계약을 통해 진출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ITG가 글로벌 시장에서 4위, 그 뒤를 이어 KT&G가 5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세계에서 주목하는 기업이죠. 특히 한국시장 내 KT&G의 성과는 업계에서 회자될 만큼 훌륭한 수준입니다. 한국 애연가들 중 60%가 KT&G 제품을 구매할 정도로 한국 소비자의 기호를 가장 잘 아는 것이 KT&G이니까요. ITG의 다비도프가 한국시장에 진출할 때 KT&G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첫 인연을 맺은 ITG와 KT&G의 파트너십은 앞으로 계속될 예정입니다.
Q. ITG가 한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다비도프 시가렛과 다비도프 시가는 어떤 관계인가요? ITG가 다비도프에서 브랜드를 빌려서 사용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100년 전통의 다비도프는 브랜드 설립자인 ‘지노 다비도프(Zino Davidoff)’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담배, 시가, 향수, 커피 등 다비도프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는 기업이 모두 각기 다른 회사이고, 서로 관련도 없습니다.
Q. 한국처럼 현지업체와 손잡고 진출한 국가가 있나요?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진출한 경우는 한국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한국시장 초기진입은 성공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KT&G의 한국시장 내 노하우가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글로벌 담배회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특정국가에 진입하곤 합니다. ITG도 2003년 독일 림츠마(Reemtsma)와 합병으로 프리미엄 브랜드 다비도프를 인수했고, 2008년엔 프랑스 알타디스(Altadis)와 합병하면서 프랑스 국가대표 담배 브랜드인 굴와즈(Gauloises)와 지탄(Gitanes)을 인수했습니다. 이 같은 합병이 기존에 진출해있던 국가에서의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그것이 바로 마케팅의 성공요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ITG가 직접 수출·판매하는 국가와 라이센싱을 통해 판매하는 국가를 비교해볼 때, 마케팅활동의 한계점이나 성과 차이는 없습니까?
ITG가 직접 유통하는 국가와 한국을 비교했을 때 큰 차이는 없습니다. 각 국가마다 소비자들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국가별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안에서도 경쟁사들마다 조직운영을 달리하고 있지만, 이것이 성과에 큰 영향을 주는 건 아닙니다. 영업부를 조직 내부에 두고 있는 KT&G, BAT, JTI와 지역별 대리점 체제로 운영하고 있는 필립모리스 사이에는 성과차이가 거의 없죠. 오히려 KT&G가 국내 점유율 1위, 필립 모리스가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시장 진입과 성공에 가장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건 진출방식 보다는 브랜드의 역량 강화 활동과 장기적인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Q. 한국시장에서 다비도프의 판매실적이 저조하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ITG의 기대치와 비교할 때 만족할만한 수준인가요?
OECD 가입 국가 중 한국의 담배가격이 가장 저렴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담배가격과는 반비례로 한국소비자의 눈높이는 매우 높습니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이유로 무작정 구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프리미엄 담배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입니다. 다비도프는 100년 역사를 가진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로, 한국소비자들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하고 소비자에게 인식되기까지는 일정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ITG는 잘 알고 있습니다. 160개국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고 있으니까요. 한국에서의 실적은 나쁘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2013년 한국 내 다비도프 총 판매량은 약 2억 7,000만 개비로, 매출액 337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경쟁사들이 한국에
첫 진입했을 때와 비교하면 손색없는 기록입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론 “늘 배가 고프다”로 표현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국내 소비자들은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다비도프의 제품 길이가 달라 ‘가짜’라는 편견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알고 있는지요?
다비도프가 내놓고 있는 많은 담배 중 세계시장에 가장 먼저 선보였고, 면세점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에디션은 93mm 길이의 제품이긴 합니다. 하지만 다른 담배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다비도프는 에디션에 따라 길이, 두께, 필터가 매우 다양합니다. 한국에서는 약간 짧은 84mm 길이의 다비도프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진출 당시 소비자 조사를 바탕으로 개발한 ‘한국형 제품’입니다. 가격 역시 한국소비자에 맞춰 2,500원으로 출시했고요. 길이 때문에 가짜라는 편견이 퍼져있다는 건 내부적으로도 알고 있습니다. ‘다비도프가 오리지널 브랜드’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패키지 디자인을 변경하면서 소매점 내 광고 카피를 ‘오리지널 럭셔리’로 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 따른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 내 인지도가 높아지면 ‘가짜’라는 인식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한국 담배 시장만의 특징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한국 담배 시장 특징 중 하나로 토종 회사의 성공적인 시장 방어를 들 수 입습니다. 한국에 진입한 다른 다국적 담배 기업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세계 9대 시장인 한국에서 KT&G의 유통 장악력은 항상 글로벌 뉴스가 되고 있습니다. 또 하나 특징은 바로 한국 소비자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저렴한 가격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브랜드 선택에 있어서도 매우 신중합니다. ‘글로벌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한국에서 성공하라’라는 말은 이미 마케터들 사이에 정설이 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Q. 전 세계적으로 담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데, ITG만의 대응전략은 무엇인가요?
담배에 부과되는 세금 인상, 패키지에 표시해야 하는 경고 문구, 지속적인 금연캠페인 등이 강화되면서 세계적으로 담배시장의 규모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물론 ITG도 그 영향을 받고 있고요. 기업이 독자적으로 세계적인 추세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저희 스스로 체질을 변화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좀 더 효율적 관리를 위해 2013년부터 운영인력을 시장환경별로 조정했습니다. 예컨대 2012년 한국시장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 속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3년부터는 ‘성장을 위한 투자시장’본부에 들어가 있습니다. 제가 맡고 있는 아시아, 러시아, 터키, 이탈리아가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ITG는 전세계 시장을 5개 구역으로 개편했고, 그 결과 흑자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2014년부터는 ‘브랜드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업무효율성도 높이고 있습니다. 일정 규모 이하의 성과를 내는 브랜드는 과감히 정리하고, 집중해야 하는 브랜드에 대한 투자는 늘려 어려운 상황에서도 경쟁력을 키우자는 것이 ITG의 기본 전략입니다.
Q. 담배마케팅의 한계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다른 제품군에 비해 담배분야 마케팅 활동이 어려운 건 사실입니다. 광고, 후원, 매장 진열, 심지어 제품 이름에도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특정 국가의 경우 패키지에 제품명 외에는 그 어떤 디자인 요소도 넣을 수 없습니다. 조만간 ‘판매를 위한 진열’ 조차도 금지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케팅이 전혀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 되는 거죠. 하지만 힘든 마케팅 상황에도 늘 소비자와 경쟁사들은 존재합니다. 그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마케터의 역할이라 힘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30년 이상 마케터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은 ‘가장 어려운 여건과 경쟁상황 속에서 승리한 것’이었습니다. 그보다 재미있는 것을 제인생에서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Q. 글로벌 마케터로서 한국시장을 공략하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한마디로 한국은 프리미엄 시장입니다. 가격을 낮춰 승부하기 보다는 브랜드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 공략해야 합니다.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되기 위해 장기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합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시사하는 바가 한국시장을 열 수 있는 열쇠가 아닌가 하는 조언을 감히 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