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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업적이 위협당할 때

WHEN YOUR LEGACY GETS HACKED

프랭크 블레이크Frank Blake는 원활한 경영권 승계 계획과 함께 홈데포 Home Depot의 CEO직을 훌륭하게 마무리했다. 하지만 회사의 대규모 정보유출 사건이 그의 명성에 오점을 남길지도 모른다.
By JENNIFER REINGOLD


프랭크 블레이크는 한 번도 제대로 쉰 적이 없다. 일 중독자여서 홈데포 CEO를 맡은 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지난 노동절 주말에 휴가를 고민해볼 정도였다. 그보다 12일 전인 8월 21일, 그는 11월 은퇴할 것이라며, 이사회와 함께 직접 선택한 크레이그 메니어 Craig Menear가 자신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블레이크(65)는 몇 개월간 회장직에 머무를 예정이다. 승계 과정이 너무나도 깔끔하게 이뤄져 오랫 동안 존경 받았던 CEO의 은퇴 소식에도 홈데포 주가는 꿈쩍하지 않았다.

때문에 블레이크가 조지아 주 시 아일랜드 Sea Island에 위치한 별장에서 가족과 주말을 보내기로 했을 때,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물론 블레이크는 휴일 여부와 상관 없이 노동절 당일에도 애틀랜타 집무실에 나와 일요일마다 하던 일을 수행했다. 이메일을 확인하고 최고의 성과를 달성한 직원들에게 200통의 손편지를 쓴 것이다).

휴식을 가진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다음 날 아침 오전 9시 20분, 홈데포의 법무자문위원 테레사 로즈보로 Teresa Roseborough가 블레이크에게 전화를 걸어 전한 말은 모든 CEO가 두려워할 만한 내용이었다. 회사 컴퓨터시스템이 해킹 당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홈데포는 곧 5,600만 개의 신용카드 번호가 해커에게 유출됐음을 알아냈다. 회사 자체에도 막대한 타격이 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거의 무결점에 가까웠던 블레이크에게 CEO 임기 마지막 순간 오점을 남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블레이크의 대응은 어땠을까? 우선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방법을 먼저 생각해보자. 이 문제를 쉽게 후임자에게 떠넘길 수도 있었다. 사실 블레이크는 이미 경영권 승계를 발표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후임자에게 경험을 쌓을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두려움 때문에 그냥 입을 다물 수도 있었다.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을 경우 명성에 먹칠을 할 수도 있고, 이미 수많은 소송에 휘말려 있던 홈데포에게 더 많은 소송이 쏟아지게 만들 수도 있었다. 외국 해커나 미국 정부를 비난할 수도 있었고,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최근에 실제로 그렇게 보인다) 주장할 수도 있었다.

해커를 막지 못한 경영진을 공개적으로 해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블레이크는 이 중 어떤 방법도 선택하지 않았다. 7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위기 때마다 자신이 했던 대로 대응했다.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면서 임직원에게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고, 집중해야 하는 대상인 고객들에게 흔들림 없이 몰두했다. 전화로 소식을 접한 지 몇 시간 만에 홈데포는 홈페이지 성명-의미 없이 친절한 기업의 미사여구는 빼고-을 통해 고객들에게 사과했다. 또 사기행각으로 발생할 비용을 고객에게 절대로 전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홈데포는 성명에서 ‘이 같은 사건이 실망과 우려를 자아낼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해 사과한다’고 명시했다. 5일 후에는 블레이크가 직접 작성한 또 하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블레이크는 메니어가 곤란에 처하지 않도록 직접 정보유출에 대한 대응에 나섰다. 홈데포 최고정보책임자 맷 캐리 Matt Carey를 지원하는 한편, 본사 20층에 설치한 ‘사고 대응실’에 계속 머물렀다. 한편으론 메니어가 회사 경영을 시작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책임은 누구의 몫일까? 물론 블레이크는 책임소재도 분명히 했다. 현재 그는 특유의 겸손함을 보이며 “나는 예전에도 많은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이번 실수가 좀 더 눈에 잘 띄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보유출이 재앙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미국 내 주요 유통업체의 중심부가 취약하다는 허점을 드러냈고, 만약 그에 따른 영향이 있다면 회사에 어떤 파급효과가 나타날지 여전히 불분명하다. 하지만 블레이크가 이번 문제에 대응한 방법은 자신의 홈데포 운영 방식과 일관성을 보인다. 지난 2007년, 이사회에서 갑작스레 블레이크를 밥 나델리 Bob Nardelli의 후임으로 인선했을 때 이를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블레이크는 홈데포를 되살리며 보여줬던 모습 그대로 솔직함과 유머, 그리고 겸손함을 통해 위기에 대응했다.

‘겸손함’은 CEO나 사내변호사(그는 원래 사내변호사였다)보단 수도승이나 요가수행자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하지만 수개월 동안 블레이크, 팀원 여러 명과 진행한 독점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바에 따르면, 사람들이 블레이크와 그가 가꾼 문화를 규정할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겸손함’이었다. 홈데포의 공동창업자인 억만장자 켄 랭곤 Ken Langone은 CEO에 대해 칭찬보단 혹평을 많이 하는 신경질적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블레이크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의 눈은 거의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었다. 랭곤은 “그의 진실된 겸손함은 항상 깊은 인상을 주었다. 내 평생 가장 훌륭한 사람 중 한 명인 그를 만난 건 축복”이라고 평가했다. 프랭크 블레이크는 단 한 번도 CEO를 목표로 한 적이 없다. 하지만 CEO를 역임하는 동안, 그리고 CEO를 그만두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그가 배운 건 사례연구로 따로 정리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것이었다.

블레이크는 종종 자기 자신을 ‘돌발 CEO(the accidental CEO)’라고 부른다. 2007년 1월 3일, 당시 36만 4,000명이었던 홈데포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방송에 등장해 CEO 임기 첫 날을 맞았던 때가 바로 이 표현에 딱 맞는 상황이었다. 회사 상징인 오렌지색 앞치마를 걸친 최고 매장 경영진들과 함께 테이블 뒤쪽에 뻣뻣하게 앉아 자신을 소개하던 블레이크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누가 그의 임명에 반대할 수 있었겠는가? 블레이크의 경력은 화려했다. 미 대법원 판사 폴 스티븐스 Paul Stevens의 서기를 지냈고, 에너지부 부장관을 역임했다. 그러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서의 경험은 제너럴 일릭트릭 General Electrics에서 담당한 몇 년간의 작은 라이선스 업무가 유일했다. 그리고 그 후에 바로 홈데포의 전략 및 신규사업 개발 책임자로 나델리의 후임이 됐다(나중에 블레이크는 부회장까지 승진했다). 결국 그는 790억 달러 규모의 매출을 올리던-동시에 동일 매장 매출이 하락하고 주택시장 불황과 함께 주가가 추락하며 난관에 봉착해 있던-기업의 수장을 맡았다.

블레이크는 나델리와 정반대 되는 인물로 인식됐다. GE의 CEO를 역임한 바 있는 나델리는 지출을 줄이고 수익을 극대화하면서 엄청난 연봉을 받았고-당시 그의 퇴직금은 입이 떡 벌어질만한 2억 1,000만 달러로 평가됐다-투자자와 경영진 및 직원을 소외시켰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블레이크를 선임해 행동주의 투자자를 달래려는 의도로 보인 것이었다. 블레이크의 아들이자 당시 30세였던 프랭크 스탠턴 블레이크 Frank Stanton Blake조차 상황을 미심쩍어 할 정도였다. 홈데포의 매장 매니저로 아버지보다도 운영 경험이 더 많았던 아들은 “‘알았어요. 행운을 빌어요’라고 말했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나는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었지만, 아버지가 맡게 된 일은 정말 힘든 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블레이크는 CEO 업무를 시작한 첫날 세웠던 전략을 변함 없이 지켜나갔다. 경험이 일천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당시 그는 미묘하게라도 나델리를 힐책하지 않았고, 홈데포가 고객과 직원들(회사에선 “동료(associates)”라고 부른다)에게 다시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성공이 뒤따를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최선을 다해 남의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천명했다.

첫 방송 후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1월 8일, 블레이크는 두 번째 방송을 내보냈다. 그는 자신의 리더십 모델을 구체화했다. 단순하게 삼각형을 뒤집은 ‘역피라미드’로, 홈데포의 공동창업자 버니 마커스 Bernie Marcus와 아서 블랭크 Arthur Blank로부터 빌려온 개념이었다. 그는 일선의 매장 동료를 최상위에, 경영진을 최하위에 배치했다. 그는 “이걸 제대로 보는 방법은 나를 가장 밑에 두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여러분의 업무에 방해가 되는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진부한 경영방법을 이야기하는 건 쉽다. 하지만 잘난 체하지 않으며 이성적인 블레이크는-그의 아내는 블레이크가 공석에서 말하는 스타일에 대해 “목재보다 약간 부드러울 정도로 뻣뻣하다”며 “간담이 서늘하다”고 평한 바 있다-자신이 한 말을 있는 그대로 지키기 시작했다. 그건 “직원들의 업무에 방해가 되는 부분을 제거하는” 어려운 결정을 의미했다. 블레이크는 나델리를 보좌하던 시절 직접 그를 도와 매입했던 사업 중 많은 부분을 매각했다. 1억 6,200만 달러를 들여 중국 내 매장 7곳의 문을 닫기도 했는데, 훗날 블레이크는 시장을 잘 알지 못했다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도 했다. 또 경기침체 시기 수익이 급감하는 와중에서도 매장 직원들을 위한 보너스 체계를 개혁해 보너스풀을 크게 확대했다(직원 수는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2006년 3,600만 달러였던 보너스풀의 규모는 2013년 2억 5,000만 달러로 급증했다).

오랜 기간 높은 평가를 받아온 홈데포의 CFO 캐럴 투메 Carol Tome는 무엇보다 블레이크가 오합지졸이던 경영진을 하나의 팀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그 방법은 매우 특별했다. 투메는 “나델리 시절에는 모두가 문제를 공유하길 두려워했지만, 블레이크는 갈등을 의사결정 과정으로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예전에 우리는 갈등을 피하려고만 했다. 프랭크는 수많은 질문을 던져 되고 있는 일과 되지 않고 있는 일을 말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일례를 들어보자. 지난 2008년, 댈러스에 새로운 물류센터를 열 때 있었던 일이다. 구매 중앙집중화 전략의 일환으로 물류센터를 오픈한 것인데, 요구하는 물량을 처리할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이 드러난 상황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블레이크는 곧바로 댈러스로 날아갔다. 공급망 및 글로벌 대외구매 부문 선임 부사장인 마크 홀리필드 Mark Holifield는 “다른 CEO 같았으면 부하직원들에게 해결하라고 명령하거나, 전략 자체를 포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블레이크는 직접 현장을 방문해 끝도 없는 질문을 던지고 나서, 경영진과 함께 시카고 물류 센터를 방문한 후 해결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곤 팀원들에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홀리필드는 즐겁다는 듯 이 사례를 설명하면서 CEO를 “성급하면서도 인내심이 강한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블레이크는 자신의 경험부족을 경청을 통해 보완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원치 않는 것을 말할 수 있을 만큼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라는 자문을 하곤 했다. 블레이크는 “실제로 사람을 알고 싶다면, 그들과 둘러 앉아 ‘분위기가 심각해질 것은 알지만……’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면 보통 사람들이 ‘오, 이런! 그가 분위기가 심각해질 것을 알고 있군’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론 당신도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블레이크는 경청의 기술을 경영진 외의 다른 부분에서도 잘 활용했다. 자신의 임기 내내 일주일에 하루에서 이틀 정도는 홈데포 매장을 거닐며 시간을 보냈다. 제품을 이해하고 동료직원들의 업무 방식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내려는 것이었다. 그는 차고에 원형 톱 등의 공구를 두는 스타일이 아니다(그는 금융업계 이사의 아들로 하버드 출신이다). 하지만 고객의 니즈를 알아낼 수는 있었다. 홈데포의 공동창업자 마커스는 “함께 처음 매장을 방문했을 땐 그는 정말로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함께 갔을 땐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장사꾼이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7년 동안 블레이크가 매장을 방문한 횟수는 1,000번에 이른다. 홈데포 설립자들이 20년 이상 동안 방문한 횟수보다 더 많다. 그는 매장에서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고, 셀카 대신 최고 동료직원의 사진을 찍어 개인 트위터에 올린다. 매니저들은 블레이크 덕분에 자신이 제품 판촉보단 고객을 돕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그 동안 자신이 배운 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요구를 이해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제대로 이해했을 때 좋아해주는 것이다. 나는 변호사다. 변호사들은 쓸 데 없는 것을 축하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블레이크는 거의 모든 것을 온라인에서 구입하는 시대엔 홈데포를 방문하게 만드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건 바로 서비스다. 홈데포에서 실시한 ‘고객의 목소리’ 설문조사에서 그 성과가 나왔다. 홈데포를 타인에게 강력히 추천하겠다고 답한 사람의 순 비율이 그의 임기 중 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직원의 고객 서비스를 신뢰한다는 답변도 95%나 급증했다.

블레이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된 비밀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바로 특정 메시지나 계획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때 이를 전해주고, CEO가 큰 소란 없이 매장을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해준 아들이다(주말에는 종종 부자가 함께 매장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아들 블레이크는 “아버지에게 항상 솔직하고 편견 없는 피드백을 전달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매장이 위치한 지역이 극심한 폭풍으로 타격을 입었을 때,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품이 매장에 빨리 도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 이 정보 덕분에 홈데포의 전반적인 공급망 개선이 이뤄졌다. CEO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아들은 웃으며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고객이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되는 게 내게 일어날 최악의 상황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블레이크가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을 지금은 쉽게 잊을 수 있다. CEO 취임 후 3년 동안, 경기침체와 라이벌 로스 Lowe’s의 약진으로 동일 매장 매출은 추락을 면치 못했다. 블레이크 취임 당시 41달러였던 홈데포 주가는 2009년 3월 18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이 같은 충격 덕분에 블레이크에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어려운 결정을 투자자의 승인 없이 진행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슈티펠 Stifel의 매니징 디렉터 데이비드 시크 David Schick는 “시장이 원하는 것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프랭크 블레이크의 경영방식은 올바르게 일을 처리하고, 모든 것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큰 소란 없이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주택시장이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도 블레이크의 개혁은 그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21분기 만에 처음으로 홈데포는 2009년 2분기 동일 매장 매출 성과 부문에서 라이벌 로스를 제쳤고, 그 후에도 21분기 동안 계속 재역전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새로운 매장을 추가하지 않으면서도 매출이 거의 50억 달러나 증가했다. 이는 대부분의 거대 유통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놀라운 성과를 올린 것이었다. 석학 피터 드러커 Peter Drucker의 명언 ‘문화는 아침 식사로 전략을 먹는다(culture eats strategy for breakfast)’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취임 때 소란을 겪었던 측면도 있었기 때문에 블레이크는 처음부터 다음 CEO 선임 계획을 중요시하며 첫 이사회부터 이를 논의했다. 그는 “내부에서 차기 CEO를 선임하지 못했다면, 개인적으로 크나큰 실패로 여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제너럴 일렉트릭 등의 기업에서 경험한 극도의 긴장감도 피하고 싶었다. 잭 웰치 Jack Welch는 3명의 후임 후보자를 선정해-그중 한 명이 나델리였다-공개 경쟁을 벌이도록 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블레이크가 CEO에 선임되기 전에도 홈데포 이사회는 매장업무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사들은 1년에 2번 매장을 방문해야 했다. 하지만 2011년 이사회는 분기마다 각 이사가 날짜를 정해 간부 한 명과 함께 매장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두 명이 함께 매장을 방문해 평가하는 식이었다. 이사진의 매장 이해도를 높이는 한편, 이를 통해 간부 중 CEO 후보자를 찾으려는 목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이사들은 최고위 간부들과 개인적 친분이 생겼다. 블레이크의 재임 기간 동안 이사회는 처음엔 1년에 한 번, 약 3년 전부터는 1년에 2번 회의를 개최해 인재들을 검토하고 승계 계획을 의논했다.

블레이크가 은퇴를 고려하기 시작한 지난해, 그는 이사회와 함께 최대한 인간적인 방식으로 인선절차를 고안하기로 했다. 버거킹 CEO 출신으로 현재 홈데포 이사회를 이끌고 있는 그레그 브레네먼 Greg Brenneman은 “후보자들의 품격과 존엄성을 지키면서 인선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고 말했다. 홈데포는 3명의 후임 CEO 후보를 선정했다. 메니어, 투메, 그리고 매장 총책임자 마빈 엘리슨Marvin Ellison이었다. 세 명 모두 홈데포의 인선절차가 GE의 시끄러운 경쟁과는 달리 후보자 간 협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단언했다. 엘리슨은 “블레이크는 후보자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계속 하면 된다고 했다”며 “장기자랑을 하듯, 이사진에게 무언가를 발표하는 식의 경쟁으로 흐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메니어가 홈데포의 미국 유통 부문 사장으로 임명됐다. 그가 차기 CEO가 될 것임을 의미하는 인사였다. 이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은 없었다. 블레이크는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고 있다. 그래도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있어 보인다. 그는 “진정으로 재능이 뛰어난 리더가 마땅히 받아야 할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인선절차에는 필요 이상으로 가혹한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블레이크의 코멘트를 투메에게 읽어주자, 그녀는 잠시 그대로 멈춘 채 크게 감동한 눈치를 보였다. 그녀는 “솔직함 말고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묻더니 “우리는 성인이고 한 명만 선택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후에는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CEO 자리에 오르진 못했지만, 투메는 여전히 블레이크에 대한 애정이 있으며 그의 은퇴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녀는 “나는 슬픔에 빠져 있다. 프랭크가 부탁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엘리슨도 자신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는 지난 10월 제이시 페니 J.C. Penney의 CEO에 지명됐다. 이 소식을 접한 블레이크의 반응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는 냉정하거나 의례적인 작별인사 대신 엘리슨에게 따뜻하고 유머 넘치는 작별을 고했다. 그는 제이시 페니의 역사에 대해 진심 어린 헌사를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백화점 설립자인 제임스 캐시 페니 James Cash Penney의 가짜 인용문을 집어 넣었다. ‘백화점은 창문이나 블라인드 사업(홈데포와 겹치는 분야)에 손을 대선 안 된다’는 내용을 삽입한 것이었다. 블레이크는 장난으로 엘리슨-그는 구겨진 카키 바지를 입어야 마땅한 곳에서도 커프스 단추와 스포츠 코트를 선호한다-의 스타일을 놀렸다. 카우보이 모자와 카우보이 부츠(제이시 페니의 본사는 텍사스다), 그리고 페니의 애리조나 브랜드 청바지를 선물한 것이다. 엘리슨은 “그게 나를 위한 이별 선물이었다”며 “바로 그게 블레이크의 방식”이라고 웃음을 터트렸다.

엘리슨은 페니에서 매우 어려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지만, 메니어에 비하면 한 가지는 편할 것이다. 전설과 같은 전임자를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크레이그 메니어는 임기 초 상당 기간 ‘프랭크 블레이크와 다른데!’ 같은 시각에 직면할 것이다. 블레이크는 사랑과 존경을 받기도 했지만, 홈데포 주가를 127%나 끌어올린 인물이기도 했다.

메니어(57)도 이 같은 압박감을 잘 알고 있다. 우상과 같았던 전임 CEO의 뒤를 이었던 애플의 팀 쿡 Tim Cook이나 피앤지 P&G의 로버트 맥도널드 Robert McDonald의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도 프랭크를 대신할 순 없다”며 “그는 특별하다. 나 또한 나만의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중요한 건 프랭크가 시작한 것을 더 성장시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행인 점도 있다. 메니어는 친근한 인물이다. 자신의 높은 명성도 스스로 쌓아왔다. 미시간 주 플린트 Flint 출신인 그는 유통업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왔다. 몽고메리 워드 Montgomery Ward의 견습 직원으로 출발한 그는 후에 이케아 유사업체 스토르 Stør로 자리를 옮겼다가 자신의 유아용품 사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7년 홈데포의 남서지역 머천다이징 운영부서에 합류했다. 그리고 빠른 승진을 거듭해 홈데포의 대규모 공급망 개선 프로젝트 및 온라인 사업의 책임자가 되었다. 공동설립자 마커스는 그에 대해 “홈데포의 미래 위치에 대한 글로벌 시각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라며 “그는 일단 장사꾼”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메니어는 마커스 이후 처음으로 회사를 운영하게 된 ‘장사꾼’이다. 그의 집무실은 료비 Ryobi 드릴, 포터케이블 컴프레서 네일건 Porter-Cable compressor nail-gun 세트 같은 도구를 촬영한 액자로 가득 차있다. 제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홈데포의 LED 제품처럼 빛이 난다. 그는 컴프레서를 가리키며 “저 제품은 대단하다.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인다”며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메니어는 진정한 고객이다. 그는 최근 자택에서 직접 새로운 옷장을 제작하고 조명기구를 설치하기도 했다.

메니어는 몇 년간 유지되던 홈데포 사단이 흩어졌다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엘리슨을 대체할 인물은 이미 찾았지만, 투메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투메가 다른 기업의 CEO를 맡겠다고 결정한다면 그는 분명 최종 후보자 중 한 명에 오를 것이다. 투메는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며 “2월부터 이미 CEO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정보유출 문제도 남아 있다. 아무도 거대한 보안문제를 떠안고 싶진 않겠지만, 메니어는 이번 사건으로 블레이크의 업무에 좀 더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이사회에서 그에게 일상적인 운영과 장기 전략을 맡기고 블레이크에게 위기대응을 맡겼기 때문이다. 브레네먼은 “이런 문제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하지만 재미있는 건, 정보유출 사건이 터지면서 CEO 지명 후 나타났던 일종의 어색한 시기가 지나가 버렸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해커가 홈데포를 침투하게 만든 것에 대해 블레이크를 비난할 수는 있다. 어쨌든 홈데포의 IT부서는 그에게 이미 보고를 했다. 블레이크가 잊어버렸다기보단 반응이 다소 느렸던 것이다. 2013년 12월 타깃 Target이 사이버공격을 당하면서 4,000만 명의 고객 신용카드 정보가 도난당했고, 그때 블레이크와 팀원들은 유사한 재앙을 피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홈데포는 지난 8월 ‘사고 대응팀’을 조직하고, 이사회 전원과 논의를 했을 뿐만 아니라 감사위원회와 5시간에 걸쳐 검토를 진행했다. 그때 결제 절차 시스템을 더 안전하게 만들 계획도 수립했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진행되는 순간 악성코드는 이미 홈데포 서버에 침투해 있었다. 관련 문제를 제일 먼저 제기했던 사이버보안 블로거 브라이언 크렙스 Brian Krebs는 “홈데포가 이런 위협이 목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건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몇몇 전임 CEO는 홈데포가 자금을 아끼려 했고, 그래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블레이크는 이러한 비난을 반박하면서, 자금을 투자했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이 창문유리를 강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번 사건은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돌멩이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바꿔 말하면, 더 넓은 의미에서 실수를 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블레이크는 “상황을 다시 되짚어보면, 우리의 추정과 위협의 본질에 대한 평가가 충분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블레이크와 팀원들은 정보유출이 적발됐을 때 그 대응에 집중했다. 침투사례가 분명 있었다고 확신하기 전에도, 고객에겐 무료 신용정보 감시 시스템이 제공되고 있었다. 홈데포에선 고객이 질문하려고 대기하지 않도록 일일 5만 통 처리가 가능한 콜센터를 운영했다(통화량이 수용능력의 25%를 넘은 적이 없지만, 블레이크는 안정성을 선호했다). 정보유출 사건에 대한 소식이 퍼지고 2주가 지난 후, 홈데포는 미국 사업부문에 향상된 암호화 시스템을 설치했다고 발표했다(이렇게 구현하기 쉬운 일이었다면 왜 진작에 실행하지 않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다). 지금까지 정보유출로 인한 총 피해액은 6,200만 달러로 추산된다.

수많은 해커가-특히 해외 해커의 경우-체포될 두려움 없이 해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대응은 큰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 파이어아이 FireEye의 COO 케빈 만디어 Kevin Mandia는 “유사한 사건이 거의 매일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홈데포 발표 후, 제이피 모건 체이스 J.P. Morgan Chase와 케이마트 Kmart 등 다른 업체들도 자체 정보유출 사건을 발표했다. 블레이크는 “내가 보기에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이 아무런 피해 위험 없이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는다면, 언제든 같은 사건이 계속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성 통신 서비스 제공업체 샛콤 다이렉트 Satcom Direct의 정보시스템 보안매니저 조지 그라치스 George Grachis 같은 전문가들은 홈데포의 대응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그라치스는 광범위한 보안 표준을 준수하는 구식 접근법에서 벗어나 이미 해커가 시스템에 침투해 있다는 가정하에 이들을 신속히 적발할 수 있는 감시기술을 향상시키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표준을 준수하는 건 과거지향적이며 정적이다”라며 “보안이란 미래지향적이고 동적이며 지능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9월 2일 홈데포에 몰아친 혼란에도 불구하고, 회사-그리고 블레이크의 명성-에는 심각한 영향이 미친 것 같지는 않다. 정보유출 사건 이후 매출감소를 보였던 타깃과는 달리, 홈데포에선 공개적인 하락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부분적으론 홈데포 정보유출이 이후 잇따라 발생한 해킹사건 중 첫 번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레이크가 2주간 보여준 대응방식 덕분이기도 하다. 랭곤은 “이번 사건은 그의 업적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보유출 사건 발생 후에 블레이크가 회장직 유지를 원했다고 해도, 이를 불평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수개월 내로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는 전임 CEO가 이사회에 머물러 있으면, 전임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가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블레이크는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한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블레이크 자신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사랑의 집짓기 운동(Habitat for Humanity)’ 자문위원인 그의 아내도 얼마 전 은퇴했다. 블레이크는 “좀 두렵다. 일이 없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 이런!”이라고 걱정을 토로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데 뛰어났기 때문에 7년이 넘는 동안 쉼 없이 달려왔다. 이젠 자기 자신의 말을 경청하는 데 익숙해져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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