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20일 오후10시30분 하와이 인근 해상. 미국 해군 이지스함 '레이크이리'호가 고고도 요격미사일 SM-3를 발사했다. 목표는 고장 난 미국 첩보 위성. 지상 240㎞ 상공을 돌던 이 위성은 SM-3에 피격돼 산산조각 났다. 작전명 소각동결(burnt frost) 성공! 그대로 두면 450㎏의 유독성 연료를 실은 위성이 지구에 추락해 심각한 피해를 준다는 게 미국이 밝힌 요격 배경이다. 하지만 미사일방어체제(MD), 즉 군사 목적의 실험이라는 의혹의 눈길은 가시질 않았다.
△과연 고장 난 위성을 요격하면 인류에 가해질 위험이 제거될까. 그렇지 않다. 피격으로 인한 수많은 파편이 새로운 위협 요인이 되는 까닭이다. 위성 1개가 파괴되면 지름 10㎝ 이상 대형 파편만도 1,000개 이상 생긴다. 구슬보다 작은 것은 수만개에 이른다. 이런 우주 쓰레기는 초속 7~10㎞의 속도로 지구 궤도를 돌기 때문에 위성이나 우주정거장은 물론 우주를 유영하는 우주인에게도 심각한 위협이다. 위성 충돌로 파편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우주 교통사고가 잦아지면 파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마련. 급기야 위성을 더 이상 띄울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른바 케슬러 신드롬이다. 인공위성과 우주정거장이 우주 쓰레기에 의해 위기일발의 순간을 맞은 사례는 드물지 않다. 우주정거장 미러의 태양전지판에 구멍이 뚫리는가 하면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불과 0.2㎜의 페인트 조각에 맞아 유리창이 손상되기도 했다.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씨가 탑승했던 우주정거장은 2011년 불과 350m 옆으로 우주 파편이 지나쳤다.
△얼마 전 개봉한 '그래비티(gravityㆍ중력)'는 우주 파편과 충돌하는 위기에 맞은 우주인의 사투를 그린 영화다. 1957년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인류가 쏘아 올린 4,500여개의 인공위성 가운데 3,000여개가 소멸하는 과정에서 셀 수 없을 만큼의 우주 쓰레기가 흩뿌려졌다. 추적 가능한 10㎝ 이상인 파편은 3만개 정도지만 1㎝ 이하 미세 파편은 수천만개로 추정된다. 우주 재난은 더 이상 영화 속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