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녀의 영역'으로 인식되어온 대기업 CEO 자리에 여성 사장이 탄생했다. 재계 서열 30위인 코오롱그룹에서 여성 샐러리맨으로 시작해 CEO 자리까지 당당히 오른 것이다. 오너 일가에서 여성 CEO들은 다수 배출 됐지만 전문경영인 출신 여성이 사장 자리에 오른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코오롱은 30일 코오롱워터앤에너지 전략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수영(44ㆍ사진) 전무를 공동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 발령했다고 밝혔다. 지난 1954년 창업한 코오롱그룹에서 여성 CEO가 배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임 이 부사장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서울대 노어노문학과와 연세대 국제정치대학원을 졸업한 뒤 1994년 삼성전자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삼성에버랜드에서 PR매니저로 일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노스웨스턴대 경영대학원(MBA)을 마치고 2001년부터 1년간 호주 제약회사에서 근무했다.
2003년 코오롱그룹의 웰니스 태스크포스(TF)에 합류해 웰빙 관련 사업 기획을 주도해온 이 부사장은 2005년 부장을 건너뛰고 상무보로 2단계 승진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룹 경영전략본부 상무를 거쳐 지난해 다시 코오롱워터앤에너지 전무로 승진하며 초고속 승진코스를 밟아왔다. 2003년 차장으로 입사해 CEO의 자리까지 오르는데 불과 10년밖에 걸리지 않은 셈이다.
이 부사장은 트렌드를 읽는 눈이 정확하고 추진력과 함께 앞서가는 리더로서의 '카리스마'를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2005년에는 코오롱그룹이 코오롱워터앤에너지의 전신인 환경시설관리공사를 인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코오롱워터앤에너지의 전략사업본부장을 맡아 사업의 성장을 이끌어왔다. 그룹 경영전략본부에서도 전략사업팀장으로 일하며 그룹 내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이 부사장이 그룹 최초의 여성 CEO에 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여성인력을 중용하는 이웅열 회장의 경영방침도 큰 몫을 했다. 코오롱은 그룹 차원의 여성인재 육성 및 양성평등 경영철학에 따라 여성 친화적인 근무환경을 만드는데 앞장서 왔다. 지난 2002년 업계 최초로 여성인력할당제를 도입한 데 이어 최근 3년간 그룹 대졸공채에서의 여성 비중이 평균 39%에 달하는 등 여성 인력 채용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월 전문직여성 한국연맹(BPW코리아)이 수여하는 제18회 'BPW 골드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이 회장은 수상소감을 통해 "우리나라 여성들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인재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우리 여성들이 세계 무대의 중심에서 더욱 활약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면서 여성인력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한편 기업경영성과 분석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액 기준 국내 1,000대 기업 가운데 여성이 CEO를 맡고 있는 기업은 9개로 전체의 1%에도 못 미쳤다. 전세계 1,000대 기업의 여성 CEO 비중이 4%인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특히 전세계 1,000대 기업 내 여성 경영인들은 대부분 평사원으로 시작해 CEO에 오른 전문경영인인 데 반해 국내 여성 CEO들은 대부분 선친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오너 일가들이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