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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호모 사피엔스, 불평등해 살아남았다

■ 불평등의 창조(켄트 플래너리·조이스 마커스 지음, 미지북스 펴냄)

"농경·정착생활로 커진 집단 사유재산 허용할수록 생존 유리

잉여자산 축적이 세습 욕망 부추겨 결국 노예·계급제도 만들어냈다"

권력·富 집중 고고학 관점서 풀어

인류는 생존을 위해 불평등을 고안하고 조장해왔다. 인류의 농경·정착 생활이 시작되고 조직이 커질수록, 불평등이 제도화된 사회일수록 생존에 유리했다. 자원이 풍부하고 재능이 뛰어난 개인에게 더 많은 사유재산을 허용하는 사회일수록, 더 넓고 비옥한 땅과 구성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다른 조직을 제압하기 쉬웠기 때문. 사진은 영화 '노예 12년'의 한 장면.


"난 한 번 신었던 양말을 다시 신지 않아." 빌딩 숲이 내려다보이는 펜트하우스에서 악당은 여유 있게 말했다. 슈퍼맨의 표정이 순간 썩어버렸다. 매일 양말 한 켤레 차원을 넘어서는 과시는 슈퍼맨의 파란 슈트와 빨간 마크보다 직설적이었고, 석탄을 꽉 쥐면 다이아몬드가 되는 손아귀 힘, 지구를 되돌려 시간을 거스르는 초인적 능력보다 더 인상적이었다.

구멍 난 양말을 꿰매고 덧대 신던 시절, 아시안게임도 안 치른 나라의 초등학생으론 상상이 안되는 얘기. 양말을 하루 신고 버려도 되는 부자란 어떤 걸까, 어떻게 그래도 될까 하는. 30여년 지난 지금도 종종 부자 얘기를 들으면, 영화 '슈퍼맨' 속 그 장면이 생각난다. 그리고 악당의 '새 양말' 같은 사치가 그에겐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도.

인류는 수천년 전에 비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풍족해지고, 그 옛날보다 더 세련된 방식으로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그 안의 불평등과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진다. 미국의 저명한 고고학자이자 미시간대 교수인 켄트 플래너리(인류고고학)와 조이스 마커스(사회진화학과)는 부와 권력, 지식의 집중, 즉 불평등이 왜 생겨나고 어떻게 세습·제도화되는지를 고고·인류학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사실상 인류사회가 자리 잡아가던 B.C. 1만5000년에서 20세기 초까지다.

이들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 불평등을 고안하고 조장해왔다고 말한다. 농경·정착 생활이 시작되고 조직규모가 커지면서, 불평등이 제도화된 사회가 생존하기 더 유리했다. 자원이 풍부하고 재능이 뛰어난 개인에게 더 많은 사유재산을 허용하는 사회일수록, 더 넓고 비옥한 땅과 구성원을 확보할 수 있었고 다른 조직을 제압하기 쉬웠다는 얘기다.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제치고 살아남은 것은, 더 큰 규모의 집단을 형성하는 사회적 능력이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불평등에 대한 방어기제가 없지는 않았다. 수시로 부족원의 화살을 서로 바꿔 누가 가장 뛰어난 사냥꾼인지 감추고, 사냥감에 대한 조롱이나 유머로 자만심을 경계했다. 그리고 자연을 인간 위에 둬, 그 아래 평등한 사회를 유지했다. 또 설사 뛰어난 자가 책임 있는 위치에 오른다고 해도, 그게 세습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자원이 필요보다 많아지면서 달라졌다. 누군가 더 가지기 위해, 심지어 그것을 자손에 물려주려면 불평등에 대한 명분이 필요했다. 결국 혈통에 대한 신화, 신과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낸다. 탁월한 능력을 갖춘 자는 초자연적 존재와 특별한 관계가 있고, 그 결과물인 부 역시 천상의 영혼을 흡족하게 해준 결과라는 것이다. 이제 명분이 생기니 부가 한쪽으로 쏠리고, 당연히 부족한 이가 나타난다. 이제 두번째 조건, 바로 빚(부채)이 등장한다. 돈을 노동력으로 제공하는 방식은 결국 노예·계급제로 이어진다.

최소한의 생존 조건이 갖춰진 후 잉여자산이 축적을 낳고, 축적이 그에 대한 욕망을 부추겼다. 욕망이 다시 계급과 권력을 만들어내고, 이는 종교와 지식, 군사력의 도움으로 더욱 공고해진다. 그리고 불평등이 정점에 달해 추가적인 수탈이 어려워질 때, 적극적 의미의 전쟁이 역사에 등장하고 국가가 나타난다. 3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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