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현지시간)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시노드)는 교회가 동성애자와 이혼자, 결혼하지 않은 커플과 이들의 아이들도 환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12쪽 분량의 예비보고서를 공개했다. 가톨릭은 세계 각지의 주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5일부터 바티칸에서 주교시노드를 열고 있으며 이번 보고서는 오는 19일 최종보고서가 나오기 전 중간보고서의 성격을 띤다.
보고서는 동성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기존 교리는 유지하되 "동성애자들은 기독교 사회에 줄 수 있는 선물과 자질을 갖고 있다"며 "이들 사이에서도 희생이라 볼 수 있는 서로 돕는 사례가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들을 맞이하고 환영하는 집 같은 교회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또한 보고서는 교회의 승인을 받지 않은 세속적 결혼과 동거의 긍정적 면모를 이해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한편 이혼으로 상처를 입은 이들이 차별 없이 존중 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피임에 대해서도 신자 상당수가 교회의 금지 방침을 어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유화적 입장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이혼 및 재혼 신자도 일정 기간의 '참회 과정'을 거쳐 영성체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주교시노드에 참가하고 있는 베른트 하켄코트르 주교는 교계 매체인 내셔널가톨릭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발언을 주의 깊게 경청하실 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보고서 공개와 관련해 외신들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년) 이후 가톨릭의 가장 혁명적인 변화라고 지적하고 있다.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는 미사 봉헌시 각국 언어 사용, 소녀 복사 허용, 동방 교회와의 화해 등 타 종교에 대한 포용적 태도 등을 채택했다. AP는 "결혼과 이혼, 동성애, 피임과 같은 중대 사안들에 대한 이번 보고서의 어조는 거의 혁명적 수용"이라며 "동성애를 2,000년간 죄악시해온 가톨릭에서 이 같은 문제 제기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평했다. 이어 "보고서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고 전했다. NYT도 "가톨릭교회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첫 신호"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취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자에 대해 "내가 누구를 판단할 수 있나"라고 소신 발언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교계 안팎에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의 최대 동성애 권리보호 단체인 휴먼라이츠캠페인(HRC)의 채드 그리핀 회장은 "가톨릭의 지진 같은 입장변화이자 어둠 속의 광명"이라며 환영했다.
하지만 가톨릭 내 보수파는 보고서에 대해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날 주교시노드 회의에서 중간보고서가 낭독된 후 41명의 주교가 공식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미국 뉴욕의 대주교인 티머시 돌란 추기경은 "보고서는 단순히 초안일 뿐이며 최종 결론까지는 논의할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주교들은 보고서 내용을 논의한 뒤 19일까지 최종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를 바탕으로 내년 10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리는 두 번째 주교시노드까지 논의를 계속하고 최종 결정은 교황이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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