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현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한국경제의 미국 의존도가 높은 탓인지 재정절벽 문제는 마치 우리 일인 양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면 총기사고의 경우 한국에서는 총기소지가 허용되지 않는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과연 그럴까.
어린이 20명을 포함해 27명의 목숨을 앗아간 코네티컷주 샌디훅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의 범행동기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미 언론들은 학창시절 외톨이로 지내는 등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했던 범인이 자신의 분노를 외부로 표출시킨 것으로 보고 있다.
이쯤 되면 미국의 총기사고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일로만 들리지 않는다. 이번 총기난사는 단지 미국사회에서 총기소유가 허용되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차원을 넘어 한 개인의 불행이 사회 전체에 엄청난 비극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 한국의 자살률은 몇년째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자살률로만 따지자면 한국사회는 미국보다 훨씬 더 개인의 불행이 심화된 사회다.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정의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도 5년 전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은 ‘아주 특별한’ 위험사회이며 내가 지금까지 말해온 위험사회보다 더 심각한 위험사회”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성탄절 연휴로 온 나라가 들뜬 기분에 취해 있는 와중에도 삶의 막다른 골목에 선 노동자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다. 지난 19일 대선 이후로만 벌써 세번째다. 이를 개인사라고 생각해서인지 언론에서도 별로 주목하지 않고 있다. 이들의 불행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방관하다가는 결국 한국사회가 부메랑을 맞게 될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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