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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훔쳐보기] 청와대와 김무성

같은 운명체·다른 스타일 '10년 애증'<br>2인자 용납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 보스 스타일의 金 '미묘한 기류'<br>내년 하반기 이후 충돌 가능성도

최근 청와대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간에 개헌과 공무원연금 개혁을 놓고 갈등이 표면화돼 당청관계의 험로가 예상된다.

정가에서는 김 대표가 취임한 지 불과 100일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서 불거진 양측의 마찰음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과 김 대표의 10년 애증이 근원이라고 꼽고 있다. 김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의 연내 처리를 당에 요구한 청와대에 22일 "(연말이나 내년 2월 또는 4월이냐) 시기가 중요하냐"며 이견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최근 김 대표가 '정기국회 이후 이원집정부제 개헌 논의' 발언을 했다가 다음날 "죄송하다"며 사과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21일 참모를 통해 강하게 공박했다. 개헌 논의나 2016년 4월 총선 공천권 등 갈등요인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언젠가는 두 사람이 충돌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개헌은 경제 블랙홀"이라는 박 대통령의 말이 나온 지 열흘 만에 개헌론을 꺼내 든 김 대표와 7월14일 대표 취임 이후 김 대표와 한번도 단독면담을 하지 않은 박 대통령은 인연이 10년째지만 "너무도 먼 당신"으로 통한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였던 2005년 김 대표를 사무총장에 임명하고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김 대표가 총괄본부장으로 활동할 때까지는 관계가 괜찮았다. 물론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박 대통령과 '보스 스타일'인 김 대표의 미묘한 기류도 엿보였으나 갈등이 표면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9년 김 대표의 원내대표 출마에 대해 박 대통령이 반대 입장을 보이며 갈등이 일부 표출됐다. 2010년에는 세종시 개발을 놓고 원안을 고수하던 박 대통령과 수정안을 주장하던 이명박 당시 대통령 사이에서 중재안을 김 대표가 제시했으나 박 대통령은 "친박엔 좌장이 없다"며 못마땅해 했다. 이후 김 대표가 친이명박계 추대로 원내대표(2010년 5월~2011년 5월)에 오르면서 '탈박'이라는 이야기가 퍼졌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끝내 김 대표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에 김 대표는 당시 탈당을 심각하게 고민했으나 결국 "선당후사"라며 백의종군을 선택해 총선은 물론 대선 승리(캠프 총괄본부장)의 공신이 됐다. 하지만 당시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냉랭한 기류가 때때로 엿보였다. 지난해 초 김 대표가 대통령당선인 특사단장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찾아 박 당선인의 친서를 전달했을 때 일부 친박계에서는 "이것으로 김무성에게 진 신세는 갚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부산 영도 재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김 대표는 7월 청와대가 지지한 서청원 최고위원을 제치고 비주류의 고른 지지를 바탕으로 당권을 차지했다. 익명을 원한 새누리당의 한 비박계 의원은 "두 사람은 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할 운명공동체이지만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의 관계나 개인적인 스타일의 차이를 감안할 때 내년 하반기 이후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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