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의 오빠이기 때문에 하루하루를 겸손하게 살 수 있다." 조던 스피스(22·미국)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쓴 글이다. 그는 지난해 자폐증이 있는 11세 된 어린 여동생 엘리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각지로 대회를 다닐 때마다 기념 열쇠고리를 사다 주기도 하는 '여동생 바보'다.
'명인열전' 마스터스의 우승자를 점지한다는 오거스타 신(神)의 79번째 선택은 겸손한 신예였다. 스피스가 제79회 마스터스 토너먼트에서 완벽한 우승으로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장식하며 '골프황제' 계보를 이을 젊은 후보의 탄생을 알렸다.
13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 골프클럽(파72·7,435야드)에서 열린 대회 4라운드. 스피스는 버디 6개와 보기 4개로 2언더파 70타(최종합계 18언더파 270타)를 쳐 필 미컬슨(미국)과 저스틴 로즈(잉글랜드·이상 14언더파)를 4타 차로 따돌렸다.
미국 골프의 영건 스피스는 단 두 번 만의 도전에서 그린재킷을 차지해 '타이거 우즈 후계자'의 면모를 입증했다. 지난해 처음 출전에서 공동 2위에 올랐던 그는 올해 마스터스 역대 두 번째로 어린 챔피언(21세8개월16일)으로 기록집에 이름을 올렸다. 1997년 타이거 우즈(40·미국)의 역대 최연소 우승(당시 21세3개월14일)에는 5개월가량 못 미쳤다. 마스터스 첫 승까지 도전 횟수에서는 두 차례 아마추어 시절을 포함해 3번 만이었던 우즈에 비해 빨랐다.
마스터스 대회를 지배한 완벽한 우승이었다. 스피스는 전 라운드 선두 우승인 와이어 투 와이어(wire-to-wire)를 이뤘다. 크레이그 우드(1941년), 아널드 파머(1960년), 잭 니클라우스(1972년), 레이먼드 플로이드(1976년) 이후 39년 만에 나온 마스터스 역대 5번째 기록이다. 이 과정에서 매 라운드 각종 기록도 쏟아냈다. 8언더파 64타를 친 첫날에는 마스터스 사상 최연소 1라운드 선두 기록을 세웠고 둘째 날에는 36홀 최소타(14언더파), 셋째 날에는 54홀 최소타(16언더파) 기록까지 경신했다. 이날 마지막 72번째인 18번홀(파4)에서 아쉽게 보기를 기록해 최종합계 18언더파로 마감했지만 마스터스 역사상 최초로 중간합계 19언더파 고지를 밟아본 선수가 됐다. 또 나흘 동안 28개의 버디를 잡아 2001년 필 미컬슨(45·미국)이 기록한 25개를 뛰어넘는 최다 버디 기록도 갈아치웠다.
이날 4타 차 단독 선두로 나선 스피스는 마스터스 3승의 미컬슨과 2013년 US 오픈 챔피언 로즈의 추격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전반에 1타를 줄인 그는 10번홀(파4) 버디로 동반 플레이어 로즈에 6타 차까지 앞서기도 했다. 티샷을 오른쪽 숲으로 보낸 11번홀(파4)이 큰 고비였다. 스피스는 나무 사이로 낮게 친 절묘한 아이언 샷에 이어 세 번째 샷을 홀 가까이 붙인 뒤 파로 막아내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15번홀(파5) 버디로 19언더파를 만든 그는 마지막 홀 1.5m 파 퍼트를 놓쳐 대회 최소타 기록을 바꾸지는 못했다. 우승상금은 180만달러(약 19억7,000만원).
지난달 발스파 챔피언십에 이어 올 시즌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2승(통산 3승)째를 거둔 스피스는 세계랭킹 4위에서 2위로 올라섰다. 세계 1위 로리 매킬로이(26·북아일랜드)와 경쟁 구도를 형성하게 된 그는 경기 뒤 기자회견에서 "꿈이 실현됐고 아직 충격 상태에 빠져 있다"고 소감을 밝히고 "매킬로이는 이미 메이저 4승을 거뒀다. 나도 그러길 바라지만 아직 그만큼 잘 칠 수 없어 다른 곳에서 보충해야 한다"고 몸을 낮췄다. 그러면서도 "매킬로이와는 가까운 시기에 다시 만나 우리의 실력을 테스트하고 경쟁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회를 단독 4위(12언더파)로 마친 매킬로이는 "스피스가 21세의 나이에 안정적인 경기를 보여줬다. 내가 그 나이 때는 그런 경기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매킬로이와 동반한 우즈는 공동 17위(5언더파)로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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