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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상고허가제 등 제도개편 속도낸다

대법관 1인당 사건처리 연 3,000건 넘어 업무부담 과중<br>"너무 많은 상고 사건이 정책법원 역할에 걸림돌"<br>사법정책연구원 TF 출범 고법 상고심사부 신설 등 논의<br>1·2심 충실한 재판 선행돼야 소송권 침해 우려 제기도

양승태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의 대법관들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전원합의체를 열고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경제DB


A대법관은 오전 8시50분께 서초동 대법원 내 집무실로 출근해 연구관들이 올린 기록들을 검토하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자신이 소속된 부에 올라온 기록을 검토하며 오전 시간을 보낸 뒤 점심 식사 때 잠시 집무실을 비운다. 점심 식사 이후에도 잠시 차 한 잔 마실 여유 없이 퇴근 시간까지 또 다시 기록을 검토하며 나머지 시간을 보낸다. 하루 종일 기록에 파묻혀 사는 셈이다. 이틀에 하루는 밤 10시 이후까지 야근한다. 일주일에 사흘을 야근해도 기록을 제대로 검토하려면 늘 시간이 부족하기만 하다.

A대법관은 "기록 검토를 미루면 서류가 쌓이기 때문에 업무시간에 손님이라도 찾아오면 차 한잔하는 시간만큼 퇴근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과다한 업무에 대해 에둘러 설명했다.

실제로 대법관이 1년에 처리해야 하는 사건 수가 3,000건을 웃돈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법원이 처리한 사건은 모두 3만6,000건으로 10년 전 1만8,000건의 2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과다한 사건 부담으로 법률심 기능과 정책법원 역할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법원이 상고심 제도를 개편하기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 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이후 상고심 제도 개편안을 검토하던 대법원이 최근 사법정책연구원 태스크 포스(TF)를 신설하는 등 상고심 제도 개편안 논의에 본격 착수한 것이다.

그 동안 대법원은 사법정책연구원이 없어 사법정책자문위원회의에서 사법 정책 전반에 대해 논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적ㆍ물적 지원이 상황에서 위원회에서 상고심 개편안 등을 본격 논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이에 대법원은 여러 차례 연구원 설립을 국회에 요청했고 국회는 최근 내년 초 사법정책연구원 신설을 주요 내용으로 법원조직법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법정책연구원은 대법원 산하에 신설되며 사법정책연구원장과 수석연구위원을 각각 1명씩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이때 대법원장은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거치도록 했다

상고허가제와 고법 상고심사부 방안, 대법원의 이원적 구성 방안, 상고법원 방안 등 다양한 방안에 대해 심도 깊은 연구와 폭넓은 논의를 할 수 있는 사법정책연구원 신설이 확정됨에 따라 상고심제도 개편 논의가 가속화 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대법원이 검토하고 있는 방안은 '상고허가제 재도입'과 '고법 상고심사부 신설' 등이다. 상고허가제는 대법원이 상고여부를 판단해 적절한 상고이유를 갖춘 경우에만 재판을 진행하는 제도다. 고법 상고심사부는 항소심 법원에서 상고 할 수 있는 사건들을 걸러내는 제도다.

이 중 가장 유력한 안은 상고허가제도다. 지난 1990년 9월 상고허가제가 폐지된 이후 상고사건 이 급증했기 때문에 상고허가제 재도입은 대법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이다.

실제 상고허가제가 폐지된 지난 1990년 600여건에 불과했던 대법관 1인당 사건 부담 수는 지난해 처음으로 3,000건을 넘어 12년 만에 5배 가까이 늘어났다.

상고허가제 폐지 이후 대책으로 도입됐던 심리불속행제도 시행 이후 2~3년간 접수 건수가 줄었지만 다시 증가세를 회복해 1998년에는 심리불속행제도 시행 전의 접수 건수를 넘어섰다. 상고 이유로 적절치 않은 건에 대해 심리를 그만두고 기각 결정을 내리는 심리불속행제도가 대법원 업무 부담 감소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대법원이 상고심 제도 개편 논의를 진행하는 이유는 상고심 사건 대부분이 법원의 법률적 판단을 문제로 삼는 대신 사실 관계를 다시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는 상고가 많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로 인해 권리구제 지연과 소송비용 증가 등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대법원에 따르면 2002년 이후 10년간 상고기각률은 93∼95%이고, 파기율은 5∼7%에 불과하다. 더욱이 무익한 상고가 많다고 해도 주요한 사건에 대해 법률적 판단을 내리는 데 핵심적 기능을 하는 전원합의체 선고에 대해 소홀히 할 수 없다.

특히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이후 사건 부담의 증가 속에서도 전원합의체를 통한 법리선언 기능을 강화하면서 지난해 전원합의체 사건 수는 예년의 2~3배인 28건에 이르고 있다. 올 들어서도 7월 말 현재 13건으로 평년의 1년치에 가깝다.

이처럼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전원합의체를 활성화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의 신뢰성 제고와 소수자 보호, 정책법원으로서의 기능 제고를 위해서는 전원합의체 활성화가 필수적이지만 과다한 상고사건 수는 전원합의체 활성화의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얼마 전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상고허가제 등으로 대법원이 심리할 사건을 줄이는 것이 옳다"며 "상고심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외면하기 힘들다는 고민도 있지만, 이제는 어떤 제도를 택할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상고허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은 매년 약 8,000건의 상고허가 신청 사건 중 상고가 허가돼 판결이 이뤄지는 건 수는 80~90건에 불과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상고심 제도가 개편될 경우 국민들의 소송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아울러 상고심 제도 개편에 앞서 1ㆍ2심 재판부가 소송 당사자가 재판 결과에 만족할 수 있도록 충실한 재판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하급심에서 충실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재판을 다시 받길 원하면서 상고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 며 "제도 변경에 앞서 하급심 재판이 충실한 재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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