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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8월 17일] 서울 르네상스 '벤치카핑'은 그만

외국인들이 처음 서울에 오면 세 번 놀란다고 한다. 생각보다 첨단도시라는 데 놀라고 사방을 둘러봐도 똑같이 생긴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다는 데 놀란다고 한다. 또 여간해서는 서울 고유의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는 것도 특이점이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야심 차게 내놓은 ‘한강 르네상스 프로젝트’는 이 같은 외국인의 마음을 헤아려(?) 그동안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막혔던 한강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뒀다. 외형적으로는 한강 주변을 단장해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듯하지만 실상은 세계 곳곳의 도심을 짜깁기하는 데 바빠 보인다. 광화문 광장 개방에 앞서 서울시는 유럽광장을 벤치마킹해 꽃밭을 조성하고 시원한 분수를 마련했다고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못하는 ‘유럽 도시 광장의 돌연변이’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강북 곳곳에서 건설되고 있는 ‘새 동네(New Town)’ 조성은 또 어떤가. 오래된 골목길은 낙후되고 부끄럽다는 생각에 싹 밀어버리고 대형 건물과 아파트 단지 조성에 바쁘다.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쌓아가는 프랑스 출신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르 클레지오는 ‘서울은 사람 사는 향기가 가득한 곳’이라며 그의 유별난 한국 사랑을 표현한 바 있다. 그가 예찬한 장소는 첨단빌딩이나 아파트촌이 아니라 신촌 근처의 복잡한 골목과 언덕에서 내려다본 아현동 주변의 풍광이다. 일부는 우리 스스로가 ‘도시의 슬럼’이라며 재개발을 하는 지역이다. 서울시의 개발 정책은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를 외치며 같은 색의 슬레이트 지붕을 올리기에 바빴던 지난 1970년대 새마을 운동과 닮은 데가 많다. 바뀐 것이 있다면 해외 선진국을 벤치마킹했다는 점일 테다. 오래 축적된 우리의 정취가 살아 숨쉬는 피맛골은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철거하는 대신 한강 뚝섬에는 파리 센강의 선탠장을 옮겨놓은 것이 좋은 사례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은 건물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을 체험하고 싶어 한다. 우리가 프랑스의 유명한 바게트집을 일부러 찾아가듯 관광객들이 피맛골의 허름한 생선구이집을 찾는 것은 서울 사람들의 삶을 맛보기 위해서다. 파리에 있다고 서울에 옮겨놓으면 좋겠다는 발상은 창의성이 가미된 ‘벤치마킹’이 아니라 무조건 베끼고 보자는 ‘벤치카핑’이 아닐까. 진심과 애정을 갖고 서울의 역사와 사람들을 연구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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