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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이슬람의 편린들 그 베일을 벗기다




『 이란의 여성 변호사 겸 인권운동가인 시린 에바디는 만해축전이 열린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12일 2009 만해 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는 지난 2003년 이슬람권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으며 독일 등 일부 서방언론들이 '차기 이란 대통령'으로까지 거론하는 인물이다. 이번 방한 기간동안 에바디 변호사의 일정은 '파격'이라 할만했다. 입국 다음날인 8일 그는 오전 천주교 서울교구청을 방문, 정진석 추기경을 만났다. 곧이어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에서 '이슬람과 민주주의의 공존이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슬람교도가 국내 기독교 교회에서 강연한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오후에는 서울 봉은사를 찾아 명진 주지스님과 합장 인사를 나누고 불교계 인사들과 면담했다. "모든 종교가 길은 다르지만 우리가 행복을 누리고 후손들에게도 행복을 나눠줘야 한다는 목표는 한가지"라는 말로 그는 자신의 행보를 설명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라지만 무슬림신자인 에바디 변호사의 행보가 특이하게 보이는 것은 이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우리의 고정관념 탓이 크다. 사실 대다수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이슬람이란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꾸란', 일부다처제, 히잡과 부르카, 알카에다와 탈레반 등 테러리스트, 9ㆍ11 테러,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등의 이미지가 조각조각 떠도는 정도다. 서울의 한복판 이태원에는 2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르는 모스크가 지난 76년부터 우뚝 서있었지만 그 일대 이슬람 거리와 모스크, 무슬림들의 모습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설기만한 풍경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이슬람과 우리의 교류의 역사가 1,000년이 넘고 50년 한국전쟁 터키군 파병, 70~80년대 한국 건설 노동자 파견 등 오랜 관계를 맺어왔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이슬람의 편린은 이처럼 표면적이고 사건중심적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점차 복잡미묘해지고 있다. 두려움과 호기심, 새로운 시장 개척에 대한 갈망 등 여러갈래로 다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9ㆍ11 테러를 시작으로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전쟁, 김선일 씨 피살사건,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등을 겪으면서 우리 안에는 이슬람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이 생겨난 한편으로 이슬람의 실체를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젊은층 사이에서 증폭되고 있다. 더욱이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이슬람 금융만 살아남은 것으로 평가되면서 이슬람 금융에 대한 관심, 57개국 14억명에 달하는 이슬람권을 신시장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주목받고 있다. 이번주 리빙앤조이는 이렇듯 우리 안에서 시나브로 변화하고 있는 이슬람의 편린들을 짚어봤다. 』 ● 1,300년의 인연… 13만 무슬림이 거리 누빈다
지하드는 '성전' 아닌 '선교'… 일부다처제도 현실과 달라
70년대 도로·항만·교량 등 건설해 준 한국 고마워 해
미국발 금융 위기 속에서도 '이슬람 머니' 건재 과시
최근 정부·기업·대학 중심 '뉴 블루오션' 전문가 육성
우리 민족이 무슬림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최소 1,300여년전으로 전해진다. 당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신라에 당에 적을 두고 있던 무슬림들이 접촉해오면서 신라는 이슬람권과 교역하기 시작했다. ‘처용가’의 처용이 무슬림 상인이었다는 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측 기록에 나타난 무슬림들과의 최초 접촉시기는 11세기초 고려시대에 해당한다. 이 시기 이슬람권과 활발한 국제무역을 하게 된 고려에는 일부 무슬림들이 정착, 종교 공동체를 형성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무슬림 지도자들이 공식적인 궁중의식에 초대된 사례들이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에까지 등장한다. 오늘날 약 15만명의 신도들이 있는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와 전국적으로 8개에 달하는 이슬람성원이 지어진 밑거름이 된 것은 한국 전쟁 당시 터키 무슬림들의 참전이었다. 또하나 한국과 이슬람의 관계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70~80년대 사우디 아라비아, 이란 등으로 파견돼 도로를 닦고 건물을 지었던 한국 노동자들의 땀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70~80년대 연인원 100만명이 넘는 건설 노동자들이 중동으로 건너가 2~3년씩 열사의 땅에 터를 잡고 24시간 3교대로 일했다”며 “그 도로를 한국 자동차가 달리고 중동의 가정에서 한국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이제는 한국 드라마를 보며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이슬람 70~80년대 중동 건설 특수 이후 우리에게 잊혀진 존재로 사라졌던 이슬람은 2001년 9ㆍ11 테러와 함께 공포와 호기심의 대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슬람 국가들 중에는 내전이 진행중인 곳이 많고 국경지역에선 분쟁이 계속돼 여행지로 택하기엔 부담스럽다. ‘거의 매일 폭탄테러가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중동지역은 사업목적 혹은 선교 및 봉사활동을 위해 찾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선뜻 발을 딛기 어려운 곳이 돼버렸다. 이슬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한국인들에게 이슬람교는 전쟁을 통해서라도 이슬람교를 전파하는 ‘성전’을 최고의 교리로 삼는 호전적인 종교이며 일부다처제를 지키고 부르카와 히잡 등으로 여성들의 노출을 금지하는 등 여성억압적이고 전근대적인 종교로 통한다. 이행래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이맘(예배 집전자)은 “최근들어 대중 강연을 많이 다니는데 ‘여성을 억압하고 전쟁이나 일삼는 종교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고 말했다. 이원삼 선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이슬람 금융 유치전쟁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한국에선 이슬람뱅크를 유치하자는 얘기만 나와도 ‘이슬람 머니가 한국을 이슬람화시킬 것’이라는 식의 근거없는 소문이나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실정”이라며 “이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방으로 경제적 이익을 놓치고 있는 데서 나아가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기독교계내 ‘이슬람 포비아(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더해져 이슬람에 대한 호기심만큼이나 증오심도 커졌다. 현지 유학과 사업, 취업 등을 목적으로 개종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실제 신도수를 헤아리기 쉽지 않지만 한국이슬람교 중앙회측에 따르면 국내 이주 무슬림 인구 추정치는 10만~20만명, 한국인 무슬림은 3만5,0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이슬람 전문가는 “어떤 사회든 이주민 마이너리티가 10%를 넘어서면 주류사회가 긴장한다. 최근 유럽인들이 유라비아(유럽의 이슬람화)에 대한 두려움으로 외국인 이민ㆍ취업 규제정책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이주민 마이너리티의 확산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슬람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문화동반자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에서 6개월간 초청연수에 참여하게 된 말리 관광공사 직원 킨타 씨는 “한국 사람들은 내가 무슬림이라고 하면 첫 번째 질문이 ‘너도 부인이 4명이냐’”라며 “한국인들에게 무슬림은 일부다처제를 따르고 폭력적인 종교를 믿으며 금기사항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한국인들이 흔히 갖는 이슬람에 대한 오해와 진실은 뭘까. ▲오해1. 이슬람은 일부다처제를 지킨다=이슬람 국가들 중에서도 일부다처제를 지키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이슬람 경전인 꾸란에 부득이한 경우 부인을 더 들일 수 있다고 하지만 이를 장려하진 않는다. ‘나는 페르시아가 좋다’라는 책의 저자인 주태균 테헤란 한국학교 교장은 “무슬림이 최고 4명까지 부인을 얻을 수 있는 일부다처제라고 하지만 이란에서 부인을 2명 이상 둔 가정은 거의 보지 못했다”며 “대학생 중 여성 비율이 60%에 이르는 이란에서 일부다처제는 불가능한 얘기”라고 했다. ▦오해2. 이슬람은 타 종교를 이해하지 않는 호전적인 종교다=한국인에게 이슬람을 상징하는 문구를 꼽으라면 ‘한 손에는 꾸란, 한 손에는 칼’이지만 이 말은 꾸란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지하드를 ‘성전’이라고 번역하는 것에 대해 이슬람 관련 학자들은 “종교의 외연 확장은 민주적인 방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때로 궁지에 몰리면 호전적인 방식을 취할 수도 있는 것”이라며 “엄밀히 말해 지하드는 성전으로 번역할 수 없고 일종의 선교활동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테러단체들이 ‘지하드’를 내세우며 일삼는 테러행위 역시 이슬람교 내부에서는 교리에 벗어나는 불법 행위라고 여겨진다. 흔히 이슬람교의 신이 알라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알라는 아랍어로 신(the god)을 의미하는 말로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존재다. 2005년부터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으로 선교활동을 다녀온 대학생 김현정(25) 씨 역시 “하나의 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무슬림들이 나를 같은 길을 걷는 사람으로 존중해줘 이슬람권 국가 사람들이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오해3. 무슬림은 한국에 적대적이다=중동지역을 다녀와본 한국인들은 중동 사람들이 한국에 우호적이라고 느낀다. 주태균 교장은 “한국은 79년 이슬람 혁명 이전인 74년부터 현지에 진출해 토목건설 공사에 나섰던 나라로 인식하고 있다”며 “당시 이란 근대화의 기초를 다지는 도로, 항만, 교량 공사에 직접 참여한데다 1980년 발발한 이란-이라크 8년 전쟁중에도 다른 나라의 건설사들은 철수했지만 한국 건설사는 끝까지 공사를 다 마쳐 정부와 민간 모두 한국을 신뢰한다”고 전했다. 최근 우리 기업들이 남부 가스전 개발, 대형 정유공장 건설, LNG 가스 저장소 건설 등 굵직한 플랜트 수주를 따내고 있는 것 역시 이 같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최근에는 중동에서 대장금, 해신, 주몽 등이 인기를 끌면서 아시아 한류 열풍을 이어갈 만한 전략지로 꼽히고 있다. ◇‘이슬람 제대로 알기’에 앞장서는 젊은이들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관계자들과 이슬람 관련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2001년 9ㆍ11테러 이후 이어진 전쟁과 테러 속에서 오히려 한국 젊은이들이 ‘이슬람을 제대로 알아보자’는 움직임이 생겼다는 것. 해방 후부터 9ㆍ11테러 전까지 국내의 이슬람 관련 서적은 50권이 채 안 됐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중동 관련 서적은 200종을 넘어섰고 이슬람을 연구한 국내 학자 12인이 함께 쓴 ‘이슬람(2001, 청아출판사)’은 22만권이 넘게 팔렸다. 대학은 물론 언론사, 초ㆍ중ㆍ고등학교, 박물관, 공공기관, 대학 문화센터 등을 망라하고 이슬람 문화와 사회에 대한 시리즈 강좌가 개설되고 있다. 이희수 교수는 “대학강좌와 대중강좌가 부쩍 늘었으며 CEO 초청강좌는 1년에 100회 넘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슬람은 지적 호기심의 대상에서 나아가 젊은이들이 진출할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와 기업체, 대학 등이 중동 및 이슬람 전문가 육성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2007년 사법연수원에서는 ‘이슬람 법과 문화’ 강의가 개설되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로펌들은 두바이를 비롯한 중동, 중앙아시아에 한국인 변호사를 파견해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에 컨설팅을 하고 있다. 연간 2학기 120명 정원으로 개설되는 이 강좌는 매년 강의 추가 개설 요청이 있을 정도로 인기 강좌로 자리잡았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이슬람 관련 학자들에게는 학생들의 문의도 이어지고 있다. 이희수 교수는 “대학원생들 중에 이슬람을 연구하고 싶다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어떻게 하면 이슬람 전문가가 될 수 있냐’고 묻는 이메일도 자주 받는다”며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이슬람 머니를 잡아라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이 파생상품이다. 그런데 이슬람 금융은 샤리아 법에 의거해 이자 지급과 파생상품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덕분에 금융위기라는 폭풍 속에서 이슬람 금융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중동은 또한 한국이 에너지 자원의 90%를 조달하는 지역이다. 70~80년대부터 계속됐던 플랜트 수주는 오늘날까지 한국 건설업체 해외 플랜트 수주의 70%에 달하는 수준이다. 상품시장으로서의 가치도 커서 국내 전자제품 업체들은 모두 중동 현지에 지사를 두고 이슬람 특성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연평균 매출액 성장률이 20%가 넘는 이슬람 지역에서 LG전자는 꾸란 경전이 내장돼 있는 PDP TV ‘코란TV’와 메카 방향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을 판매해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전세계가 이슬람 경제에 주목하는 가운데 사실상 한국은 이슬람 사회와 문화, 특히 샤리아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관련 법 정비가 돼 있지 않아 이슬람 머니를 유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유럽 대학에는 이슬람 금융 경영학을 전공과목으로 개설돼 있고 ‘이슬람 금융 허브’를 주창하고 나선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등은 수년전부터 제도 개선 작업을 시작해 결실을 맺고 있다. 70~80년대 미국, 유럽 등으로 향했던 오일 머니는 최근 아시아를 신규 투자처로 꼽고 있지만 투자에 앞서 한국 산업 시찰에 나선 중동 투자자들은 투자가 어렵다는 반응이다. 국내 유일의 샤리아법 학자로 꼽히는 이원삼 교수는 “중동 투자 사절단이 방한하는등 이슬람 머니의 투자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법과 제도가 미비한데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우리 기업들에겐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70~80년대 중동 근대화에 일조하며 도시의 기초를 닦았던 한국이 지금은 이슬람권과의 경제협력에 있어 후발주자가 된 것에 대해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 기업들이 30여년간 중동에서 오일머니를 벌어들였지만 돈벌이에만 급급했지 이슬람권의 문화와 역사 연구를 게을리한 건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이슬람 글로벌 리치 유치전은 관광분야에서도 한창이다. 지난 6월말 한국관광공사는 이슬람 특화 관광코스를 개발하고 청계천 TIC센터에 기도실을 설치하는 등 이슬람 타깃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관계자 팸투어를 실시했다. 전효식 한국관광공사 아시아대양주팀장은 “지난해 무슬림인 말레이시아 인기 가수 마위를 현지 한국홍보대사로 임명했고 중동 현지 관광박람회 등에 참여해 이슬람 특화 코스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며 “일본, 중국에서 이슬람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데 반해 우리는 올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예년 수준인 11만명을 유지했고 경기 침체가 가시면 연간 10~15%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슬림 관광객 유치에 앞서 지적됐던 할랄 음식점, 기도시설 부족 등의 문제는 점차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강원도에 할랄 음식을 판매하는 음식점 7곳이 추가로 지정됐고 경기도와 남이섬 일대에 할랄 음식점을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할랄 한식을 즐길 수 있는 할랄 도시락도 여행사, 공사를 통해 주문할 수 있게 됐다. 히잡을 착용하는 이슬람 여성들을 겨냥, 쪽빛염색 체험을 통해 직접 히잡을 만들어보는 코스도 이슬람 특화 상품으로 개발했다. 현재 한국관광공사는 산업시찰, 의료, 쇼핑 등 이슬람 특화 관광코스를 220개로 마련해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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