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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폐타이어 작품으로 주목받는 조각가 지용호

단단함 속 애수 지닌 뮤턴트…상업적 성공 뒤 예술가적 고민 안은 지용호

산업화의 산물인 버려진 타이어를 재활용하는 방식으로 특별한 작품 세계를 펼쳐가는 조각가 지용호 씨가 폐타이어로 만든 자신의 작품 옆에 서 있다.

지난달 22일 저녁 홍콩 중심가인 코즈웨이베이 타임스스퀘어(時代廣場)에서 한국의 조각가 지용호(32ㆍ사진)의 야외전시가 개막했다. 폐타이어를 잘게 잘라 이어붙여 만든 그의 검은 야수들은 밀림이 아닌 빌딩 숲에서 웅비했다. 홍콩 방문객이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는 여름 휴가철에 타임스스퀘어는 전시와 공연을 마련하는데, 이번에는 지난해 홍콩아트페어에서 활약했던 한국의 젊은 작가로 지용호와 이환권을 함께 초청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화가 웨민준ㆍ수젱구어ㆍ황용위, 대만의 밍주 등 아시아 정상급 작가들이 거쳐간 자리다.

“미켈란젤로가 평생 돌을 파고들었고 로댕이 끝없이 청동을 연구한 것처럼 ‘나만의 재료’로 폐타이어를 택한 것뿐입니다.” 경기 양주시 장흥아뜰리에 내 지용호의 작업실에서 작가보다 먼저 시커먼 돌연변이 생물체 ‘뮤턴트(mutant)’와 마주쳤다. 악어가죽보다 질기고 철갑만큼이나 단단해 보이는 검고 육중한 표면이다. 타이어 특유의 요철은 사람에 빗댄다면 세월을 머금은 주름에 해당한다. 버려진 타이어가 작가의 손에서 생명성을 얻어 ‘뮤턴트’로 다시 태어난다. 조형작업은 항상 손수 하지만 폐타이어를 자르는 일은 혼자 할 수 없어 어시스턴트를 고용했고 어찌나 힘을 썼던지 팔뚝은 나날이 굵어져 간다. 벌써 6년째 그는 왜 이토록 타이어 만을 고집할까.

“양감과 고유성이 살아있는 전통적인 방법의 조각을 좋아합니다. 유럽 여행에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마주한 순간 ‘흙, 돌같은 전통 재료로는 절대 이들을 넘어설 수 없겠다’는 벽을 느꼈지요.”

그래서 그는 시대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나만의 재료’를 찾아 나섰다. “회화가 아닌 조각만이 가진 역동성과 힘, 강인하고 탄력있는 피부 표현을 위한 소재이면서 비바람 부는 실외 배치도 가능하고 재료 공급이 원활한 소재를 구하다 보니 타이어라는 재료를 발견했습니다.”

버려진 타이어를 재활용하니 ‘친환경 조각’이다. 버려진 재료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강한 변종으로 만드는 ‘뮤턴트’ 시리즈는 결과물만 보면 서양적이지만 순환의 원리가 지극히 동양적이다. 바로 이 점에 외국 컬렉터들이 열광한다.

육중한 몸체에는 신화시대 동물 같은 신비로운 힘이 꿈틀대지만 맑은 구슬로 만든 눈동자에 의외의 나약함과 애수가 느껴지는 ‘반전’도 있다. “돌연변이는 결국 현대인의 이기심이 만든 변종이므로 강하지만 슬픔을 가진 까만 눈동자를 집어넣는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강원도 출신으로 홍익대 조소과와 뉴욕대 대학원을 졸업한 지용호는 2007년 11월 뉴욕 필립스경매에서 작품 ‘상어’가 14만5,000달러(약1억3,000만원)에 낙찰되면서 혜성 같은 신인으로 불렸다. 이후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의 개인전, 2008년 봄 가나아트 뉴욕 개인전, 지난해 대만의 유력화랑인 소카아트센터 등으로 돌풍을 이어갔다. 이어지는 전시 ‘솔드아웃(매진)’과 국제아트페어의 호평, 경매에서의 기록 경신에 자신도 얼떨떨할 지경이다.

“좋기만 한 일은 아니예요. 미술관이나 비영리공간에서의 전시로 먼저 한국 미술계의 객관적 평가를 받은 다음 상업갤러리로 넘어갔어야 하는데 순서가 바뀌었죠. 당시 유학생 신분이었고 미술시장이 활황이라 ‘미술투자성 판매율’에 초점이 맞춰진 게 괴롭기도 했어요. 외국에서는 예술성과 상업성을 겸비하는 게 중요한데 우리 미술계는 그 둘이 반비례한다고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아직은 제가 어리니까 더 좋은 전시를 만들도록 애써야죠.”

그는 진행중인 홍콩 전시 외에도 8월에는 화가 김남표와 2인전을 연 다음 이 전시를 뉴욕, 영국 등 해외 순회전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언제까지 타이어로 작업할 것이냐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같은 재료, 유사한 소재에 사람들이 식상해하면서부터 작가들은 헷갈리기 시작하는데 타협할 필요는 없어요. 데미안 허스트가 ‘죽음’, 마크 퀸이 ‘뒤틀린 욕망’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일관되게 파고들었듯 저 역시 폐타이어라는 일관된 목소리로 얘기할 겁니다. 거장들도 평생 하나의 재료에 매달렸는데 저 역시 평생 타이어만 작업해도 ‘개가’를 올리기엔 부족하지 않을까 싶어요. 흔들리지도, 조급해 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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