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100 m 늘어섰는데 만석에 무정차… 차 문 두드리며 "태워달라"

입석금지 첫날 광역버스 타고 출근해보니

30분 기다린 승객들 발 동동 "지각하면 당신이 책임질거냐"

공무원 멱살잡고 곳곳서 항의… 지켜보는 운전사들도 난감

광역버스 입석 금지 시행 첫날인 16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의 한 버스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분당=권욱기자

광역버스 입석 금지 첫날인 16일 오전7시. 경기 분당 서현동의 정류장에는 광역직행버스를 기다리는 승객 100∼200여명이 이미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분당 서현동은 '빨간버스(광역직행버스)' 노선이 13개나 지나는 대형 정류장이기 때문에 버스를 탈 확률이 그만큼 높다고 보고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는 버스들은 대부분 '만차'라는 팻말을 걸어 놓고는 휑하니 무정차로 통과해 버리기 일쑤였다. 이미 기점(종착점)인 경기 용인과 광주에서부터 승객을 태운 버스들은 분당을 지나기 이전에 이미 만차가 돼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과거 같으면 입석으로 30여명을 더 태우고 다녔겠지만 안전사고를 이유로 입석을 금지하면서 출근길 버스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것이다. 정부가 증차를 했다고는 하지만 규정대로 40여명만 태우다 보니 출근길 직장인들을 실어 나르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다른 정류장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천 서구 석남동에서도 6시40분부터 만차 행렬이 이어졌다. 만차로 지나치는 버스가 6대를 넘자 한 직장인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버스정류장을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싸움 직전까지 간 장년 부부의 상황도 목격됐다. 부인이 "오리역(기점)으로 가자고 그랬지 않느냐"고 하자 남편이 "증차를 믿고 가까운 곳으로 온 것인데 이렇게 버스 타기 어려울 줄 알았느냐"며 서로 얼굴을 붉힌 것이다.

출근시간이 다가오자 시민들은 더욱 초조해 했다. 배차 간격이 줄지 않은 채 버스를 계속 놓치자 정류장을 지나는 버스에 대고 화풀이를 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어떤 이는 욕을 퍼부었고 어떤 이는 버스를 손으로 쾅쾅 두드리며 제발 태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를 지켜보는 버스 운전사들도 난처하긴 마찬가지다. 입석운행 금지 첫날이기 때문에 시범 케이스로 걸릴 수 있어 정원만 채우고는 밖에서 애타게 탑승을 기다리는 승객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 있던 시청 공무원을 붙잡고 항의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 시민은 "버스만 늘려놓으면 일을 다한 것이냐"며 "나는 이거 타면 30분 걸리는 남산터널을 다시 나와서 택시 타고 가야 되는데 지각하면 책임지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성남시청은 7시20분부터 광역급행버스(서현역∼서울역) 5대를 증차했지만 이미 대기 줄은 정류장 근처 아파트 단지를 돌아 100m 넘게 이어졌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윤모(26)씨는 "지금은 그나마 휴가철에 대학생 방학인데도 이 정도인데 앞으로는 더 심각할 것"이라며 "정책 만든 사람들이 광역버스를 타보기나 했는지 의 문"이라고 했다.

다른 승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 근처와 다른 방향의 목적지까지 일단 타고 현지에서 다시 택시를 타고 회사로 가기 위해 좌석이 남아 있는 버스는 무조건 올라타는 모습도 보였다.

시청에서 현장으로 모니터링을 나온 한 요원이 "미리 조사했던 버스 회사가 러시아워를 7∼8시로 잡아 증차를 늦게 시작했다"며 어처구니없는 해명을 하자 시민들은 끓어오르 는 분노를 참느라 더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이 관계자는 "시청에서는 버스 회사에 전달해 내일부터는 이보다 한 시간 빠른 6시20분에 증차시키겠다"고 했지만 이미 승객들은 한바탕 지각 대란을 겪은 뒤였다.

분당에서 서울역으로 출퇴근하는 조수연(25)씨는 "1분 1초가 급한 출근시간인데 이제 와서 실험을 하고 있으면 어떡하냐"며 "오늘 버스를 못 타 30분을 늦어 회사 근처로 집을 옮기는 것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약속과 달리 증차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노선도 수두룩했다. 경기 파주에서는 운정신도시∼서울 당산역을 오가는 버스의 경우 애초에 입석 금지 시행을 앞두고 증차를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날 증차된 버스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버스를 이용하는 김미르(25)씨는 "출퇴근 시간에도 배차가 20분이라 늘 3∼40명은 서서 가는데 한두대 증차하는 것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며 "버스 회사는 노선을 줄이려고 하는 상황인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지역마다 상황은 달랐지만 버스 증차 혼선 외에도 입석 수요예측 실패 등 총체적으로 부실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김기복 시민교통안전협회는 "입석 문제 해결을 버스 몇 대 증차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에서부터 예견됐던 사태"라며 "입석 수요는 변동성이 큰 만큼 버스 통행량, 환승 체계 등 전반적인 부분의 개편을 하고 단속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이 시민들을 얼마나 골탕 먹일 수 있는지 유감없이 보여준 하루였다. /정혜진·윤혜진기㎾자 madein@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