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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소니 꼼짝마"… 유리조각 하나면 차종 파악

■한국기초과학지원硏 류종식·최종순 박사팀 미세증거물 분석기술 개발


국내 자동차 유리·사이드미러 구성물질 달라 화학적 지문 역할

미제 사건 해결 결정적 도움

시신 사후경과시간 정확성 높인 PMI 진단 키트 개발도 추진

강도나 살인·납치 등 강력범죄 사건에서 미세증거물에 대한 분석기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범죄가 지능화되면서 지문과 족적·혈흔 등 범인 추적이 가능한 증거물들의 숫자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연구팀이 이 같은 미세증거물을 통해 뺑소니 차량의 차종과 제조연도, 시신의 사망추정시간을 신속히 파악할 수 있는 첨단과학수사 분석기술을 개발했다.

미세 증거물은 지문이나 혈흔의 DNA와 달리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서 현미경이나 돋보기 등의 장비를 이용해야만 확인할 수 있는 범죄 증거를 말한다. 모발과 페인트·흙·섬유·플라스틱·유리조각 등이 여기에 속하며 지문·족적 등과 달리 눈에 잘 띄지 않아 범인이 간과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미세증거물들은 사건 해결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미세증거물의 경우 일반 증거물보다 분석이 쉽지 않다는 것. 동위원소나 미량원소에 대한 정밀 분석이 필요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요구된다. 미세증거물을 '화학적 지문'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내 연구팀이 첨단장비를 활용, 미세증거물의 활용도와 분석 정확도를 대폭 향상시킬 수 있는 첨단과학수사 분석기술을 연구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환경과학연구부 류종식 박사팀과 생명과학연구부 최종순 박사팀.

류 박사팀은 현재 유리와 거울조각만으로 자동차의 차종과 연식을 정확히 알아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자동차용 유리와 거울이 제조사와 생산공정에 따라 구성물질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류 박사는 "결정화 없이 단단한 물질로 냉각된 융합 무기물인 유리는 미량 원소를 포함해 약 30여종의 물질로 구성돼 있다"며 "제조사나 제조공정별 미량원소에 차이가 발생하므로 작은 유리조각 하나로도 차종과 연식의 확인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를 위해 국내 5대 완성차 메이커에서 사용 중인 자동차 옆 유리 36개와 사이드미러 120개를 분석했다. 각 제품을 파쇄해 표면의 불순물을 완벽히 제거한 뒤 레이저 삭박 유도결합 플라즈마 질량분석기에 넣은 결과, 자동차 회사마다 납(Pb) 동위원소 조성비에 큰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각 유리와 거울의 제조사별 차이도 명확했다.

류 박사는 "자연계의 납 동위원소는 208Pb·207Pb·206Pb·204Pb 등 4종이 존재하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완성차 제조업체별, 유리·거울 제조사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며 "유리와 거울조각은 차량사고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미세증거물이기 때문에 매년 1만1,000건 이상 발생하는 뺑소니 사고 등의 해결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토대로 차량용 유리와 거울의 물질분석을 지속하는 한편 모든 자료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예정이다. 또 중장기적으로 도색용 페인트를 포함한 다른 화학적 지문들을 추가 연구함으로써 자동차 관련사고 해결의 모든 퍼즐 조각을 맞춰나갈 방침이다.

류 박사는 "궁극적으로 유리와 거울·플라스틱 등 차량용 제품에 미량원소를 이용한 화학적 지문을 남겨놓도록 법제화한다면 자동차 관련사건 범인 검거율을 100% 수준으로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 박사팀의 경우 살인사건 피해자, 즉 시신의 사후경과시간(PMI) 판정기술 개발에 연구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PMI를 정확히 알아내면 피해자의 사망추정시간에 맞춰 용의자의 범위를 압축, 신속한 수사진행이 가능하지만 현재는 체온, 혈액 침하, 사체 경직, 부패 등 주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 요인들에 의존하면서 정확성에 한계가 존재한다.

이에 연구팀은 오랜 연구 끝에 흰쥐의 장기로부터 시신의 장기나 체액으로 PMI를 객관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생화학적 마커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 마커를 바탕으로 사건 현장에서 손쉽게 사용 가능한 PMI 진단 키트를 개발하고 있다.

개발 중인 PMI 진단 키트는 임신진단 키트처럼 칩에 체액을 떨어뜨리면 10분 이내에 결과가 나타나는 방식으로 구동된다. PMI 다중 단백질 마커들의 존재 유무로 PMI를 추정하는 메커니즘이다.

최종순 박사는 "현재 국내 PMI 판정 기법은 법의학자의 개인적 경험에 많이 좌우돼 정확성이 떨어지는 편"이라며 "앞으로 PMI 진단 키트 개발이 완료돼 본격 보급되면 살인사건의 초동과학수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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