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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수필] 일

09/17(목) 18:55 金仁淑(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라는 일본 소설가는, 작가가 된 이후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말하자면 전업작가가 되겠다는 것이었는데 전업작가가 된 이후 예상처럼 수입이 보장되지 않자 중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잘 팔리는 책을 쓸 것인가, 아니면 쓰고 싶은 것만 쓰면서 저소득의 삶을 감당할 것인가. 마루야마 겐지는 후자를 택한다. 그는 경비를 줄이기 위해 도시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시골로 이주를 하고, 아이를 낳지 않으며 교제비를 절약하기 위해 사람들도 최소한 만난다. 그는 단지 개 한마리를 키울 뿐이다. 최소한의 삶 속에서 그가 원하는 최대한의 삶을 이루고자 하는, 그의 이와같은 결정, 그리고 실천은 그렇게 살 수가 없는 많은 작가들에게 감동과 동시에 열등감을 느끼게 한다. 물론 대개의 사람들에게 가난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인 가난 뿐만아니라 이상이나 희망 역시도 선택의 문제가 아닐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강요된 가난, 강요된 직업, 강요된 미래…. 살아가는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경우가 몇 차례나 될까. 삶이란 것은 근본적으로 부조리한 게 아닐까. 「작은 것에 만족하라」 든가 「천국의 보상을 믿으라」든가 하는 교훈적인 이야기들도 실상은 삶의 근본적인 부조리함을 슬몃 감추려고 만들어진 일종의 지배이데올로기 같은 것은 아닐까. 며칠 전에 노동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는 선배를 만나, 공단주변의 역전에 거지가 등장했다고 하면 믿겠느냐는 말을 들었다. 실은 거지라는 단어조차가 몹시 생소했다. 물론 간혹, 지하철 안에서나 역의 계단에서 행인들에게 적선을 구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거지」라는 단어는 생소했다. 버스차장이 사라지고 불붙인 연탄을 한 장씩 팔던 연탄가게가 사라지고 시장의 얼음가게가 사라진 것처럼, 거지라는 단어도 그렇게 사라져버린 단어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유복하게 살아서 누릴 수 있는 대개의 기회를 누렸던 사람들은 당장 직장을 잃어도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인맥이 있지만 노동자들은 버려지는 순간 더 이상 갈 데가 없다. 기댈 가족도 친구도 인맥도, 모아놓은 저축도 없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관심을 놓아버린 것 같은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하던 선배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글을 쓰는 사람 뿐이겠는가. 너나 없이 자신의 무게부터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무거워진 오늘의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마/스/크/오/브/조/로' 24일 무/료/시/사/회 텔콤 ☎700-9001(77번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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