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홍윤의 박준선 대표변호사는 ‘신데렐라맨’이다. 밤 12시까지는 무조건 집에 귀가하는 버릇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다. 술을 먹다가도 12시 귀가시간을 지키기 위해 옆 사람에게 조용히 “나 간다”는 말만 남기고는 사라진다. 12시를 넘긴 경우도 더러 있지만,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그는 “12시를 넘기면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하기 때문에 일찍 귀가한다”며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그가 주위의 눈총을 받아가면서도 수년간 ‘신데렐라맨’으로 살아온 것은 두 딸과 아내가 있는 가정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넓은 사무실 배치는 고객위한 고려”= 서초동 법조타운에 있는 홍윤 사무실을 들어서면, 사무실 공간이 꽤 넓다는 인상을 받는다. 정확히 말하면 사무실 배치를 촘촘히 하지 않고 좀 여유롭게 했는데, 박 대표 스스로도 “이렇게 넓은 대표 사무실은 대형 로펌에도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로펌 규모에 비해 좀 지나친 ‘낭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확 트인 공간배치는 박 대표의 철학이 스며든 ‘작품’이다. 그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근심이나 걱정거리를 갖고 오는데, 상담 사무실마저 좁으면 클라이언트(고객)들이 더욱 위축되고 어려움을 느낀다”며 “공간을 널찍하게 배치해 딱딱한 느낌을 없애고, 클라이언트들이 편안하게 상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변호사라는 직업은 남의 아픔을 먹고 사는 직업인데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줘야 한다고 생각에 변호사들이 쓰는 공간은 최소화하고 나머지 공간은 고객들에 돌려준 것”이라고 말했다. 홍 대표 말대로 넓은 공간은 인터뷰 내내 편안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까. 홍윤(弘潤)이라는 이름도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뜻에서 지었다고 박 대표는 귀띔했다. ◇요즘 가장 주목받는 로펌?= 홍윤은 이명박 정부 들어 뜨는 로펌중 하나다. 그러나 박 대표는 이런 평가에 대해 손사래부터 쳤다. “(주위에서) 오버해 얘기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지난 해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의 법률지원단장을, 고문을 맡고 있는 오세경 변호사는 이명박 서울시장 법률고문과 경선후보 캠프 법률지원단장을 맡는 등 현 정부와 특별한 인연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박 대표는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당선돼 법조인 출신 정치인 명단에 오르게 됐다. 박 대표는 주위의 과도한 관심에 대해 “법률지원단장을 맡은 것은 개인적인 일이었고, (정권교체 후) 어떤 과실을 기대하거나 생각을 갖고 도운 것도 절대 아니다”며 “홍윤의 주 업무가 부동산이나 형사사건, 국제법무 분야이기 때문에 정권교체 와는 큰 영향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치적인 부침에 의존해 성장하는 로펌은 오래 못 간다”고도 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법무법인 지평과 화우가 잘 나갔다면, 현 정부에서는 홍윤이 잘 나갈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달지 않고 있다. 어쩌면 홍윤이 5년 내내 과도한 주목에 시달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정치인ㆍ변호사 “9대1 비율로” = 박 대표는 홍윤의 대표를 맡고 있지만, 의정활동에 90%의 에너지를 쏟을 생각이다. 박 대표의 공백으로 홍윤의 업무가 더져지는 것은 아닐까. 그는 “그럴 염려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박 대표가 이같이 자신하는 것은 특유의 업무스타일 때문이다. 박 대표는 홍윤을 처음 만들 때부터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고, 파트너 변호사와 수석 변호사에게 일임했다. 홍윤의 경영은 파트너 변호사가 책임지고 있고, 사건실무는 수석 변호사 지휘하는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다. 또 4개팀(송무팀, 국제법무팀, 등기팀, 컨설팅팀)별로 업무 체계를 갖춰 놓았기 때문에, 박 대표가 들으면 섭섭해 할 지 모르지만, 박 대표의 공백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내부의 분위기다. 그는 “조직은 시스템으로 돌아가야지, 리더가 있고 없고에 따라 일에 영향을 받으면 안된다”며 “국가든 회사든 권한과 책임만 명백하게 주어지면 리더가 간섭하고 감시하지 않아도 생동감있게 돌아가게 돼 있다”고 자신했다. “리더는 구성원들이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 놓으면 놀아도 된다”는 게 그의 독특한 경영철학이다. ◇“인간성이 가장 중요”= 그는 검사생활 9년만에 ‘사람 보는 눈’이 생겼다고 한다. 거짓된 사람인지, 진실된 사람인지 ‘보면 안다’는 것이다. 그가 사람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마음’이다. “일을 대하는 마음, 동료를 대하는 마음, 고객을 대하는 마음이 진실해야 한다”는 게 사람과 관계를 맺는 그의 유일한 기준이다. 그리고 그는 ‘고생을 해 본’ 사람을 좋아한다. 어려움을 겪어 본 사람일수록 진실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도 알기 때문이란다. 그는 “일이라는 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을 대하는 진실된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로펌을 여러 직장중 한곳으로 생각하고, 거쳐가는 곳 쯤으로 여기는 사람은 절대 뽑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표가 홍윤을 만들 때 변호사 수는 5명으로 초미니 로펌이었다. 그러다 2년만에 10명으로 늘었다. 욕심이 생길 만도 한데, 박 대표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내실을 기하는 게 최우선”이라며 외형 확대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홍윤 같은 규모의 로펌은 가장 중요한 게 인재풀이고 유기적인 팀워크”이라며 “억지로 변호사 숫자를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계산적으로 이합집산 하면 너무 각박하는 생각도 든다”며 “자연스럽게 몸집은 불어날 것 같다”고 말해 마음이 통하는 변호사들을 몇 명 더 불러 모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열어 놨다. 홍윤은 최근 미국 등 해외 이민투자분야에 적극 진출하고 있는데, 투자이민 분야 변호사가 추가로 결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수사반장 보며 검사의 꿈 키워= 박 대표는 어릴 적 MBC 인기 드라마였던 ‘수사반장’을 보면서 검사를 꿈꿨다. 평소에도 정의감이 남 달라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할 때면 어김없이 남자 아이들이 줄을 끊고 휙 달아났는데, 그때 마다 남자 아이들을 잡아다 혼내주는 ‘해결사’ 역할을 했다. 아이들은 그를 ‘주먹대장’이라며 따랐다. 그러나 검사의 꿈은 쉽지 않았다. 집안 환경은 그리 넉넉한 편은 못됐다. 박 대표 부모는 동대문 시장에 덧버선을 만들어 납품하는 ‘태양집’을 운영했다. 그나마 1남4녀인 집안의 장손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호사’를 누렸지만, 다른 형제들에게는 얄미운 존재였다. 다른 형제들보다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장남’이라는 위치때문이었다. 그는 이 같은 부담 때문에, 그리고 섬유먼지가 가득한 탁한 공기를 마시며 무던히 일하는 부모를 생각하며 “법대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긴장감이 풀려, 거의 매일을 술을 마시며 방탕한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러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지리산 암자로 유배를 떠난 적도 있다. 3수 끝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사법연수원 시절에는 동기생과 사고를 쳐 ‘퇴원’을 당할 위기도 겪었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이 그를 더욱 성숙시켰고, 지금은 남들이 부러워 하는 변호사에다 국회의원까지 됐다. 그에게 위기는 곧 기회였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박 대표가 어려울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기억이 있다. 지리산 암자로 유배를 갈 당시 눈이 펑펑 오는 산속에서 그만 길을 잃어버려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다. 그때 박 대표 어머니는 “걱정하지 마라. 길을 잃은 것 같았을 때, 그걸 빨리 알아차리고 원래 길을 찾아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길을 잃었다는 불안함 속에서도 어머니는 냉정함을 잊지 않았고, 결국 암자를 찾는 데 성공했다. 새벽명상이 취미인 박 대표는 늘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을 되돌아 보는 계기로 삼고 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소중한 존재로 남고 싶다”는 박 대표. 정치인으로서는 지역 주민들에게 세금이 아깝지 않은 정치인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하고, 국가에 대해서는 국가수준을 업그레이드하는 일에 한획을 그었으면 하는 게 그의 ‘소박한’ 바람이다.
■ 법무법인 홍윤은 송무·기업자문외 부동산 금융 분야등에도 진출 법무법인 홍윤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모토아래 형사, 선거법, 헌법소송, 노동 분야 등의 송무는 물론 기업자문이나 공증, 등기 분야 법률서비스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2006년 5명의 변호사로 출발해 현재 10여명의 각 분야 전문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으며 필리핀 마닐라, 일본 도쿄에 분사무소를 두고 있다. 최근 새로운 법률서비스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부동산 금융, 해외투자 및 개발이민, 권원보험 등에도 진출해 새로운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고객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한화건설, 씨앤그룹, 대한주택보증, KT&G 등이 주요 고객이다. 특히 부동산개발 및 자문분야에 있어 윤에셋, 홍윤부동산컨설팅과 연계해 단순 자문을 뛰어 넘어 의뢰인과의 실질적 동반자 관계를 맺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홍윤측은 설명했다. |
■ 약력 1966년 충남 논산 1985년 서울 성동고 졸업 1989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92년 34회 사법시험 합격 1995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1997년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검사 1999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2002년 법무부 국제법무과 검사 2005년 대한변협 이사ㆍ인권위원 2005년 진실과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 2007년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선대위 법률지원팀장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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