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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변해야 경제가 산다] <1> 기업은 희생양?

정치권 "양극화·인플레 기업 탓" 계층 갈등 조장하며 표몰이<br>大-中企·빈부차 부각시켜 여야, 정책실패 책임 떠넘겨<br>"저성장이 양극화의 원인, 투자늘려 일자리 창출할때<br>규제 강화로 국가경제 타격, 아르헨·比 전철밟을까 우려"

최광(왼쪽부터) 한국외대 교수와 민경국 강원대 교수,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 등 경제학 교수와 경제 분야 전문가들이 지난 13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야 정치권에 선심성 공약 남발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4ㆍ11 총선을 50일가량 앞둔 요즘 대기업이 멍들고 있다. 새누리당과 통합민주당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대기업 때리기 정책으로 국민의 반기업 정서는 높아졌고 대기업들은 만신창이가 됐다.

그러나 대기업 때리기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정치권이 양극화의 책임을 전적으로 대기업에 돌리면 반기업 정서가 커져 기업의 실적이 나빠지게 되고 기업의 실적 저하는 고용사정이 악화로 이어져 양극화의 골이 더 깊게 만들며 궁극적으로 국민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세기에는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아시아의 필리핀이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져 후진국으로 몰락했고 지금은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남미 국가들의 망국적 포퓰리즘의 후유증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더욱이 사회양극화는 대기업의 전적인 책임이 아니라 글로벌 경제환경의 변화와 정부의 정책실패, 정치권의 무능력이 초래한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는 정당하지도 못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단체 고위관계자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사회양극화와 경기침체ㆍ물가상승 등의 주범이 대기업이라며 몰아붙이고 있다"면서 "이는 유권자의 감정을 자극해 한 표라도 더 얻으려는 얄팍한 노림수일 뿐 아니라 위험천만한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대기업 때리기는 전형적 포퓰리즘=정치권은 선거구도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단순화해 계층 간 갈등을 조장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정치권이 대기업을 옥죄는 이유는 자명하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서민층과 자영업자, 중소기업 종사자들로부터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놓고 반대하는 곳도 없다.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복지정책에 실패한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을 덮는 데도 대기업은 좋은 희생양이다.

정치권의 대기업 때리기는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선거를 앞두고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가 이후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푸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선거를 앞둔 특정 시점에 대기업에 대한 규제정책이 쏟아져나오는 것은 유권자의 감정에 호소하려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감정에 치우치기보다는 대기업의 공과 과를 명확히 따져 합리적인 기업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양극화는 대기업보다 저성장이 근본 이유=정치권은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양극화의 주범으로 대기업을 지목하고 있다. 대기업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독식하는 반면 대다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되고 중소기업이 몰락했다는 정치권의 주장은 잘못된 논리다. 대기업들은 국내에서 중소기업과 경쟁하기보다는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실력을 겨루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삼성전자ㆍ현대자동차ㆍLG전자 등 주요 대기업의 전체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80%가 넘는다.



오히려 양극화 문제의 본질은 오랜 기간 지속된 저성장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 경제는 지난 1971년부터 1997년까지 평균적으로 8.9%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IMF 경제위기 후인 1998년부터 2011년까지는 평균 4.2% 성장하며 성장률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국내 경제는 1% 성장할 때마다 약 6만~7만명의 고용을 창출한다. 최근 10여년 동안 연간 평균 25만명 안팎의 일자리가 줄어든 셈이다. 저성장으로 일자리가 줄어들며 비정규직이 500만~600만명 정도로 늘어났고 실직자들이 대거 창업에 나서면서 자영업자는 550만명으로 불어났다. 여기에 글로벌화와 정보기술(IT)의 발달에 따른 고용 없는 성장, 정부의 소득분배 정책 실패 등이 겹치며 한국사회가 양극화의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종전처럼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려 일자리를 창출하는 일이 시급하다"면서 "특히 기업들이 투자를 늘려 일자리를 만들도록 해야 할 때에 오히려 정치권이 기업 때리기에 몰두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 위축되면 경제에도 악영향=1월 무역수지가 20억달러 가까이 적자를 기록하며 한국 경제를 이끄는 수출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것은 2년 만이다. 더구나 지금은 유럽발 경제위기와 미국 경기침체 등으로 기업 환경이 극도로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런 때에 수출의 첨병인 대기업의 발목을 잡으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 전반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각종 규제로 기업활동이 위축될 경우 대기업들은 세금 감면에 공장부지도 무상으로 제공해주는 중국ㆍ미국 등 해외로 생산거점을 이전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국내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제로 대기업들은 선거철을 앞두고 투자 및 신규사업 진출을 늦추고 눈치만 보다가 정권 교체 후 투자를 단행하는 패턴을 보여왔다. 최근에는 여론의 비난을 의식해 호전된 실적을 발표하는 것조차 꺼리는 게 지금 대기업의 현실이다.

한 대기업 고위관계자는 "대기업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옥석을 가려서 비판해야지 기업 규모에 따라 기계적으로 대기업은 무조건 잘못했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과감한 투자와 글로벌 경쟁을 통해 기업을 성장시키는 기업가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국가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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