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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미국의 추락, 오바마만의 책임인가


두세 달 전 월가에서는 미국 달러화 약세 미스터리를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미 경기 회복세가 상대적으로 강하고 오는 10월쯤이면 양적완화 프로그램이 끝나는데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 지정학적 우려가 커지는데도 안전자산인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는 게 통념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당시 월가 이코노미스트들은 달러화 캐리트레이드 자금의 유로화 자산 매입 등 중구난방의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 변수로 논의가 좁혀지고 있다. 중국이 위안화 절상 압력을 누르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미 국채를 매입하면서 미 국채 수익률 하락과 달러화 약세를 불렀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중국의 미 국채 매입 속도는 30년래 최고조에 달했다. 미국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시장 친화적인 환율 시스템을 도입하라"고 압력을 넣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인위적인 환시장 개입이 없었다면 미국 경제 역시 타격을 입었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중국이 미 국채 매입 속도를 늦춘다면 미 모기지 금리 상승으로 주택시장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미국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다른 나라에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정책 수용을 강요해왔다. 인류의 보편적 이익과 글로벌 경제의 공동 발전을 위해서건 자국 금융자본과 기업 이익을 위해서건 결과적으로 미국의 대외 의존도 역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미국, 외교·경제적 고립주의 심화

하지만 미 경제가 전 세계와 그물망처럼 촘촘히 엮인 것과 정반대로 최근 미국에서는 오히려 고립주의 성향이 심화하고 있다. 미 의회가 무책임하게도 국제사회가 합의한 국제통화기금(IMF) 쿼터 개혁안을 4년째 공전시키는 게 대표적이다. 급기야 브릭스(BRICs)가 미 중심의 글로벌 금융체제에 반기를 들면서 신개발은행(NDB)이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아르헨티나의 기술적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는 미국이 현행 글로벌 금융질서를 유지할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미 법원은 최근 아르헨티나에 대해 2001년 디폴트 선언 당시 채무조정을 거부한 헤지펀드들에 대해 원리금을 다 갚으라고 판결했다. 이제 미 투자가들은 자국 법원을 믿고 별다른 리스크 없이 해외 고위험·고수익 국채에 투자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채무조정을 통한 악성부채 정리'라는 자본주의 메커니즘은 큰 손상을 입었다. 또 한 번 넘어진 나라는 채무상환 부담에 짓눌려 경제가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질 게 뻔하다. 미국이 2차대전 이후 부여받은 국제 금융시장의 안정 임무는 망각한 채 '달러 권력' 특권만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모양새다. 미 당국이 프랑스계 BNP파리바가 이란 등에 대한 미국의 제재 조치를 위반했다며 90억달러의 벌금을 때린 것도 마찬가지 사례다.

외교 분야에서도 미국의 신고립주의 성향은 뚜렷하다. 시리아·이라크·우크라이나 사태 등에서 나타난 미국의 무기력한 태도는 '세계의 경찰국가'라는 위상과는 거리가 멀다. 미 보수 세력들이 '버락 오바마는 (최악의 외교정책을 폈다는 평가를 받는) 제2의 지미 카터'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오바마 대통령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미국은 더 이상 전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 위의 국가'가 아니라는 얘기다. 경제력·군사력 등에서 단일 패권국가로서의 위상이 위협받고 있고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 탓에 지상군 파견 여력도 거의 없다.

이익 좇다 미국적 가치 복원력 잃어

무엇보다 미 정치권이 정파적 이익에 매몰돼 풍부한 중산층, 기회의 균등, 민권 등 전성기를 이끌었던 미국적 가치를 복원할 의지나 힘을 상실해가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미국은 세계 지배의 축 가운데 하나인 글로벌 금융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눈앞의 이익에만 매몰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 전파라는 장기적인 이득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미국의 슈퍼파워는 몇 십년간은 더 지속될 것이다. 지금 달러 패권의 붕괴는 전 세계의 공멸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모든 국가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과거에도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를 무시하는 등 고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과거 오만함이 권력을 주체할 길이 없는 슈퍼파워의 자신감이었다면 지금 고립주의는 힘을 잃어가는 공룡의 초조함으로 보이는 것은 기자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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