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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가 내놓은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은 기존 대학의 '학과' 개념을 허물고 '전공' 개념을 도입해 신규 및 융복합 학문 신설을 유도하는 등 취업 중심의 미래형 인재 육성 대학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것이다.
학교와 취업 현장의 '미스 매치'를 줄이고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한 개혁이라는 게 학교 측 입장이지만 결국 인기 학과 쏠림 현상이 강화되며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인문·자연계 등 순수학문은 급격히 쇠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방안은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평가'를 앞두고 상당수 대학에서 관련 학과 통폐합을 위한 눈치작전을 벌이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중앙대는 이번 방안에서 2016년부터 학과 개념을 없애고 단대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고 2021년부터는 아예 인문사회, 자연공학, 예술, 의약학 등 계열별로 학생을 모집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공 선택도 기존 학과 정원의 120%까지 허용하고 특정 전공의 인기가 높을 경우 제2 전공, 복수전공 등의 길을 터 학생 스스로 원하는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최대한 유도할 것이라고 답했다. 교육계에서는 이 경우 수요가 낮은 학과는 경쟁력과 취업률이라는 미명하에 결국 '공중분해'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학 측은 1학년 단위의 교양과목 강좌는 되레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중장기적으로 취업률이 낮은 인문계열 학과 교수들은 사실상 교양과목 교수로 전락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학계에서는 대학의 경쟁력을 '취업'과 직결시켜 평가한다면 스스로 대학 경쟁력을 허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자연계열 학과 교수는 "선진국일수록 미래 학문 선점을 위해 순수 기초학문 육성에 힘을 쏟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방안이 대학구조조정을 앞둔 대학들이 교육부 '눈치 보기'의 하나로 이공계 위주의 자율 구조조정을 본격화한 신호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번 중앙대를 시작으로 대학구조조정 평가에서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한 전국 대학의 학과 통폐합과 특성화 대학 전환 움직임이 가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교육부는 학령인구 급감과 맞물려 대학 정원 수를 16만명가량 줄이는 대학구조조정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에 앞서 교육부는 최근 대학·산업 간 인적자원의 미스매치를 해소하기 위한 '산업 수요 중심 정원 조정 선도대학'을 2016년부터 지정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의예· 이공계 정원을 늘리고 인문· 자연계 정원은 줄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들 선정 대학에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대학특성화사업(CK)과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LINC) 지원 규모의 3~4배인 최대 20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전일 한 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에 참석해 "사회적 수요와 대학이 양산하는 졸업생이 양적·질적으로 매치되지 않고 있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렵다"며 "대학구조조정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방안을 마련하고 교육부는 우수 대학을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할 것"이라 말했다. 실제 이날 중앙대도 사회적 수요가 많은 공학계열 내 전공은 단계적으로 증원하고 미래 유망 학문단위를 발굴해 전공을 2017학년도부터 신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방침에 따라 자율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대학들은 상당한 정부 지원에 미래도 보장 받을 수 있어 대학의 학과 통폐합 움직임은 갈수록 거세질 수 있다. 이날 이용구 중앙대 총장도 "구조조정 필요성에 입각한 대학 총장들 가운데 중앙대가 선두에 나서달라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방안이 순항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각급 학과 학생들과 교수들의 반발이 상당한데다 순수학문 쇠퇴 기조를 우려하는 사회적 목소리도 높기 때문이다. 중앙대도 이날 "이번 선진화 방안은 아직 안건으로 추후 공청회 등을 거쳐 변경될 수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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