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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빙 앤 조이] '길 위의 작가' 김주영

보부상의 거친 숨소리 들리는듯<br>"소외된 사람과의 인연 가난했던<br>유년의 추억 내 문학의 자양분입니다"



“문경새재는 경상도의 시작이자 조선시대 보부상들이 드나들었던 교역의 관문입니다. 소설 ‘객주’도 여기에서 출발하지요.” 소설 ‘객주’의 작가 김주영(69ㆍ사진)은 지난 5월말 경상북도 청송을 찾은 문학기행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문학적 배경에 얽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청송군이 최근 ‘객주 문학관광테마촌’을 추진하면서 이곳을 찾는 독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문경ㆍ청송ㆍ안동 등 경상북도 주요 도시들을 이들과 함께하는 문학기행이 그의 주요한 일과가 됐다. 기업인, 최고경영자, 일반독자,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한국어 번역을 공부하는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 솜씨는 칠순을 앞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활기차다. 김 작가의 대표작 객주는 조선후기 보부상의 삶과 애환을 담고 있는 대하소설이다. 그는 책을 쓰기 위해 5년간 사료를 수집하고 3년에 걸쳐 전국 장터를 순례하면서 200여명에 달하는 증인들을 취재해 조선 후기 상업자본의 형성과정을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1982년 마흔셋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탈고한 객주는 그 동안 다루지 않았던 ‘길 위의 상인’들의 고통받던 삶을 실감나게 묘사해 한국 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객주로 정해졌다. “조선시대 서울 사대문 안에서 장사를 할 수 없었던 보부상들이 전국을 다니면서 겪었던 애환을 체험하기 위해 그들의 행로를 철저하게 답사했어요. 그들이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었는지, 그리고 등짐을 메고 걸으면서 언제 쉬었는지도 생각하면서 걸었죠. 객주가 출간 된 후 조선시대 상업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찾아와 내 소설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할 때 보람이 크더군요. 밥도 많이 얻어먹었지요.” 객주를 쓴 후 그는 ‘길 위의 작가’라는 별칭을 얻었다. 소설 장면을 묘사하기위해 철저한 현장 답사와 취재를 마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궁궐을 드나들면서 상행위를 했던 경상(京商)에 대한 기록은 풍부하게 남아있지만 등짐을 메고 전국을 떠돌던 보부상에 대한 기록은 구하기 힘들었지요. 국내에 그럴듯한 조선상업사를 다룬 논문을 찾기 힘들어 9권이나 되는 장편소설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막막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돌이켜보면 작가적인 자질이 다소 부족하지만 철저한 조사와 연구 그리고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얻은 자료를 소중하게 기록했던 성실함이 내 작품을 성공시킨 힘이었지요.” 그의 힘들게 했던 일은 또 있다. 당시 쓰던 말을 찾아내는 일이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소설을 쓰는 데 ‘청사진’이라는 단어를 쓴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객주의 주인공들이 이른바 천민에 속하는 ‘장돌뱅이’들인데 그들의 입에서 고고한 단어들이 나온다면 어울리겠어요. 소설의 사실성(reality)을 살리기 위해서는 장돌뱅이 말을 찾아야 했지요. 너무 힘들어 마흔 나이에 몇 번이나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부지런히 장터를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기록하고 사전을 찾아서 주인공들의 입으로 되살려냈어요. 풍선처럼 터져 나올 듯한 열정으로 그 고통을 이겨냈던 거지요.” 실제로 객주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빼곡하게 적힌 각주를 읽지 않고는 해석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많다. 요즘 쓰지 않는 단어들이 많은 탓이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시대성을 살리기 위해선 꼭 필요한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어린 시절부터 소설가의 꿈을 키웠던 그는 자신을 키운 자양분의 절반은 역사에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소외된 사람들과의 인연이라고 털어놓는다. “어린시절엔 겨울이면 머슴방에서 심부름하면서 그들과 같이 놀았어요. 머슴 하면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사람으로 알고있지만 실제로 이들은 귀동냥으로 얻은 식견이 넓은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때 마흔이 넘은 한 머슴이 해 준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때 들은 이야기는 저 너머 보이지 않는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상상력의 원천이었지.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큰 밑천이 됐어요.” 지금까지 40여권의 책을 발간했지만 그의 소설에는 선비나 양반 등 권세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이 한 권도 없다. 어린시절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지낸 경험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도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는 스스로 행운아라고 말한다. “중학교 때 문인이 되겠다고 말했더니 어머니께서 하루 종일 우시더군요. 문인이 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어떤 어려움도 생각하기 나름이고 어려움은 그 사람을 만드는 동력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자취생활을 지원해 주었던 외삼촌과 제대로 된 월급을 가져다 주지 못해도 묵묵히 기다려 주었던 아내가 지금의 나를 만든 셈이지요.” 그는 청년실업, 비정규직 등으로 고통받는 젊은 세대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최근 우화집 ‘달나라 도둑’(김영사)을 출간한 그는 가난과 외로움을 예찬한다. “어릴 때 우산이 없어 늘 비를 맞고 다녔고 가방이 없어 보자기에 책을 싸서 등에 메고 다녔지요. 그게 한이 돼서 디자인 좋은 우산이나 가방만 보면 필요 없어도 사고 마는 버릇이 생겼어요. 그렇게 수집한 우산과 가방이 60개가 넘어요. 가난의 한 때문이겠죠. 하지만 가난은 내게 상상력을 키우는 원동력이 됐어요. 어릴 때 먹을 게 없어 배를 쫄쫄 굶은 채 버스 정류장에 나갑니다. 정류장에 앉아서 낯선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버스에서 내려서 어디로 가는 걸까’ ‘저 버스는 어디로 갈까’ ‘버스가 가는 그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배고픔을 잊곤 했어요. 가 보지 않은 그곳에 대한 상상력은 내 문학의 토대가 됐어요. 말똥처럼 뒹굴며 살 수 있는 열정과 담대함은 어린시절의 가난에서 시작됐지요. 순수한 가슴으로 세상에 지나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꿈을 잊지 않고 노력한다면 분명히 결실을 맺는다고 믿어요.” ■ 일반 문학관 5배 규모 '객주문학테마파크' 2012년 완공 경상북도 산골 오지 마을 청송군 진보면을 가로지르는 냇가에서 멱을 감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소설가 김주영은 최근 영예로운 선물을 받았다. 청송군이 그의 작품 '객주'를 주제로 한 관광 테마파크를 2012년에 완공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문인들의 흔적을 보관해 후대에 남기기 위한 문학관 사업이 지자체의 관광 사업과 맞물리면서 주요 작가들의 고향마을에 문학관이 잇달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청정지역을 표방하는 청송은 객주를 테마로 소설의 문학적 가치를 부각시키면서 관련된 다양한 체험활동을 해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객주 테마파크에는 15만㎡ 규모의 대지에 문학관ㆍ영상관ㆍ테마장터ㆍ체험풍물광장 등이 들어서게 된다. 현재까지 건립된 다른 문학관들의 건축비용은 평균 40억원 규모인데 비해 청송군은 5배 가량 많은 195억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체험형 문학 캠프를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소설가 이문열 문학관이 있는 영양과 시인 이육사 문학관이 있는 안동 등과 연계한 문화벨트를 형성해 경북지역에 숨어있는 문화 콘텐츠를 발굴하겠다는 복안이다. 테마파크에는 일반 독자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물론 작가들의 작업실도 함께 마련해 독자들과 작가들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한동수 청송군 군수는 "국내 주요 문인들의 문학관을 둘러보니 건물만 덩그러니 서있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곳이 많다"며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청송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타지역 문학관과 차별화된 문학관광 테마촌으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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