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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말 서울 독산동의 다가구 원룸 월세계약을 체결하려던 이모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계약서를 작성하던 중 '연말정산을 받으려면 부가세 10%를 별도로 내야 한다'는 특약사항을 집주인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집주인에게 부당함을 제기했지만 "이 동네 원룸들은 다 그렇게 한다"며 면박만 받고 어쩔 수 없이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는 "소득공제를 받아봐야 부가세보다 적기 때문에 집주인과의 갈등을 피하고 싶었다"며 "자취는 처음인데 세 들어 살기 전부터 주눅 드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월세소득공제 혜택을 확대하는 등 세입자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주택임대차 시장에서는 이를 피해가려는 집주인들의 편법이 난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가세를 받겠다고 엄포를 놓는 경우는 물론 이면계약을 통해 임대소득 신고액을 줄이려는 임대인도 상당수라는 전언이다.
21일 일선 부동산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집주인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당한 요구를 하는 일들이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확정일자를 근거로 임대소득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자 오히려 이를 피하기 위해 세입자에게 부담을 전가시키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부가세로 월세 자체를 높이는 일이다. 어차피 임대소득에서 세금을 떼야 한다면 그만큼 더 받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암묵적으로 행해져왔지만 특별한 제재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확산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김종필 세무사는 "주택임대사업자는 부가세를 내지 않는 면세사업자이기 때문에 부가세 명목으로 월세를 받을 수 없다"며 "집주인이 부가세를 포함해 월세를 받아놓고 임대소득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처벌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임대소득을 최대한 감추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는 2016년까지 연간 임대소득 2,000만원 이하인 주택임대사업자에게는 세금을 물지 않겠다는 방침이 시행된 후 이면계약을 통해 임대소득 줄이기에 나선 집주인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주로 월세를 현금과 계좌이체로 분산시켜 받는 등 세입자와의 사전협의를 거치는 방식으로 과세당국의 눈을 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대사업 여건이 열악해졌다는 판단에 재계약 조건을 까다롭게 제시하는 집주인도 있다. 매물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희소성이 높은 전세의 경우 계약 직전에 시세보다 수천만원을 높여 부르기도 한다. 잠실동 P공인 관계자는 "당초 전세보증금 1억원 인상이었는데 계약 당일 2,000만원을 더 달라며 싫으면 나가라는 집주인도 있었다"며 "정부의 임대소득 과세 발표 이후 집주인들이 더 인색해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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