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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본 반도체 자존심 몰락의 시사점

일본 1위, 세계 3위의 반도체 업체 엘피다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 1990년대 NEC와 히타치가 D램 부문을 통합해 만든 엘피다는 '히노마루(일장기) 반도체'라는 애칭으로 불릴 만큼 일본의 자존심 같은 회사이다. 일본 반도체의 희망이라는 엘피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아시다시피 글로벌 경쟁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ㆍ하이닉스와의 이른바 치킨게임에서 악전고투하다 기진맥진했다.

엘피다가 끝내 파산할지 재기할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일본 정부와 국민이 자기네 반도체 산업의 마지막 보루마저 쓰러지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엘피다가 빚 상환일이 오는 3월 말로 아직 한 달 남았는데 법정관리를 신청한 이유도 '국민기업 파산 위기'를 사회ㆍ정치적 이슈화해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기 위한 수순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우리가 엘피다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 지금 잘나가는 우리 기업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983년 삼성전자가 64KD램을 개발하며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을 당시 일본 미쓰비시연구소가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을 정도로 일본은 자신만만했다. 일본은 세계 D램 반도체 시장의 절대강자였다. 1980년대 세계시장 점유율이 70%대에 달했다. 그랬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과 1위 기업이 이 꼬락서니가 된 것은 결국 자만과 방심 탓이다.



엘피다가 최악의 경우 파산한다 해도 우리 기업들이 박수 칠 일은 아니다. 반사이익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오히려 역풍이 더 커질 수 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세계시장 점유율이 급속히 높아지면서 독과점 논란과 함께 강력한 견제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커 오히려 우려해야 할 일이다. 이미 우리 업체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ㆍ4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 45%, 하이닉스 21%를 합해 66%에 달한다.

오늘의 글로벌 시장경쟁은 과거와 달리 독과점 체제를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또한 영원한 1등은 없다. 얼마나 오래 1등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잠시 방심하면 추락하고 만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지만, 반대로 기회가 위기를 몰고 오는 경우도 있다. 엘피다 사태를 보면서 우리 반도체 업계는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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