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목요일 아침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대통령이나 시ㆍ군ㆍ구청장의 공통점은 선거에서 1등을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1등이래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대통령은 3,400만명이 넘는 전국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경쟁에서 당선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얻은 표는 1,200여만표였다. 시ㆍ군ㆍ구청장은 해당 지역 유권자들의 표로 결정된다. 유권자 수는 많아야 20만~30만명, 작은 곳은 몇 만명에 불과하며 그 절반만 얻으면 당선된다. 그러니 1등이라도 같은 1등일 수 없는 것이다. 초등학생들도 아는 상식 중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렇지 않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입시전형에서 내신 실질반영비율을 높이라고 대학 측을 압박하는, 대한민국 교육정책을 주무르는 분들이다. 수백명의 자기학교 학생만이 치르는 시험에서 1등이지만 전국 수험생 50여만명이 치른 시험에서의 성적은 중간인 학생이나 50여만명 중 1등 한 학생이나 똑같다는 게 그들의 논리이니 말이다. 대학과 입시전문학원들의 분석에 따르면 개별학교의 내신과 전국 공통으로 치르는 수능 성적간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어떤 학교의 내신 1등급 학생이 수능에서는 3~4등급, 심지어 7등급으로 떨어지는가 하면 다른 학교의 내신 3~4등급 학생이 수능에서는 1등급을 맞는다. 몇 학생만의 일이라면 개인의 문제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수천, 수만명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면 내신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한 사립대의 경우 신입생에게 내신 실질반영률 50%를 적용했더니 절반 이상이 불합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교간 학력 차가 있어 내신의 신뢰성과 변별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개선책을 고민해봐야지 제재를 내세워 대학에 약속을 지키라고 으름장을 놓을 일이 아니다. 약속이라면 추궁당할 곳은 대학이 아니라 정부다. 정부가 말하는 대학들의 약속이란 이전에 각 대학들이 발표한 내신비율 50% 등의 전형요강을 말하는 듯한데 당시 그게 실질반영률이라고 한 대학은 거의 없다. 그래서 입시 전문가들은 대학들이 기본점수 확대, 등급간 점수 차 최소화 등의 방법으로 실질반영률을 낮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때는 아무 말이 없던 정부가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최근 몇 대학이 1~4등급 동점 처리 방침 등을 밝히자 갑자기 실질반영률 50%를 지키라며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지금 고3 학생들이 1학년 때이던 지난 2005년 5월 내신에 관해 약속한 적이 있다. 내신-수능-논술의 부담을 안게 돼 자신들을 ‘저주받은 89년생’이라고 불렀던 학생들이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촛불시위 움직임을 보이자 김진표 당시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내신 영향이 크지 않다는 말로 학생들을 달랬다. 지금 교육부 방침대로라면 그 말은 허언(虛言)이 된다. 학생들이 약속을 지키라고 하면 뭐라 할 것인가. 장관이 바뀌었으니 책임이 없다고 할 텐가. 정부 방침에 대한 대학의 반발을 ‘자존심’ ‘성공한 강자의 목소리’ ‘집단이기주의’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잘못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양심의 소리이자 몸짓이다. 진리의 전당인 대학이 불합리와 모순투성이 제도에 아무 말이 없다면 그건 대학도 아니다. 내신 중시 방침이 죽었다 깨어나도 물릴 수 없는 것이라면 변별력 시비 등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 중간ㆍ기말고사를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이 주관하는 모의고사처럼 전국 공통의 문제로 치르게 하는 것이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시험 관리, 비용 등의 문제가 있지만 현행제도의 문제점에 댈 게 아니다. 국가의 미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미국ㆍ일본ㆍ영국ㆍ프랑스 등 세계는 지금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경쟁력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핵심은 자율과 경쟁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는 정책의 큰 틀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학교에 맡기는 게 최선의 방안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게 해법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