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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산책] 포도즙과 명품 와인


애플스토어에 들어가보자. 코흘리개 꼬마부터 백발의 노인까지 남녀노소 모두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환상의 놀이터가 펼쳐진다. 앱에 푹 빠진 손자와 할머니의 호기심 어린 얼굴에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애플은 이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전 세계 소비자를 '죽고 못 사는' 연인으로 만들어버렸다. 매력 넘치는 애인이기에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 텐트를 치고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예술은 혁신 문지방 넘나드는 힘

어디서 이런 마술 같은 일이 일어날까. 답은 기존 제품이 가진 모든 낡은 공식을 깨부수고 나온 애플의 새로운 가치에 있다. 다른 기업들이 가격ㆍ기능ㆍ디자인 등 과거의 프레임을 헤맬 때 애플은 기존 제품의 한계를 넘어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담았다. 아이팟으로 기존 음반 시장을 와해시키고 아이폰으로 휴대폰 시장을 장악해버린 것도 이 덕분이다.

애플은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제품에 불어넣기 위해 과거와는 다른 시장을 만들었다. 예술ㆍ인문학과 기술을 녹여내는 유연한 생각으로 소비자의 은밀한 욕구를 꿰뚫고 미래를 예측ㆍ창출했다. 12년 유배 끝에 애플로 복귀한 스티브 잡스의 머릿속에는 피카소의 창조적 파괴가 가득했고 무한한 상상력을 노래한 블레이크의 시로 가슴을 적셨다. 손정의의 말처럼 그는 다빈치이자 모차르트였다. 그가 이끄는 애플의 경영철학은 예술정신이었다. 그러기에 애플 구성원은 말한다. "컴퓨터를 생산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예술작품을 창조해내는 아티스트다"라고.

이제 소비자는 제품 자체의 단순한 가치에 만족하지 않고 그 이상의 가치와 경험에 환호한다. 가격ㆍ품질ㆍ서비스 등으로 제품의 가치를 매겼던 낡은 공식은 이성ㆍ논리를 내세우는 과학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소비자의 은밀한 욕망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치와 경험을 창출하려면 예술의 힘이 필요하다. 예술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까지 아우르며 새롭고 다양한 시각과 생각을 불러일으켜 준다. 아는 것(과학)과 느끼는 것(예술)의 차이란 엄청나다. 예술가의 눈으로 시장을 내다보면 보이지 않던 모습이 보이고 은밀한 시장의 속살까지 느낄 수 있다. 예술은 기존의 사고와 시스템을 잊게 하고 끊임없는 혁신과 창조의 문지방을 넘나들게 한다. 따라서 과학에 발을 딛고 머리와 가슴에 예술을 풀어내면 블루오션으로 나가는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마음은 다른 데 있는 것 같다. CEO를 위한 예술인문학 강좌가 부지기수로 열리고 예술의 창조정신을 기업에 접목시키자는 구호가 혁명의 깃발처럼 펄럭이는데도 말이다. 뜻은 알겠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 경제의 독특한 압축 성장 후유증을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내야 하는 압박은 조급증이라는 트라우마를 키웠다.

경영에 접목하되 조급증 버려야

안타깝게도 예술의 힘은 조급한 마음으로는 얻기 힘들다. 그렇다면 CEO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술을 메세나 운동의 일방적 시혜 대상으로만 보는 견해를 버리라고 권하고 싶다. 많은 경영자들은 생리적으로 예술이 돈벌이와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돈 버는 비즈니스가 공익 차원에서 예술을 도와줘야 한다는 단편적인 생각에 머물러 있다.

창조사회에서 기업과 예술은 불가분의 관계다. 시대가 바뀌면서 비즈니스와 예술이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가 새로운 가치와 경험 창출로 모아졌다. 이제 예술은 비즈니스에 창조력을 키워주고 비즈니스는 예술이 더욱 다양해질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핑퐁게임이 돼야 한다. 포도를 짜면 바로 나오는 포도즙이냐, 원액과는 다른 가치ㆍ경험이 녹아 있는 명품 와인을 만들 것이냐의 선택은 경영자의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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