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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안철수의 돌이킬 수 없는 업보

국민 기대 한껏 키워놓고<br>장외서 저울질은 무책임<br>하루빨리 거취 표명해<br>국가·국민에 예의 지켜야


1559년 8월 기대승이 대선배 퇴계 이황에게 보낸 편지에서 갈 길을 묻는다. "저는 물정에 어두워 세상과 맞지 않습니다.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숨으려고 하면 어렵게 되고 힘써 일하려 하면 몸과 마음이 함께 여윕니다…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 주십시오."

요즘 안철수씨 말이 사실이라면 그의 고민이 400여년 전 기대승과 비슷할 것이다. 다들 안씨의 출마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아직은…"이라며 부인한다. TV에 나와서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저는 숨은 의도를 가지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의도가 있다면 그 의도까지 말합니다" 이쯤 되면 그가 사기 중범이 아닌 이상 그대로 믿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의심의 눈으로 보면 그 또한 끝이 없다. 언행 하나하나가 기만전략과 위장술 같다. 얼굴에서도 유들유들하고 건들대는 구석이 보인다. 과거와 오늘의 언행에는 자가당착적인 것들이 있고 "반은 죽여놔야"는 과격한 발언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강호동에게 "백신개발을 하느라 가족도 보지 못하고 입대했다"고 한 말은 예능ㆍ과장 화법일 가능성이 높지만 한편에서는 그가 쓴 가면의 증거로 제시된다. 심지어 후흑(厚黑)이니 황건적의 장량이니 하는 극언까지 나온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안씨가 대선계(界)에 최소한 한 발짝은 걸쳐 놓았고 나머지 발 위치가 불분명한데도 가공할 위력을 내뿜고 있는 현실이다. 역대 대선에서 제3의 후보들이 바람을 일으켰지만 안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정치는 나쁜 경력"이라고 말하는 일개 아마추어가 거물 프로들을 공포에 몰아넣어 많은 국민에게 희열을 주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안씨의 책임 문제가 발생한다. 대선계에 안철수라는 막강한 중력장을 형성해 시공간을 왜곡시켰다. 특히 그가 거꾸로 후진할 경우 파멸적 진공상태가 발생한다. 그런 역진의 문제를 이황이 기대승에게 보낸 답신에서 지적하고 있다. "그대는 동량의 재질을 갖춰…멀고 가까운 곳에 이름이 퍼져나갔고…온 나라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먼 길 떠나는 수레가 막 구르기 시작했고…그런데도 물러나 숨고자 한다면 세상사람들이 선뜻 그대를 놓아 주겠습니까. 세상사람이 자기를 버리지 않는데 자기가 세상을 버리려고 한다면, 버리려고 할수록 더욱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책망도 심하지 않겠습니까… ."



안씨는 정치혁신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을 한껏 높여놓았다. 그런 그가 발을 뺄 때 생기는 진공 파워는 기존 여야에 균등하게 퍼지기보다는 불평등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야당 경선은 그렇지 않아도 시들하다. 안씨가 전진도 후진도 않고 정지상태에서 다른 후보를 밀어주는 경우는 무책임하다. 범 야권 지지율 1위의 잠재 후보가 하위 후보에게 지지율을 양도한다는 것은 대통령이라는 엄중한 자리를 우습게 보는 처사다.

안씨는 이래저래 업보가 생겼다. 출마로 나가도 이미 죄과가 있다. 변칙 출발의 미필적 고의, 다시 말해 후흑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시간이 흐를수록 업보는 커진다. 하루라도 빨리 거취를 발표하는 것이 국가에 대한 예의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우유부단하거나 기성 정치인의 닮은꼴이다. 지지자들은 그의 무조건적 당선을 바라겠지만 그가 정말로 국가사회의 미래를 위해 취해야 할 것은 승리 그 자체보다 승리의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안씨는 며칠 전 "국민 의견을 다양하게 듣고 판단하려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황의 편지는 이어진다. "'벼슬에 나아가고 들어가는 거취는 마땅히 스스로 결정해야지, 내가 남을 위해 꾀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또한 남이 나와 함께 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호강후(송나라 유학자)의 견해는 뛰어나서 본받을 만합니다. 다만 평소에 이치에 정밀하지 못하고 의지가 굳지 않으면…그 마땅함을 잃을 뿐이라는 점이 걱정입니다…" 이미 최상위권 지지율을 얻고 있는 안씨는 대체 얼마나 더 많은 국민에게 확인 받고 싶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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