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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8월 9일] 상생의 시장원리

대기업과 하도급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거래에 대한 정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설전, 논객들의 주장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을 몇 가지 적어본다.

우선 하도급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힘의 불균형을 전제하고 있는 대단히 불공정한 것이다. 수급인과 도급인 간의 수평적ㆍ협력적ㆍ쌍방향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ㆍ종속적ㆍ일방적인 관계를 암시하기 때문에 이 용어를 폐기하고 협력기업이라고 부르면 좋겠다. 언어는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마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연 하도급거래의 부조리가 일반적인 관행으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의 진위를 밝혀야 한다. 부조리가 일반적인 관행이면 제도적 개선과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하지만 간헐적으로 일어난다면 엄격한 처벌이 해법이다. 그런데 지금의 논쟁을 보면 두 가지 요소가 뒤섞여 있어 혼란만 가중시킬 뿐 어떤 시책이 나오더라도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전경련의 입장은 하도급거래의 불공정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납품 가격의 결정이 사인 간의 자유계약에 의해서 결정되는 한 그것은 존중돼야 하고 경우마다 사정이 다른데 이를 행정적으로 지도ㆍ규제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고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결국 시장 가격 결정질서를 훼손하는 정부개입은 아무리 의도가 선하다고 하더라도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그 피해가 중소기업에까지도 미친다는 것이다.

중소업계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공정사례를 열거하면서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 힘의 불균형에서 파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에 맡겨두면 결코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경련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납품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질서가 올바른 것이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현실을 보면 납품 가격은 다수의 공급자와 수요자 간에 결정되는 것이라기 보다는 각각 단수의 모기업과 하청기업의 협상에 의해서 결정된다.



즉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보이는 손이 움직인 결과이다. 이러한 시장질서는 왜곡된 것이고 그 결과도 왜곡된 것일 수밖에 없다는 반론에 대해 전경련은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설파한 자유시장론을 인용한다. 그런데 그가 또 다른 역작인 도덕감성론에서 갈파한 양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을 잘 이용하면 사회전체의 부가 증대된다는 점을 명쾌히 밝히면서도 이기심의 무절제한 발로가 가져올지도 모르는 만인에 대한 투쟁을 걱정했다. 이를 예방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한 끝에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고 이기심의 일탈을 감시하는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 즉 양심의 발로가 세상의 조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들이 진정으로 자유시장을 믿고 그 번영을 바란다면 우선 협력기업과의 거래가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가를 겸허하게 평가해보는 것이 좋다. 협력기업들이 억울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 여부는 거래 당사자인 대기업이 가장 잘 안다.

행여나 단기적인 이윤을 쫓다가 협력기업의 자생력을 훼손해 장기적으로 자신들도 피해를 보는 우를 범하지 않는지 공정한 관찰자의 눈으로 바라봐야만 진정한 상생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의 자발적인 노력은 정부 개입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사실 불공정한 하도급거래를 인정하는 사람들조차도 정부의 행적적인 조치가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염려한다. 그런데 그 부작용의 최대의 피해자가 될 대기업들이 스스로 상생의 길을 간다면 이는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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