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만난 한 지인은 일본 주택시장 침체에 대해 이 같은 해석을 내놓았다. 일본인들의 심리를 장악해버린 천재지변에 대한 공포가 장기침체로 신음하는 일본 주택시장을 더욱 벼랑 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지진으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집채만한 파도에 언제 휩쓸려버릴지 모르는 집이라는 게 현실이라면 수억원 상당을 들여 집을 사느니 한달 100만원ㆍ200만원의 비싼 월세를 지불하는 게 나은 셈이다.
이 같은 생각은 현지 일본인 공무원도 가지고 있었다. 월 200만원 이상의 고급 고령자용 임대시설에 부모님을 모시며 한달 월세만도 300만원 이상을 지출하는 A씨. 그는 주택구매를 문의하는 사람에게 초저금리정책ㆍ세제혜택 등을 거론하며 "주택은 사는 게 더 이익"이라고 얘기하면서도 자신은 월세가 편하다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추가 질문에 직접적인 대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에서 주택 가격 하락이나 높은 월세는 부차적인 요소라는 인식이 엿보였다.
올해 초에도 일본 사람들은 지난해와 같은 대규모 지진이 한번 더 올 수도 있다는 루머가 퍼지면서 흉흉한 한해를 보냈다고 한다. 후쿠시마 지진과 이어진 쓰나미로 인한 방사성 물질 유출사태는 1년 반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일본 전역을 장악하고 있다.
지진에 대한 공포감이 없는 우리나라도 주택경기는 바닥이다. 최근 국내 주택경기는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가 45주 연속 하락할 만큼 꽁꽁 얼어붙어 있다. 전셋값이 치솟고 있음에도 집값은 떨어지는 기현상이 일반화된 지 오래다. 이렇게 암울한 현실이지만 부동산 전문가나 건설업계에서는 경기흐름만 조금 받쳐주면 언제든지 집값이 반등할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 부동산시장에는 천재지변의 공포까지 존재하지는 않는다. 해가 바뀌고 새로운 정권이 출범할 무렵, 경기호전과 함께 부동산시장을 회복시킬 해법까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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