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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

미국 독립의 투사요 3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가 미국 독립을 위해 싸운지 2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말은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지난 27일 밤 늦은 시각, 외신들은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의 폭탄테러 사건에 대한 긴급뉴스를 타전했고 곧이어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부토가 자살폭탄 테러에 암살된 이후 파키스탄 정국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최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또 누가 그를 암살했는지 그 배후를 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이 순간 그의 죽음에서 오버랩되는 사람의 얼굴이 있다. 군부정권의 서슬퍼런 독재로 지난 12년 동안 가택에 감금돼 있는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 아웅 산 수 치 여사다. 미얀마도 9월 승려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반독재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다. 두 여성 지도자가 걸어온 길을 보면 상당히 닮은 점이 많다. 부토 전 총리는 파키스탄의 야당인 파키스탄인민당(PPP)을 창당한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의 딸이다. 줄피카르 전 총리는 지난 47년 파키스탄 건국이래 최초의 민선총리다. 수 치 여사의 선친인 아웅산 장군은 미얀마를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민주투사다. 민주화의 주역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두 여성은 선친의 뜻을 이어 자국의 반독재 운동에 대항했다. 둘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부토 전 총리는 실제로 집권을 했던 반면 수 치 여사는 대다수 국민들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국가 통치권을 잡는 데 번번히 실패했다. 또 부토 전 총리는 늘상 부패 스캔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오명을 남겼지만 수 치 여사는 청렴한 지도자로 알려졌다. 부토 전 총리의 죽음으로 파키스탄의 민주화는 한 발짝 멀어졌다. 군부독재 세력과 타협하면서도 민주주의를 되찾으려했던 그의 희생이 미얀마의 국민들에게 또 수 치 여사에게 어떻게 비춰졌을지 궁금하다. 다만 다행인 것은 미얀마도 파키스탄도 아직은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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