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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일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6개월 만에 낮춘 것은 최근 경기 둔화세가 심각해지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올해 성장률 예상치를 3.6%로 하향 조정했는데 이는 1년 전인 지난해 5월 예상치(4.3%)보다 무려 0.7%포인트, 6개월 전인 11월(3.8%)에 비해 0.2%포인트 내린 것이다.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183억달러로 지난해의 265억달러보다 31%나 급감하고 지난해 20%대의 고공행진을 했던 수출입 증가율이 올해는 7~8%대로 뚝 떨어질 것으로 봤다.
실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대미 수출은 증가하고 있지만 유럽 지역과 일본∙중국 등 주요국에 대한 수출은 감소세로 돌아섰거나 하락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또 유럽자금을 비롯한 외국자금이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자금을 빼고 있는 것도 불안요인이다.
성장률 조정 배경에는 한국 경제의 성장세가 다소 둔화하고 있다는 판단이 깔렸다. 우리 경제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 1∙4분기(4.2%) 이후 4분기 연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올해 1∙4분기에는 2.8%까지 하락했다.
세계 경제 침체로 대외 수요가 나빠지면서 교역 조건이 악화한 점, 실질 구매력 둔화, 광공업∙서비스 생산 증가폭 축소, 반도체∙정보기술(IT) 산업의 높은 재고율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KDI는 유럽 재정위기가 최근 그리스와 스페인의 뱅크런 우려 등으로 악화일로에 있다는 점,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유가상승 가능성은 우리 경제의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했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은 주요 20개국(G20) 보고서에서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하방 위험이 실현되면 세계 경제 성장률이 1%포인트 내외로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또 IMF는 이란의 원유 수출이 중단되면 국제유가가 일시적으로 20~30% 상승할 가능성을 제시한 상태다.
KDI는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지난해의 '상고하저(上高下低)'에서 올해 '상저하고'의 모습을 띨 것으로 내다봤으며 내년 성장률은 4.1%로 올해보다 0.5%포인트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경기 회복의 근거로는 우선 대내적으로 최근 고용 증가세가 양호한 흐름을 이어가고 지난해 경제 발목을 잡았던 물가가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이면서 민간소비 지표가 개선됐다는 점을 들었다. KDI는 민간소비 증가율이 지난해 4∙4분기 1.1%에서 올해 1∙4분기 1.6%로 소폭 상승한 정도지만 2∙4분기에는 1.8%, 3∙4분기 2.8%, 4∙4분기 4.6%로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한규 KDI 연구위원은 "유럽이 정치적인 문제로 시끄럽지만 파국으로 가지 않고 완만히 봉합된다면 우리 경제도 하반기에는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그는 "하지만 만에 하나 유럽 재정위기가 파국으로 가서 유로존이 깨진다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최악으로 간다면 지금의 성장률 전망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덧붙였다.
KDI는 최근의 경기 둔화가 실물경기 급락으로 확대되지 않는 한 재정건전성 제고에 초점을 둔 현재의 재정정책 기조를 바꿀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경기가 위축된 만큼 올해 예산의 불용액을 최소화하는 등 예산범위 내에서 경기 조절을 위한 적극적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재정건전성을 위해서는 비과세∙감면의 전면적인 재평가와 세정 강화를 통해 세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화정책은 국내 여건을 고려해 현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면서 불안요인에 대응할 여지를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금융정책은 저축은행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저축은행업에 대한 구조개혁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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