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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신 냉전시대] 3부. 백년대계의 자원정책 <1> 정권 입맛에 춤추는 밑그림

"탐나는 광구 있어도 포기"… 성장잠재력까지 지운 '과거 지우기'

5차 해외자원개발 계획 8개월 지나도록 무소식

"MOU해도 못믿을 나라" 글로벌업계 불신도 심각

질적성장 큰 방향 맞지만 양적확장 포기하면 안돼



외환위기 이후 큰 진전이 없던 해외 자원개발에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이명박 정부다.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2008년 2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2조원짜리 이라크 쿠르드 유전개발 사업을 따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할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는 한승수 초대 총리를 '자원외교 총리'로 부를 만큼 해외 자원확보에 힘을 실어줬다. 한 전 총리의 해외순방이 잦아졌고 외교특사단도 수시로 꾸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 그리고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정권 실세들도 자원확보에 집중했다. 힘이 실리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와 에너지 공기업들은 신바람은 났지만 '성과'에 대한 부담이 컸다. 무리한 수주가 나타날 수 있는 여지가 컸던 셈이다. 에너지 공기업의 한 고위관계자는 "실적압박이 컸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자원 자주개발률을 맞추려다 보니 일단 광구확보에 더 혈안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정권이 바뀌자 에너지 공기업들은 대대적인 정책감사를 받았다. 감사원은 "정부가 형식적으로만 자주개발률을 높이는 데 치중했고 비상시에 국내로 들여올 수 있는 자원물량을 확보하지는 못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후 박근혜 정부는 해외 자원개발 정책의 '질적 성장'을 들고나왔다. 무리하게 해외 자원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지난해 12월 내놓았어야 할 '5차 해외 자원개발 기본계획(2014~2023년 계획)'은 8개월이 지나도록 수립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신규로 확보한 해외 자원광구가 눈에 띄게 급감한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과거 교정하기 바쁜 자원정책…"기회, 놓칠 수 있다"=산업통상자원부는 연초에 발표한 업무계획에서 "자원개발의 양적 성장은 한계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핵심 사업 중심으로 자원개발의 질적 역량을 강화하고 비전통 에너지원 자원개발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선진국 대비 경쟁력이 약한 플랜트 등 고부가가치 시장 진출을 위해 기술·금융 등의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원 자주개발률의 산정방식도 실조업일수 기준에서 연간 기준으로 다시 원위치시켰다. 자주개발률은 이명박 정부가 에너지 자립을 표방한 뒤 이를 높이는 것이 절대 목표였다. 수치를 높이기 위해 당시 정부는 실조업일수 기준으로 바꿨다. 실조업일수를 기준으로 하면 실제 기름이 나오는 날만 포함돼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처음부터 연간 기준으로 평균한 것보다 자주개발률이 높게 나온다.

문제는 박근혜 정부의 이 같은 교정작업이 과도한 '과거 지우기'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해외 자원개발을 위한 지원이 뚝 끊겼다. 해외자원융자액이 급감하고 예산도 줄다 보니 해외 자원개발을 위한 신규투자는 2011년에 비해 3년 새 22분의1로 줄었다. 더욱이 위축된 분위기는 추가 투자를 위한 '시도'마저 꺾었다. 한 에너지 공기업 해외 자원개발 담당자는 "탐나는 물건(광구)이 있기는 한데 보고하는 것도 포기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자원정책의 공과(功過)를 명확히 나눠 승계할 것은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형동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국내 기업들은 해외 자원시장에서 아마추어에 불과했을 정도로 경험·자본력·기술에서 밀렸다"면서 "하지만 해외 자원개발의 양적 확대를 통한 대형화로 인해 이제는 해외 자원 기업과 '키 맞추기에 나설' 정도는 됐다"고 말했다. 부작용은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공기업을 중심으로 한 자원정책이 성과는 있었다는 얘기다. 그는 "카드도 내밀지 못했던 국가, 예를 들어 아랍에미리트연합 등에 진출이 가능한 것도 과거의 투자 덕"이라면서 "질적 성장의 방향은 맞지만 공기업 중심의 양적 확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불신의 대상' 전락 가능…세대 간 분업전략 필요=세계 9번째 에너지 소비 대국이지만 국내에서 자체조달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4%에 불과하다. 96%를 수입한다는 얘기다. 해외에서 에너지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면 산업은 물론 기반시설 모든 것이 멈춘다. 국가경제가 존립하기 힘들어진다. 에너지가 곧 안보인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정권에 따라 춤췄다. 10년짜리의 중기계획은 세우지만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면 바뀐다. 일관성이 없다 보니 해외 자원개발 업계에서는 '신뢰'도 떨어지고 있다. 대통령 앞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해도 사업의 지속적인 추진을 장담할 수 없다 보니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자원개발 업체의 한 고위관계자는 "실제로 그런 말을 듣는다. 계약 후 잉크가 마르지도 않았는데 팔겠다고 나서고 이행을 하지 않는 데 대한 불신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고 전했다.

자원개발 사업 추진과정에서 만들어온 해외 인적 네트워크는 물론 기술력과 사업 능력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감도 높다. 박 교수는 "많은 비용을 들여 축적한 것들을 너무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면서 "양적으로 너무 축소돼 있는데 지금 투자해야 나중에 박근혜 정부의 업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현돈 인하대 교수는 "해외 자원개발 사업은 긴 호흡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뀐다면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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