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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69> 동기, 같은 출발선에 선 사람들

정글 같은 사회생활, 함께 헤쳐나갈 길동무가 있다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제각각 다른 보폭 탓에 시간이 흐르면 각자 걸어온 거리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적어도 동일한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이들을 묶어 동기라고 부릅니다. /사진출처=morguefile.com

동기(同期)란 같은 시기에 같은 곳에서 교육이나 강습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같은 시기에 들어 온 이들을 묶어서 지칭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남는 건 동기 밖에 없다’, ‘미우나 고우나 동기 뿐이다’는 말이 방증하듯 조직 안에서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라는 의미로 더 많이 쓰이고 있죠. 입사 시기가 같다는 것은 성장주기도 비슷하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아주 뛰어나거나 뒤쳐지는 경우처럼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같이 진급합니다. 물론 연차가 높아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적어도 함께 커가는 시기에는 상사에 대해서든 회사 환경에 대해서든 그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아무런 의도 없이 한 말이 혹여나 상사의 비위를 거스르지는 않을까 늘 전전긍긍하는 직장인들에게 동기는 피난처입니다. 오해가 있더라도 술 한잔에 털어 버릴 수 있고, 서로 의도를 곡해하지 않을 수 있는 넓은 관용이 적용되는 사이니까요.

그러나 요즘 들어 조직 안에서 동기 의식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주된 이유로는 혼자 아니면 둘로 자라난 핵가족 문화를 꼽습니다. 어려서부터 누군가를 배려하고 위해 본 경험이 적기에 타인에 대해서도 잘 베풀 줄 모른다는 점이, 동기 의식의 영향력을 희석시키곤 합니다. 게다가 가족 안에서 사회화가 더딘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관계에 적응하기보다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관계를 취사선택하는 습관. 조금만 떼를 써도 부모님의 배려를 받을 수 있는 환경 등이 타인에 대한 관용 능력과 희생 감수의 정신을 가로막는다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의 팍팍함과 그를 극복하기 위한 숱한 처세술 책들 못지않게, 남들을 향해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경제학자들은 ‘직무 특수적 투자’(Job specific investment)가 낮을수록, 이직 의도가 높다고 말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회사를 적게 다닌 사람들일수록 다른 곳으로 가는 확률이 높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회사의 분위기나 업무의 성격 못지않게 조직 안에서 각자가 어떤 관계에 직면해 있느냐도 크게 작용합니다. 특히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은, ‘못볼 꼴’을 보지 않으려는 동기(動機)가 발동하기 쉽죠. 스스로 피로가 누적되고, 싫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정도가 늘어갈수록, 마음의 병은 커져만 가고, 결국 ‘쿨하게’ 사직서를 던지면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된다는 믿음을 갖습니다. 치열한 경쟁과 프로페셔널한 업무 환경으로 유명한 어느 국내 대기업은 유난히 20대 초중반 신입사원들의 이직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쿨하게 사표를 던진 대부분의 사원들은 쿨하지 못한 미래를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좋은 직장으로 가지 못하고 프리랜서가 되거나 공백기가 길어지자 울며 겨자 먹기로 대학원 진학을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첫 직장에서 겪은 관계에서의 스트레스가, 두고두고 조직에 대한 상처와 피로로 마음 한 구석에 남은 탓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그만큼 조직과 개개인들이 서로에게 적응하고 마음을 열 수 있는 기회가 적어졌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강한 동기의식이냐 약한 동기의식이냐 그 강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정답은 없습니다. 사실 강한 동질감의 이면에는 그만큼 강한 배제 문화가 자리잡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로 강하게 묶일수록 우리를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 것이죠. 실제로 누군가를 구분하고 배제하는 방식이 ‘우리’를 공고하게 만드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의 험담을 함께 하라고들 말합니다. 공공의 적을 만듦으로써 동질감을 형성하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 속하지 못한 다른 누군가는 소외감에 크게 상처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어느 쪽도 완벽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느 쪽이든 간에 배려와 타인을 포용할 수 있는 자세가 전제되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동기사랑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현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존재만으로 든든해지는, 정글 같은 사회 속 길동무 같은 동기의 소중함을 한번 더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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