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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라크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의 이라크 최대 댐인 모술댐 점령을 계기로 이들에 대한 제한적인 공습을 승인하면서 2011년 철수 이래 다시금 이라크 사태에 공식적으로 개입하게 됐다.
미국은 이미 지난 6월 IS가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장악하면서 사태가 불거진 후 군사고문단 300명을 이라크에 파견했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대사관 방어 외의 직접적 군사행동은 하지 않았다. 이번 '제한적 공습' 카드는 IS에 밀리는 쿠르드 자치정부와 이라크 정부군을 지원하면서도 지상군 투입 등 전면적인 전쟁을 피하려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7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오늘 미국이 이라크를 도우러 왔다"며 "쿠르드 자치정부의 수도인 아르빌을 IS 반군이 공격할 경우 '필요하다면' 공습할 것"이라며 조건을 달았다.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상군 없는 '제한적' 공습은 되도록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는 군사개입을 원하지 않는 고민의 반영으로 풀이된다.
그는 6월 IS가 세력을 급속히 확장할 때도 이라크 정부가 직접적 군사개입을 요청했음에도 군사행동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2011년 이라크에서 미군이 철수하면서 이라크전을 '멍청한 전쟁'이라고 칭하는 등 이라크전 자체에 비판적이었던 그간의 입장을 뒤집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따른 행동이다. 그는 이를 의식한 듯 "많은 이들이 이라크에 대한 제한적 공습조차 우려한다는 점을 이해한다. 최고 군 통수권자로서 미국이 또 다른 전쟁 속으로 끌려가도록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신 공습 승인과 함께 피란민에 대한 물ㆍ음식 등 인도적 구호물품 지원을 강조하며 논란을 피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도 소수민족 보호를 미국의 '사명(mandate)'이라고 강조했다. 미 국방부는 이날 수송기 2대를 이용해 쿠르드계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주민들이 머물고 있는 산지르 주변에 물 2만ℓ와 미리 포장된 식사류 8,000개 분량의 구호물품 72박스를 공중 투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이 3년 만에 공식적 군사개입을 결정한 것 자체만으로도 사태 전개에 큰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결정을 한 배경에는 우선 10만여명에 이르는 기독교계 주민 등 소수민족의 안전에 대한 위협상황이 더는 가만히 둘 수 없는 수준에 왔다는 점이 지적된다. dpa통신은 IS가 이라크 최대 기독교 마을인 카라코시를 비롯해 탈카이프ㆍ바르텔라 등을 장악했으며 이들 지역 기독교 주민 10만여명이 피난을 떠났다고 보도했다. 소수민족 야지디족 수만명도 IS의 살해위협을 피해 피난했다. 야지디족은 이라크 북부 산지르산에 발이 묶인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에 대한 대량학살 가능성을 막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최근 IS가 미국에 우호적인 쿠르드 자치정부와의 교전에서 잇따라 승리하며 전세가 급격히 기운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백악관의 한 관리는 "최근 미 군사고문단이 배치된 쿠르드 자치정부의 수도 아르빌 근처까지 IS가 진격한 점은 미 정부로서는 인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IS가 장악한 모술댐이 전략적으로 가치가 크다는 점도 결정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IS로서는 모술댐의 물과 여기서 생산한 전력을 팔아 자금을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댐을 방류해 수도 바그다드 등 도시들을 수몰시킬 가능성이다. 뉴욕타임스(NYT)는 "IS는 올해 이미 팔루자댐을 점령한 뒤 물을 대규모로 내보내 수천명을 이재민으로 만든 전력이 있다"며 "뿐만 아니라 이라크 남부로 공급되는 전기도 끊어버렸다"고 전했다.
비록 인도주의적 이유가 있다고는 해도 이라크 정부의 군사개입 요청 후 약 두 달이 지나서야 공습을 결정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온라인 매체 복스(VOX)는 "오바마 행정부는 6월 이미 공습을 고려했으나 정보 부족으로 포기했다"며 "그후 파견된 군사고문단 300명을 통해 IS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면서 공습을 준비하기 수월해졌기 때문에 공습 결정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공습이 실제로 언제, 어떻게 이뤄질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오바마 대통령부터 '필요하다면'이라고 전제를 달은 만큼 공습 실행은 매우 신중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AP통신은 "지난해 여름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오바마가 공습을 공언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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