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데스크칼럼] 작은 승리 큰 패배
입력1999-04-21 00:00:00
수정
1999.04.21 00:00:00
지하철이 또 뒤뚱거리고 있다. 처음에 짜증이 나더니 시간이 갈수록,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서울특별시민」 노릇하기가 참으로 어렵고 서럽기 때문이다.사상 유례없는 경제위기로 대다수 시민들은 보너스가 줄거나 아예 없어지는등 소득이 크게 줄어 살림살이에 주름이 간지 오래된 실정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혹시나 직장에서 어떻게 되지나 않을까 아침일찍 출근해서 법정근무시간이 넘도록 열심히 일한다. 그러면서도 체력단련비나 초과근무수당을 달라고 요구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저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만도 황감해서다. 정말 피곤하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출퇴근길이라도 편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여간 짜증스런게 아니다. 게다가 지하철이 누구 것인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내가 낸 세금으로 지하철이 건설됐고 우리가 내는 승차요금으로 임직원들이 월급을 받는게 아닌가. 쉽게 말하면 내가, 우리가 서울시 공무원들과 지하철공사 직원들의 주인인 셈이다. 그런데 해마다 봄이 되면 발을 묶어 놓으려 하니 참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시민들을 이렇게 불편하고 신경질나게 만들었으면 노조가 얻어내는 것이라도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다.
지하철 파업은 이번이 9번째다. 지난 88년부터 11년동안 일어난 것이니 거의 매년 발생한 셈이다. 그때마다 많은 노조원이 징계를 당하거나 일터에서 쫓겨났으며 사법처리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무더기 구속사태가 빚어진 적도 있고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 노조의 운신 폭이 매우 좁아진 적도 있었다. 오히려 얻는 것보다는 잃은게 많았다고 할 수 있다.
노조가 번번이 질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릇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환경이 자기쪽에 유리해야 한다. 노동운동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사용자보다 약한 처지에 있는 노조로서는 여론의 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지않나 싶다. 물이 없으면 물고기가 살 수 없듯 노조의 투쟁이 여론의 지지를 얻지못하면 고전을 할 수 밖에 없다.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들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그런데도 노조는 반대로 갔다.
결과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이번에도 노조가 이기기는 어려운 것같다. 노조에 대한 여론의 시각이 이번처럼 따가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따갑다못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당분간 불편을 겪어도 좋으니 「툭하면 시민들의 발을 묶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번에는 확실하게 끊어놓으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노조는 파업에 앞서 준법투쟁을 벌이던 과정에서 지하철 지연운행에 짜증난 승객들이 역무실에 돌을 던지고 기관사를 폭행했을 때 여론의 향방을 정확하게 짚고 파업돌입에 신중을 기했어야 옳다.
파업의 목적이 무엇인가. 파업은 원하는 것을 얻고자하는 투쟁의 한 수단, 그것도 마지막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것을 얻지못하면 그것은 안하느니만 못한 것 아닐까.
파업으로 지하철공사·서울시·정부를 곤란하게 만들고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서는 노조가 이겼다고 할 수 있다. 여론은 지하철이 멈춰서게 되는 사태에 대한 책임이 이들에게도 있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업의 목적이 단순히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한 것은 아니잖은가. 모르긴 몰라도 노조가 이번 파업으로 「구조조정 백지화」라는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을 것같지는 않다. 정부가 미국노조의 사례까지 연구해가며 작업현장 미복귀자들에 대해서는 면직키로 하는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하기로 한 것으로 미뤄 볼때 노조는 이번에도 큰 상처를 입을 것같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략에서는 졌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함이리라.
노조는 시민들을 위해서, 또 스스로를 위해서도 파업을 즉각 철회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이것저것 조건달지말고 「시민들의 불편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말하며 일터로 복귀하는 성숙되고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어려운 경제환경에서 생업에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그나마 달래주는 일이다. 그것은 또 노조가 여론의 지지를 얻고 궁극적으로 투쟁의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기도 하다. 여론만큼 상대방을 압박할 수 있는 무기가 없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모두가 상처받고 패배하는 게임보다는 서로 이기는 좋은 결과를 거둘수 있는 길을 노조가 택하기를 기대해 본다.
(李賢雨 사회부장)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