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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95세의 현역 화가


뉴욕 한국문화원에서는 오는 15일 특별한 의미를 담은 미술전시회가 열린다. '풍성한 혼(abundant sprits)'으로 이름 붙여진 이 전시회는 한국의 추상회화 1세대 대표적 작가이자 95세의 현역인 김보현 화백의 최신작과 50여년전 초창기 작품들이 함께 선보인다.

일본에서 그림을 배운 김 화백은 한국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인물이다. 27세에 조선대 교수가 됐지만, 여순 반란 사건에 연루돼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6ㆍ25 전쟁 때에는 북한군과 국군 양쪽 모두에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지난 1955년 일리노이 주립대의 교환교수로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2년간의 교환교수가 끝나자 뉴욕으로 옮겨온 그는 넥타이 공장에서 물방울 무늬를 찍고, 백화점의 마네킹에 옷을 입히면서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당시 뉴욕은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서 건너온 아티스트들과 미국의 작가들이 교류하면서 파리를 대신해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타국에서의 생활이 어려울수록 그의 예술혼은 더욱 타올랐으며 뉴욕 화단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미술의 흐름인 추상표현주의에 맞닿아 있는 낯선 동양인 화가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1968년 만난 여류화가 실비아 월드(2011년 작고) 여사는 그에게 평생의 반려자이자, 예술의 동지였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큐레이터 바바라 런던은 그에 대해 "서양의 추상표현주의와 동양적인 정서가 가미된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고 평했다. 현재 그의 작품들은 구겐하임,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미술관들에 소장돼 있다.



그는 8층짜리 자택을 갤러리로 개조해 후배 한국 작가들에게 전시회 공간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후배들이 조언을 구하면 "나는 몸으로 예술을 했지만, 지금은 테크닉이 워낙 발달했다. 각자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다" 며 스스로를 낮춘다.

김 화백은 지난해 말 작업 도중 캔버스가 쓰러지면서 함께 넘어져 골절상을 당했다. 그러나 병상에 누워있으면서도 그는 삶과 죽음을 모티브로 처음과 끝, 우주의 생성과 멸망 등 자연의 근원에 골몰하며 새로운 작품들을 구상하고 전한다. 그를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치열함은 병마조차 이기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K팝으로 대표되는 한류 바람이 뉴욕에서도 불고 있다. 한식, 패션 등 한류를 진작하기 위한 정부와 민간차원의 행사도 넘쳐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눈앞에 성과를 내겠다는 조급함에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좋은 것들도 상당수다. 오로지 예술을 위해 평생을 바치는 김화백과 같은 이들이 진정한 한류의 선구자가 아닐까. 한류도 긴 안목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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