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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림에서 선비의 넉넉함을 만난다

겸재 정선(1676~1759)은 대가답게 생전에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는 `박연폭도`, `인왕제색도`, `청풍계도`, `금강전도` 같은 대작도 많이 남겼지만, 어느 화가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많은 화첩(畵帖)을 그렸다. 현재까지 알려진 그의 화첩은 금강산, 영남의 승경, 한강변의 명승 등의 실경과 정형산수를 연작으로 그린 것으로 모두 열두첩에 이른다. 겸재의 단양 실경 세 폭과 각 폭마다 붙어있는 제화시 그리고 관아재 조영석과 후계 조유수가 따로 쓴 두개의 제발문이 동시에 출품되는 전시가 열린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인 도록중 가짜로 판명된 다산 정약용의 글씨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작품도 나온다. `시첩-성화(聖華)를 기리며`라는 것으로 그의 글씨는 해맑게 한점 흐트러짐이 없고 굵기도 유려하면서도 강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온고이지신(옛것을 중히 여겨 새것을 배운다) 정신`으로 작품성이 뛰어난 동양화와 화보집 그리고 각종 문방구를 전시 판매하면서 오랫동안 인사동의 대표적인 화랑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학고재(대표 우찬규)가 1년여의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 기획전으로 마련한 `유희삼매-선비의 예술과 선비취미`전에서다. 20일부터 12월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편지, 시, 그림 100여점을 통해 조선조 선비들의 멋을 흠뻑 느낄 수 있는 흔치 않은 것으로 쉽게 볼 수 없는 고전 명품들이 나온다. 전시되는 작품들은 학고재 소장품을 비롯해서 개인소장가 10여명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2년여전부터 우찬규대표와 이태호(명지대교수, 미술사)씨와 함께 기획을 준비했던 유홍준(명지대교수, 미술사)씨는 “개인 콜렉터들이 히든카드로 갖고 있는 작품을 학고재 전시라는 것에 뜻을 두고 빌려준 것에 매우 감사한다”면서 “이 전시가 옛날 얘기로 끝나지 않고 근대와 현대에도 계승되기를 희망하는 의미에서 고암 이응노씨와 수화 김환기씨의 작품도 함께 연다”고 말했다. `꼿꼿한 지조와 강인한 기개`로 얘기되는 선비의 예술은 편지, 시, 그림 등 다양한 장르로 전한다. 그중 선비의 편지에서는 풍부한 감성과 자상한 마음씨를 살필 수 있다. 퇴계 이황은 남언경을 떠나보내며 적은 시에서 “학문이 비록 어려운 것이나 자세히 보고 전체를 살펴 우리 늙은이들을 감탄하게 하기 바란다”고 적고 있으며, 우암 송시열은 애제자의 미망인에게 친정의 상사에 대해 위로하며 너무 슬퍼하여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당부하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정조가 은퇴한 전 영의정 채제공에게 건강을 걱정하며 적은 윤기 있는 행서체의 간찰에서는 학자 군주의 면모를, 추사 김정희가 사촌형의 부음을 듣고 조카에게 보낸 통곡의 편지에서는 가문을 지키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하는 아비의 통한을 살펴볼 수 있다. 선비 예술의 면모를 본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갖가지 소재의 문인화를 통해서다. 특히 사군자는 선비들이 자신의 인품 또는 성격을 표현하는 것으로 생각하여 즐겨 그림의 소재로 삼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묵죽화의 일인자였더 탄은 이정의 준경하면서도 유려한 필치가 유감없이 살아있는 `묵란도`에서부터 음영을 섬세하게 표현한 몽인 정학교의 `석란도`, 석파 이하응이 운현궁 시절에 그린 전형적인 석란도와 운미 민영익이 상해 시절에 복건성에서 자생하는 건란을 사생하여 완성한 운미란, 세상 사람들의 기준에 맞게 그리기보다 군자의 노닒을 따라 흔쾌히 그린 소호 김응원의 `선면 묵란도`와 `묵란도축`, 선비의 멋과 취미를 온몸으로 체득한 마지막 선비 화가라 할 수 있는 근원 김용준의 `묵란도`에 이르기까지 난초를 그린 작품이 가장 많이 소개된다. <박연우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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