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기 싫어 스스로 성장을 멈춘 어린이. 희망 없는 현실이 싫어 꿈속의 섬나라에서만 사는 존재. 동화 속 피터팬 얘기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 주변엔 이런 피터팬이 너무 많다. 지원이 줄어들까, 정부 납품이 중단될까 두려워 더 이상 크기를 포기한 중소기업이 그들이다. 그래서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조차 정확한 표현은 아닌 듯싶다. 피터팬에겐 꿈이라도 있었지만 이들에겐 그것조차 없다.
지원이 미비해서 그런 건 아니다. 사실 지원제도 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세계최고 수준이란 평을 받는다.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시로 중소기업청이 탄생한 후 창업부터 자금ㆍ기술ㆍ마케팅 심지어는 세금까지 원스톱서비스를 갖췄다. 정권이 등장할 때마다 한결같이 '중소기업이야말로 나라의 기둥'이라고 외쳤으니 없는 게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해외에서조차 "이 정도면 누가 해도 성공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을 만하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절대 과한 얘기가 아니란 걸 실감할 수 있다. 중소기업을 위한 보증과 융자액은 최근 8년 동안 7조원이나 늘어 21조원에 육박하고 지원에 필요한 법률만도 16개, 특별법은 7개나 된다. 벤처기업특별법은 무려 16년이라는 장수를 누리고 있어 한시법이라는 개념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럼 경쟁력은 좀 생겼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지난해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이 발간한 세계경쟁력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효율성은 유럽연합(EU)의 70%,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지원을 못 받는 대기업이 EU를 추월하고 미국을 거의 따라잡은 것과는 극명한 대비가 된다.
혹자는 비효율적 지원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부처마다 똑같은 사업을 하고 한번 지원을 받은 기업이 또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까지 정부 중소기업 정책의 초점은 경쟁력이 아닌 일자리에 맞춰졌다. YS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중소기업이 고용률 회복의 최전선에 위치한 이유다. 일자리만 만들 수 있다면 돈이 얼마가 들어가도 상관없다는 무책임은 여기서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을 키우겠다고 퍼부은 돈은 기술개발과 경쟁력 강화와 전혀 상관없이 흘러갔다. 전체 사업체 중 중소기업 비중은 99%에 달하지만 연구개발(R&D) 투자비중은 25%, 기술경쟁력은 세계최고 대비 75%에 그치고 있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대신 새나간 자금은 오히려 출혈경쟁, 대기업이나 정부 줄대기에 사용됐다. 비싼 고급인력 대신 저임금의 일용직 또는 외국인을 채용했으니 노동조건이 개선됐다고 보기도 힘들다. 이 상태에서 질 좋은 일자리, 청년고용이 일어날 리 없다. 지원정책이 오히려 질적 성장과 양질의 고용을 막는 아이러니를 불러온 셈이다.
그런데도 최근 정부의 대책을 보면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는 듯해 답답할 뿐이다. 성장사다리펀드니, 미래창조펀드니 온통 돈으로 해결하겠다는 것뿐이다. 피터팬 증후군을 없애겠다며 중견기업 수준으로 큰 기업에 대해서도 지원을 계속 하겠다는 대책까지 밝혔다. 일단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부터 막고 보자는 근시안적 대책이 아닐 수 없다.
중소기업이 진정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 되려면 어린 시절 입던 옷을 벗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회ㆍ경제 모든 게 변하는 데 지원정책만 그대로 내버려둘 수는 없다. 우선 자금 지원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조건만 되면 무조건 지원하는 게 아니라 결과에 따라 차별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선택과 집중을 이룰 필요가 있다. 투자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다고 판단한다면 과감히 없애는 정책적 결단도 시급하다. 그래야 중소기업의 자생력이 커진다. 17년간 모든 지원을 다 했다면 스스로 어른이 될 준비는 다 된 셈이다. 이제는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 해야 한다. 이것은 정부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중소기업 스스로 이뤄야 할 과제다. 피터팬이 어른이 되려면 성장을 옭아맨 동아줄을 스스로 푸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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