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하는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에 ‘금융권, 이자 장사 벗어나 첨단산업 투자·소상공인 지원 확대 나선다’는 이름의 정책뉴스가 올라왔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자놀이 질타에 금융위원회가 부랴부랴 개최한 업계 간담회 소식을 전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금융권이 부동산과 담보·보증 대출 같은 손쉬운 이자 장사에 매달려 왔는데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4대 금융그룹의 올 상반기 이자이익은 21조 924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전체로는 42조 원 정도 된다. 단순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약 32조 7300억 원)과 견줘 누워서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은행들이 관치의 그늘 아래 온실 속 화초처럼 커왔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에 투입된 공적 자금이 86조 9000억 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정부가 외화 지급보증을 서줬다. 지급보증이 없었다면 지금의 4대 금융그룹 가운데 한 곳은 사라졌을지 모른다. 올해 성장률이 1% 안팎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은행권의 대규모 이익 잔치는 “해도 너무한다”는 말을 들을 법하다.
여기까지는 눈에 보이는 것들이다. 따져 봐야 할 것은 이자이익의 보이지 않는 뒷면이다. 첫 번째, 세금이다. 지난해 금융·보험업의 법인세 부담세액(신고 기준)은 11조 6046억 원으로 전체의 19.9%를 차지했다. 제조업(19조 9013억 원)에 이은 2위다. 글로벌 경기 둔화에 반도체와 석유화학 같은 주력 산업이 부진했던 탓도 있지만 금융업은 꾸준히 나라 곳간을 채워왔다. 정부가 주인인 IBK기업은행의 최근 5년간 법인세 결정세액은 3조 원을 웃돈다.
특히 기업은행과 한국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이 올해 정부에 배당한 금액만 1조 5000억 원가량이다. 세수 부족을 메운 일등 공신 가운데 하나가 국책은행 배당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은행들이 이자 장사를 열심히 한 결과 세수를 충당하고 재정에 기여했다. 당정이 29일 법인세 최고 세율을 24%에서 25%로 올리기로 했는데 금융사 없이는 세수 구멍이 더 커질 것이다.
두 번째는 고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금융 및 보험업의 일자리는 99만 7000개다. 100만 개에 가까운 양질의 일자리가 금융에서 나왔다. 가족을 포함하면 국민 400만~500만 명의 생계가 금융권에 달려 있다.
세 번째는 사회 공헌이다. 지난해 은행권의 사회 공헌 총금액이 1조 8934억 원이다. 2금융권을 더하면 규모는 더 커진다. 이자놀이로 번 돈 가운데 일부는 소상공인과 서민의 대출금리를 낮춰주고 저출생 같은 사회문제 해결에 쓰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자금 공급이다. 정부가 바라는 대로 생산적 금융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4대 은행의 상반기 부실채권(NPL) 상·매각 규모만 3조 원이다. 적정 수준의 이익을 내야 자본 비율을 유지하면서 기업들이 필요한 자금을 댈 수 있다. 문제는 이익의 원천이 이자에 있다는 점이다. 은행의 이자이익은 비이자이익보다 3배 가까이 많다. 은행이 이익을 내지 못해 건전성이 급락하면 기업 대출도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규제 완화와 제대로 된 금융 감독이다. 국내가 안 된다면 해외든 새로운 영역이든 기존 예대마진 중심의 영업을 대체할 것이 필요하다. 금융 당국이 기업 대출과 펀드 투자 시 위험가중치(RWA)를 낮춰주는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주겠다지만 금융사를 옭아매는 것들이 너무 많다. 예금 관련 수수료조차 못 받게 하는 영업 규제부터 불확실한 회계처리 기준, 급격한 보험사 자본비율 강화까지 이자 장사 외에 옴짝달싹하기 힘든 요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도하게 사후 잣대를 들이대는 금융감독원의 제재 관행 역시 걸림돌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프레데리크 바스티아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늘 같이 봐야 한다”고 했다. 은행권의 탐욕은 제어해야 하지만 적정 수준의 수익이 가능해야 한국 경제도 원활히 돌아갈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은행권의 이자이익에만 매몰되면 그 이면을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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