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국가 시스템 개조하자] 6부. 백년대계 교육이 열쇠다 <2> 대학 양적성장에서 질적성장으로

연구·직업능력 강화… 선택과 집중으로 대학 경쟁력 키워라<br>일방적 구조조정 땐 기초학문 뿌리 흔들려<br>취업·교육의 질 함께 고려해 개혁 채찍 들어야

서울의 모 여대에서 졸업생들이 학사모를 쓴 채 취업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학들이취업의 질과 교육의 질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장기적 플랜을 갖고 구조조정을 해야 질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서울경제DB


# 수도권의 A대학은 최근 몇 달간 비상이 걸렸다. 대학 평가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취업률 통계가 6월1일을 기준으로 집계되는데 당시 취업률이 만족스럽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학교는 '1인 1명 이상 취업'을 목표로 교수와 교직원들 모두 기업 관계자와 만나 채용을 부탁해야 했다. 대학 관계자는 "취업률에 대한 압박감이 너무 크다"고 하소연했다.

# 지방의 B대학은 인문사회계열 일부 학과를 통폐합하겠다고 밝혀 학생회 측과 갈등을 빚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운영상의 어려움을 내세웠지만 속내는 취업 경쟁력이 낮은 학과를 없애는 대신 취업률이 높은 학과를 신설하거나 기존 학과의 정원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인문학 관련 학과가 구조조정 대상이다.

최근 들어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대학들에 비상등이 켜졌다. 그동안 대학들이 학교 규모를 키우고 정원을 늘리는 양적 성장에 치중한 탓에 급격한 신입생 감소 같은 외부환경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갈수록 더 심해진다는 데 있다. 유기홍 민주당 의원실이 지난해 통계청 인구추계와 교육기본통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앞으로 7년 후인 오는 2020년 수도권 학령인구는 24만6,511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 대학 입학정원이 20만3,556명인 점을 감안하면 학령인구가 대학 정원과 맞먹는 수준 근처까지 줄어든 셈이다. 지방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2020년 지방의 학령인구는 25만3,615명인 데 반해 입학정원은 35만2,637명이나 된다. 지방의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다 입학한다 해도 지방대들은 무려 9만9,022명의 정원을 채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간단하게 계산하면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인원이 지방으로 이동한다 해도 미충원 정원은 최소한 5만명을 넘게 된다.

이처럼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문제점이 부각되자 교육당국이 대학 구조조정의 채찍을 들고 나섰다. 대학들이 양적 성장에서 벗어나 교육의 질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정부 구조조정의 핵심은 취업률과 재학생 충원율을 기반으로 장기적으로 하위권 대학의 퇴출을 유도하는 것이다. 정량적 지표가 낮은 대학은 부실대로 낙인이 찍히고 학생 충원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학생 수 부족은 등록금 수입감소로 이어지고 이는 열악한 재정으로 직결된다. 이런 구조조정의 대표적 장치가 재정지원제한대학이다. 대학들의 체질개선을 목표로 지난 2011년 도입된 재정지원제한대학은 몇 가지 지표로 대학을 평가해 하위 15%에 적용된다. 지난해 평가지표를 보면 취업률(20%), 재학생 충원율(30%), 전임교원 확보율(7.5%), 교육비 환원율(7.5%), 등록금 부담 완화(10%), 장학금 지급률(10%) 등 열 가지 지표가 적용된다. 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분류되면 국가와 지자체의 재정지원사업 참여가 제한되고 보건의료사범계 학생 정원 증원시 해당 대학이 배제되는 등 상당한 불이익을 받는다. 대학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엄청난 타격이다. 대학들이 취업률 높이고 학과를 통폐합하는 등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같은 대학들의 자발적 구조조정이 장기적 발전 차원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취업률과 학생 충원율이 낮은 학과를 중심으로 일방적으로 진행돼 갈등을 빚고 있다. 학과 통폐합을 교수와 학생 등 구성원과의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학교 측이 추진하기 때문이다. 연세대의 경우 4월 학교 측의 2014년 일부 학부 통폐합 결정에 학부모들이 총장 면담을 요청하며 강하게 항의하는 소동이 있었고 청주대는 회화학과 폐지 결정을 번복하기도 했다. 2014년부터 회화학과 신입생을 뽑지 않기로 하자 학생들이 "피카소가 취업한 적이 있냐"며 "어떻게 예술을 수치로 평가할 수 있냐"고 강하게 반발한 데 따른 것이다. 전국적으로 국어국문학과ㆍ철학과와 같은 인문학 학과들이 속속 사라지고 있다. 구조조정의 중요 지표인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각 대학이 무리수를 두는 경우도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취업자 명단을 허위로 공시하거나 기업체에 위장취업을 부탁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률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서 기초학문의 뿌리가 흔들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기초학문의 근간이 흔들리면 전체적인 대학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대학들의 국제경쟁력은 세계 10위권의 국격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영국의 글로벌 대학 평가기관 QS(Quacquarelli Symonds)의 국내 대학 평가순위를 보면 서울대가 37위에 이름을 올렸고 KAIST가 63위, 포스텍이 97위로 100위 안에 들었을 뿐이다. 상하이 자오퉁대 고등교육연구원이 발표한 세계 대학 평가에서는 100위권에 우리 대학이 한 곳도 없다. 서울대는 101~150위권에 머물러 있고 KAISTㆍ포스텍ㆍ성균관대 등 모두 200위권 밖이다. 그나마 최근 QS가 발표한 2013년 학문 분야별 대학 평가에서 우리 대학들이 이공계를 중심으로 75개 분야에서 100위권에 든 것은 고무적이다.

대학 경쟁력 강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학마다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장기적 플랜 하에 구조적인 개혁을 진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취업을 강조하는 것과 교육의 질은 분리돼야 하는데 대학들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게 문제"라며 "대학과 정부 정책들이 취업의 질과 교육의 질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양적인 쪽으로만 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지선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직업능력을 가르치는 대학보다 종합대가 많은데 이들 중 일부는 연구중심대로 전환하고 정부는 이들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며 "연구중심대가 아니라면 학생들이 노동시장에 더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사회 구성원 모두 과거처럼 반드시 대학을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고등교육의 기회는 본인이 희망하면 언제든 가질 수 있다는 방식으로 대학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