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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닦이로 시작해 1조 일궈 배고팠지만 열정 잃지 않았다"

박주봉 대주·KC 회장 강연



단돈 200만원으로 1조원대를… 놀랍다
"구두닦이로 시작해 1조 일궈 배고팠지만 열정 잃지 않았다"박주봉 대주·KC 회장 강연

연유진기자ㆍ박민주기자economicus@sed.co.kr
























박주봉 대주ㆍKC 회장 강연

학교에 다니고 싶어 구두닦이, 오뎅과 떡볶이 장사, 평화시장 미싱사의 시다(보조)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소년. 주린 배를 보자기로 동여매며 배고픔을 달랬던 유년시절을 뒤로 하고 매출 1조원대 중견기업군을 키워낸 박주봉(사진) 대주ㆍKC 회장은 대학생들에게 ‘시간’과 ‘열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1987년 직접 모은 돈과 친구들에게 빌린 돈 200만원을 들고 8톤 덤프트럭 한대로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제일 좋은 물동량은 대한석탄공사가 수입해놓은 무연탄을 각 연탄공장으로 수송하는 일이었다. 박 회장은 “수많은 업자들 사이에서 1등을 하려면 새벽 3시에 차를 대고 있어야 했고 365일 중 거의 매일 1등으로 도착했다”며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 10번 나를 때 나는 13번 나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특유의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차 한대에서 두 대, 열 대, 50대까지 차량 수를 늘리며 운송업에서 성공을 거둔 그는 철구조물 제조업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는 “지금까지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청량리 민자역사,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신도림 테크노타워, 당진 화력발전소, 여의도 IFC 빌딩 등 굵직굵직한 건물을 제작ㆍ시공했다”며 “이것은 모두 열정에서 나온 결과”라고 소개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 한국종합화학을 인수해 스미토모, 일본경금속, 쇼와덴코 등 일본 메이저 3사의 벽을 뛰어넘는 과정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만성적자였던 회사를 인수한 뒤 일본 메이저업체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수차례. 하지만 민영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조를 설득해가며 연구개발에 매진했고 2년 만에 일본을 앞서는 획기적인 제품을개발했다.

박 회장은 “삼성전자가 지난해까지 LED, LCD를 만드는 데 쓰이는 소재(수산화알루미나)를 전량 수입했지만 올해는 50% 이상 KC의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며 강한 자부심을 나타냈다.강연을 마무리하며 그는 “목표를 세우고 부단히 노력하면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메시지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우수한 인재들이 성장하는 기업으로도 눈을 돌렸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그는 “세계경제의 흐름이 대기업에서 중소ㆍ중견기업으로 바뀌고 있다”라며 “곧 중소기업과 대기업 관계에서 차이가 없어질 것이고 오히려 중소기업에서 일한 사람의 브랜드 가치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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