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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3월14일] 메이지유신

일본 근대화의 시발점이 된 메이지유신이 선포된다. 중앙집권적 통일국가와 자본주의로의 시작을 알리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은 천황의 명령으로 세상이 새로워진다는 것. 메이지유신 선포 이후 일본은 정치ㆍ사회적 변혁을 거치면서 정치적으로는 입헌정치가 시작되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발아한다. 메이지(明治)정부는 봉건제도인 바쿠후(幕府)체제를 무너뜨리고 천황 친정 형태의 통일국가를 이룬 뒤 1868년 5개조 서문의 메이지 유신을 선포한다. ▦중앙집권제확립 ▦토지ㆍ조세제도 개혁 ▦4민 평등화ㆍ봉건적 특권의 폐지 ▦징병제 실시 ▦신식교육 실시, 서양문물 도입 등이 골자인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일본은 근대적 통일국가로 변모한다. 천황은 민중과 호족의 지지를 얻기 위해 바쿠후 체제에 비해 혁신적인 개혁을 단행한다. 통일국가 건설, 중앙정부의 강화, 부국강병을 실천 방침으로 학제(學制)를 발포하고 신분에 관계없이 의무교육제도와 국민개병제(皆兵制)를 실시하고 농민의 토지소유권을 인정한다. 특히 메이지 정부는 그동안 농업의존적 경제구조를 산업화의 기치를 내걸고 전력산업과 통신산업 발전에 치중한다. 1872년 최초로 철도가 개설된 이래 1890년까지 일본 전역에 2,250㎞의 철도가 부설됐으며 전국 주요도시에 전신선이 가설된다. 정부의 재정지원과 1882년 도입된 유럽식 은행제도에 힘입어 사기업의 활동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로 방향을 틀어 천황제적 절대주의를 국가구조의 전분야에 실현하면서 야욕을 드러낸다. 결국 일본은 1894년에 청일전쟁, 1904년에는 노일전쟁을 도발한 데 이어 그 다음은 조선을 무력으로 합병하고 만다. 100여년이 지나 메이지유신은 한국으로 건너와 다시 살아 숨쉰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나는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이지만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의 근대화에 앞장섰던 지사들의 나라를 위한 정열만큼은 잘 알고 있다. 그들 지사와 같은 기분으로 해볼 생각이다”며 메이지유신을 차용, 한 시대를 풍미한다.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원도 지난해 노사모 강연에서 메이지유신을 예로 들며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112명이 했다. 그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사람이 42살이었고 가장 적은 사람이 17살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라며 “개혁 주체세력이 있어서 메이지유신이 성공했고 우리도 개혁 주체세력이 있어야 한다”고 개혁 주체론을 폈다. 그래서 역사는 돌고 돈다. /박민수ㆍ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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