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진영욱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
"중소·중견기업 지원 50% 유지… 13개 신성장업종에 중점 둘 것"산업·기업銀도 민영화하면 中企위한 마지막 보루 될 것의료기기·반도체·철도 등 고용효과 큰 업종 집중 지원도로 등 SOC금융 분야서도 글로벌 플레이어 도약 예상
대담=김영기 경제금융부장 young@sed.co.kr
정리=이철균기자 fusioncj@sed.co.kr
김능현기자 nhkimchn@sed.co.kr
사진=이호재기자 s020792@sed.co.kr
진영욱(62ㆍ사진)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오랜 관료 생활과 한화증권 사장 등 민간 금융기관, 공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두루 거쳤다. 관직과 민간 CEO를 동시에 경험한 국내 몇 안되는 CEO 중 한 명이다. 이 때문에 그의 생각 하나하나는 정부와 민간의 영역을 두루 넘나들고 사고의 깊이도 그만큼 깊다.
13일 서울경제신문과 단독 인터뷰를 갖는 자리에서도 그의 '내공'은 여실히 드러났다.
진 사장은 무엇보다 정책금융의 방향에 대해 시장친화성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시장경제와 다소 동떨어진 정책금융을 하곤 했던 것도 사실"이라며 "지금은 시장친화적인 정책금융을 해야 할 때"라고 얘기했다.
그런 줄기에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몇 차례나 강조했다. 진 사장은 "일반 시중은행, 하물며 기업은행과 산업은행도 하지 못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부분이 있을 것이고 이를 정책금융공사가 맡을 것"이라며 "전체 여신 가운데 중소ㆍ중견기업의 비중을 50% 이상으로 반드시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신성장동력산업의 도우미 역할을 하기 위해 13개 업종에 대한 정밀지원계획을 수립ㆍ시행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9월 정책금융공사 수장에 오른 진 사장에게서 정책금융공사의 장기 비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매각, 정부의 고배당에 대한 아쉬움 등을 들어봤다.
중소기업 마지막 보루… 전체 지원액 중 50% 이상 비중 둘 것
정책금융공사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최종 소비자(엔드 유저)와 직접 연결된 일이 거의 없어 그리 낯이 익지 않은 것이 사실. 그래서 진 사장에게 먼저 "정책금융공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질문을 던져봤다.
"저도 같은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21세기에 정책금융공사라는 금융공기업을 만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금융공기업의 근본적인 목적은 시장경제의 부작용을 막는 것이에요. 시장은 경기 사이클에 순응하는 행태를 보입니다. 그게 오히려 경기진폭을 심화시키죠. 이에 대한 안전판 구실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정책금융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을 지원해줄 금융기관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바로 정책금융공사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 시장은 같은 줄기에서 "녹색산업과 같은 신성장동력산업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일반 금융기관이 돈을 지원하기 어렵다"면서 리스크는 크지만 성장성이 있는 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데도 중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진 사장은 그러면서 중소기업 지원에 대한 정책금융공사의 역할을 누누이 강조했다.
"정책공사가 중소기업 지원에 마지막 보루가 될 것입니다. 정책금융의 핵심 축이던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은 언젠가 민영화가 될 것입니다. 두 기관의 민영화로 공백이 생길 수 있는 중소기업금융을 정책금융공사가 메우겠습니다."
지난해 정책금융공사의 여신 11조5,146억원 가운데 중소기업 지원은 4조3,529억원에 달했다.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액도 1조4,795억원에 이른다. 전체 지원금액의 50.6%가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지원된 것이다.
진 사장은 "앞으로도 중소ㆍ중견기업 지원비중을 50% 이상을 반드시 맞추며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견기업 전문 금융회사 필요… 정밀 지원할 것
중견기업 지원을 특화할 계획도 내비쳤다. 중소기업에서 벗어났지만 대기업으로 성장하지는 못한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의 자금지원이 주로 중소기업에 집중돼 있다. 중소기업에서 벗어나는 순간 오히려 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고 진단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서 벗어나는 순간 정부의 지원이 끊기면서 오히려 생활에 곤란을 겪는 차상위계층의 역설이 중견기업에도 해당된다는 얘기다.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중견기업이 많이 나타나야 산업구조가 튼튼해집니다. 중견기업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전문 금융회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중견기업 지원은 상당히 정밀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진 사장은 "중견기업의 범위가 너무 넓은데 상호출자제한군(대기업집단)에 포함되지 않은 기업은 전부 중견기업"이라면서 "정책금융공사가 중점적으로 지원할 기업군을 (정밀하게) 선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기업도 지원대상은 되는데 철저하게 신성장동력산업 분야로 국한했다.
"공사는 녹색성장위원회가 지정한 녹색성장선도 금융기관입니다. 탄소배출감축산업 등 녹색산업을 포함해 13개 업종의 신성장동력산업을 중점적으로 지원할 계획입니다."
정책공사는 현재 고용창출 효과가 큰 13개 업종을 선정해놓았는데 정보기술(IT), 바이오, 디스플레이 업종들이 두루 망라해 있다. 구체적으로는 금속주조업, 반도체제조업, 통신ㆍ방송장비 제조업, 의료용 기기 제조업, 철도장비 제조업, 청도운송업, 전기통신업,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이 포함돼 있다.
SOC금융 분야 글로벌 플레이어 될 것
진 사장은 "도로ㆍ철도망ㆍ발전소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금융은 정책금융공사가 비교우위가 있는데 그 부문에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SOC금융의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겠다는 것이다. 자신감도 높았다. 국제금융시장의 변화로 기회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고속도로ㆍ고속철도ㆍ항만ㆍ발전소 등 SOC금융은 유럽이 장악해왔습니다. 유럽이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최근에는 일본이 그 자리를 잠식하고 있고 우리에게도 기회가 올 것입니다."
해외진출 시장으로 진 사장은 예상 밖에 미국을 꼽았다.
"미국은 인프라의 나라입니다. 한창 잘 나가던 과거에는 사방에 고속도로 천지였습니다. 이게 미국 경제를 떠받친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엉망이에요. 맨해튼으로 연결되는 길을 보면 얼마나 노후된 지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인프라에 투자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앞으로 인프라 건설에 재정을 투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국내 건설회사가 참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 대비해 미리 금융지원을 준비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래서 미리 인력들을 해외 선진 금융기관에 파견하고 있다.
진 사장은 "싱가포르가 SOC금융 분야에서는 아시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데 싱가포르를 포함해 일본 금융기관 등에 직원을 파견,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화자금 조달은 충분히 여유가 있는 만큼 흐름을 봐가면서 진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빌려놓은 외화는 충분합니다. 상반기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요. 외화자금 수요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여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하반기에는 10억달러 이내에서 조달할 것입니다."
정책금융공사는 지난해에는 15차례에 걸쳐 20억달러의 외화자금을 확보했고 올해는 2억6,800만달러의 외화를 조달했다.
中企 줄 돈을 배당으로 나라곳간 넣어서야
최근 논란이 됐던 정부의 고배당에 대한 질문에 진 사장은 주저함이 없었다.
"형편이 괜찮으면 재정확충 측면에서 얼마든지 정부에 배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금유입이 없는 상황에서의 배당은 다소 문제가 있습니다."
정책금융공사는 올해 당기순이익의 22%인 1,219억원을 정부에 배당했다. 높은 수준이다. "정책금융공사가 산은금융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 산은금융에서 이익이 나다 보니 지분법평가이익에 따라 공사도 서류상 이익이 났어요. 하지만 공사의 실질적 이익은 지난해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매각에 따른 이익이 대부분입니다. 지분법이익까지 감안해서 배당이 이뤄지다 보니 지난해는 채권을 발행해 배당하기도 했습니다. 빚을 내서 배당을 한 셈이죠."
진 사장은 그러면서 배당 기준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금융공사는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ㆍ신성장동력산업 등에 지원해야 하는데 이들에 지원해야 할 돈을 빼서 복지에 쓰겠다는 얘기입니다. 그런 부분은 정부에서 판단을 잘못한 것입니다."
정부는 이미 결정된 부분이었기 때문에 정책금융공사 등의 항변에도 배당은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진 사장은 "정부도 지분법평가이익까지 포함해 배당을 책정하는 데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면서 "내년부터는 이 부분이 좀 개선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배당기준이 개선될 것이라는 얘기다.
농협 현물출자 과세, 관련 법규 개정 필요
정책금융공사가 농협에 현물출자를 하면서 발생하는 세금 문제 역시 진 사장은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금융공사는 보유하고 있는 도로공사의 주식 5,000억원과 산은금융주식 5,000억원 등 모두 1조원을 농협에 현물출자할 계획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200억원의 세금부담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현물출자를 하면서 증권거래세 및 출자하는 주식의 양도차익에 대한 법인세가 200억원가량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돈을 받는 농협은 세금을 감면하고 돈을 출자하는 정책금융공사에는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농협 사업구조 개편을 위해 정부가 결정한 사안이고 정책금융공사는 방침에 맞춰 출자를 진행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규모의 과세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진 사장은 "조세제한특례법 등 관련 법규 개정을 통해서라도 세금비용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변했다.
'유아기' 정책금융공사 정체성 확립에 부심… 경영전략 컨설팅도 시작
■ 진 사장의 요즘 고민은
성장기로 따지자면 한국정책금융공사는 '유아기(Infancy)'다. 지난 2009년 10월 산업은행에서 분리된 지 이제 갓 2년7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백과사전은 유아기를 이렇게 정의한다. '임신에서부터 3세까지의 기간을 가리키며 부모에 대한 심리적ㆍ신체적 의존상태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조절되는 타자에 대한 감각을 갖는 등 독립성을 지난 한 사람의 개인으로 성장한다'. 쉽게 말해 정체성을 확립하는 단계라는 얘기다.
정책금융공사 2대 사장인 진영욱 사장의 가장 큰 고민거리도 정체성 확립이다. 설립근거인 '한국정책금융공사법'을 보면 공사의 역할은 광범위하다. 중소기업 자금조달 지원, 지역개발, 사회기반시설 확충, 신성장동력 산업 육성, 여기에 금융시장 안정까지 거의 무제한 적인 역할을 부여 받았다.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처럼 중소기업 지원은 기업은행이,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 지원은 한국수출입은행이 선도하는 상황에서 정책금융공사가 이름에 걸맞은 역할정립을 하기에는 쉽지 않다.
정책금융공사가 새로운 역할을 찾아내지 못한 채 '모태' 격인 옛 산업은행의 역할을 재연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체성을 되돌아보기 위해 정책금융공사는 경영전략 컨설팅을 받기로 했다. 최근 입찰 공고도 냈다. 컨설팅 내용은 '설립 이후 성과 점검' '대내외적 요구를 반영한 올바른 영업방향 설정' '정책금융 수행을 위한 적정 포트폴리오 수립' '인력 수급 및 조직운영 방안' '중장기 발전전략을 반영한 공사의 비전 재정립' 등이다. 컨설팅 예산은 최대 5억원, 공기업인 정책금융공사가 억대의 돈을 지출하며 컨설팅을 받는 것은 그만큼 정체성 확립에 대한 절박함을 보여준다.
진 사장은 "컨설팅 결과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는 않겠지만 컨설팅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며 "내년까지는 비전 설정을 마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나름의 비전은 제시했다. 그는 "향후 중소ㆍ중견 기업 여신을 50% 이상 유지하고 인프라스트럭처 금융 분야의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하겠다"고 강조했다.
자산건전성도 정책금융공사의 고민거리다. 정책금융공사는 산업은행에서 분리되면서 한국도로공사ㆍ산은금융지주ㆍ현대건설ㆍ하이닉스ㆍ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의 주식을 자산으로 받고 산업은행이 발행했던 산업금융채권(산금채)를 부채로 이전 받았다.
최근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주식 매각으로 자산건전성이 좋아졌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실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공사 내부의 판단이다. 산업은행에서 넘겨 받은 산금채 금리가 7~8%대에 달해 이자상환도 벅찬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책금융공사가 정부의 고배당 요구나 산은지주 주식의 농협출자에 볼멘소리를 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1975년 행시 16기로 공직에 입문한 진 사장은 재정경제부 국제금융담당관ㆍ금융정책과장ㆍ은행과장ㆍ국제금융과장 등 금융 분야 요직을 두루 지냈다. 또 1999년 한화증권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신동아화재해상보험 부회장, 한화손해보험 부회장, 한국투자공사(KIC) 사장 등을 거치면서 금융정책과 금융실물에 정통하다. 명석하고 합리적인 일처리로 경제관료 시절 부하 직원들로부터 신망도 두터웠다. 부인 김정희씨 사이에 1녀.
◇약력
▦1951년 서울 출생 ▦1970년 경기고 졸업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행정고시 합격(16회) ▦1978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1984년 텍사스대오스틴교경영대학원 석사 ▦1997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담당관ㆍ금융정책과장 ▦1998년 재정경제부 본부 국장 ▦1999년 한화증권 대표이사 ▦2003년 신동아화재해상보험 대표이사 ▦2006년 한화손배보험 부회장 ▦2008년 한국투자공사 사장 ▦2011년 2대 한국정책금융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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