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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매화와 벚꽃-양창훈 현대아이파크몰 대표


양창훈 현대아이파크몰 대표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제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평생을 춥게 지내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질이 변하지 않고/ 버들가지는 백번을 꺾여도 새로운 가지가 돋아난다’

조선 중기의 문장가 신흠은 선비의 기개를 매화에 비유했다. 또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의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은 수많은 사대부들이 묵매화 한 켠에 새겨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던 명문장이었다.

조선 성리학의 대부 퇴계 이황은 “봄이 와서 매화가 피는 것이 아니라 매화가 피면서 봄을 밀어올린다. 춥다고 서둘러 향기를 내 나비를 유혹하지 않고, 추운 시절을 견디며 빛과 온기를 돋우어 봄을 피어내는 꽃이 매화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대의 소문난 매화 애호가였던 퇴계는 요즘 말로 얘기하면 ‘광(狂)’에 가까운 마니아라고 할 만큼 매화에 심취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매화는 고결함과 기품, 인내의 꽃이었다. 거센 겨울바람이 여전히 살갗을 아리는 이른 봄날 피어나 어느덧 봄이 왔음을 알리는 꽃. 춥고 긴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꽃망울은 충절(忠節)과 인고(忍苦)를 상징했다. 꽃은 화사하지만 요란하지 않고 향기는 옅지만 은은해 잔향(殘香)이 더욱 깊어 선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매화가 봄의 시작을 알린다면 벚꽃은 봄의 만개와 함께 핀다. 봄의 절정에서 피어나는 화려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렇기에 꽃놀이하면 보통 벚꽃 구경을 최고로 친다. 진해와 팔공산, 섬진강, 청풍호, 소양강, 여의도 등 전국의 벚꽃 명지는 상춘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화려함만큼 낙화(洛花)도 순간이다. 일 년의 기다림 끝에 피어나, 찰나의 순간을 작열하듯 살다 간다. 봄비라도 내릴라치면 바람과 함께 우수수 떨어진다. 오세영 시인은 벚꽃을 이렇게 묘사했다. ‘죽음은 다시 죽을 수 없음으로/ 영원하다/ 이 지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영원을 위해 스스로/ 독배를 드는 연인들의/ 마지막 입맞춤 같이/ 벚꽃은/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벚꽃은 낙화마저 아름답다. 하나하나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잎이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다. 꽃비가 되어 내리는 풍경은 벚꽃 놀이 중 단연 일품이다. 불꽃처럼 타오른 짧은 생애에 미련조차 남기지 않고 떠나는 것이 또한 벚꽃이다.

지난 주말 아내와 윤증로로 벚꽃 구경을 다녀왔다. 절정의 꽃길을 걷는 수많은 연인과 가족, 친구들의 모습이 봄 햇살만큼이나 맑고 따사로왔다. 짧은 봄의 향연을 담으려는 듯 카메라 셔터가 더욱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봄의 정령은 벌써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삭풍을 견디고 피어난 꽃망울에서 잃어버린 용기와 삶의 희망을 주는 매화. 그리고 지난날의 추억과 일생의 덧없음을 떠올리게 하는 벚꽃. 매화와 벚꽃에서 우리네 인생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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