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회구성원에게는 납세의무가 있다. 이는 헌법에 규정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에게 소득세 등 직접세 납세의무를 부여하는 것과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는 다른 개념이다. 국민개세주의는 소득이 적은 사람도 조금이라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어서 각자 소득형편에 따름을 전제로 하는 납세의무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최근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 우리나라는 면세점(免稅點ㆍ세금을 면제하는 기준이 되는 한도)이 너무 높아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점을 자주 소개하고 이 과정에서 국민개세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부자 증세론을 반박하는 논리다. 과세 형평성 순소득으로 따져야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근로소득자 1,516만명 가운데 39.1%(592만명), 사업소득자 523만명 가운데 47.2%(247만명)이 소득세를 납부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국세청에 소득을 신고한 근로ㆍ사업소득자 2,039만명 중 41.1%(839만명)가 과세기준에 미달해 세금을 내지 않았다. 소득세 면제자는 지난 2009년 812만명보다 27만명이 늘어났다. 국가채무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2008년 30.1%에서 지난해 36.1%로 늘었고 소득의 양극화, 저출산ㆍ고령화 사회 진전으로 향후 우리나라의 재정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증세가 필요하고 특히 소득세를 강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면세점을 낮춰 소득 하위계층이 조금이라도 더 세금을 부담하게 하는 방식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연 이론적으로 옳고 경제현실에 부합할까.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치적으로 결정돼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경제나 조세법의 이론적 근거를 찾아본다면 가장 접근하는 논리가 '순소득과세 원칙'일 것이다. 이는 소득창출 과정에 투입된 노력의 비용, 즉 필요경비를 소득세 과세표준에서 줄여주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원칙이다. 필요경비 개념에는 한 경제주체가, 가족이 있으면 가족과 함께 살아나가기에 적절한 최소한의 생계비(주관적 필요경비)도 포함된다. 주관적 필요경비는 소득창출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나 생존이 유지돼야 비로소 소득활동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 정당성이 인정된다. 따라서 이 원칙에 입각하면 적절한 수준의 생활비를 공제하고 남은 소득부분에 대해서만 과세할 수 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소득세법이 허용하는 면세점에 해당하는 월급여 173만원 수준은 현재 국내에서 4인 가족의 적절한 생활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렇게 보면 순소득과세 원칙에 입각한 과세는 오히려 면세점의 상향조정을 요구한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경비를 빼고 남은 소득에 대해 어떻게 과세하는 것이 효율적이며 공평한가를 따져야지 삶에 필요한 기본경비를 앗아가면서 공평과 효율을 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소득세 면세점 되레 상향조정 필요 근로소득세나 종합소득세 신고에서 과세자 비율이 절반을 간신히 넘는 정도라는 것이 정책당국자들이나 학자들 사이에서 자주 지적된다. 이 비율이 왜 중요한가. 이러한 비율은 오히려 소득이 상위계층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것이지, 소득세 면세점을 낮춰 과세자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되는 자료는 아니다. 국민개세주의를 간접세와 직접세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파악하는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높은 간접세 비중과 역진적 세부담으로 인해 서민들은 사실상 이미 지나칠 정도로 국민개세주의에 노출되고 있다. 작금의 현실에서 국민개세주의 개념은 소득 상위계층에게 그들의 능력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 국가재정 조달에 참여하도록 세부담을 늘리려는 입법적 움직임을 방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오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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