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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에너지정책] 1부 전력, 밑그림 다시 짜라 <1> 균형추 놓쳐버린 전력공급

■ 원수답이 부른 블랙아웃 위기<br>문제도 해법도 원전서 출발… '수출 신화' 강박증도 화근<br>수요 줄일 생각없이 대형 발전소만 고집<br>LNG 공급확대 등 중장기 체질개선 시급

정홍원(오른쪽 세번째) 국무총리가 3일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를 방문해 전력수급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배우한기자


지난해 12월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던 홍석우 당시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급거 귀국해 전남 영광으로 내려갔다. 사상 초유의 위조 부품 파동으로 가동이 중단된 영광 원자력발전소 5ㆍ6호기를 재가동하지 못하면 겨울 전력수급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홍 장관은 당시 "안전이 답보되지 않으면 영광 원전을 재가동하지 않겠다"고 누차 강조했지만 영광 원전은 그달 말부터 논란 속에 결국 재가동됐다. 국내 전력수급 시스템에서 원전으로 생긴 문제를 해결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결국 원전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전력공급을 원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단적인 모습이다.

◇되풀이되는 사고…재연되는 아마추어 행정=불과 반 년 만에 데자뷔처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시 불거진 위조 부품 파동에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멈춰섰고 해외 출장 중이던 윤상직 산업부 장관은 헐레벌떡 돌아왔다.

전력당국의 최대 현안은 지난해부터 고장으로 멈춰서 있는 한빛(영광) 3호기와 한울(울진) 4호기를 재가동하는 것. 한빛 3호기는 제어봉 안내관 균열로 지난해 11월부터, 한울 4호기는 증기발생기 전열관 균열로 1년째 정지돼 있다. 재가동 승인권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있지만 산업부는 하계 전력수급대책에 이미 2기 원전의 재가동 계획을 집어넣었다. 원전 없이는 갈수록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측면이 작용했다.

그렇다 보니 원전이 자초한 위기를 원전이 해결하는 이 아슬아슬한 게임이 벌써 몇 번째 벌어지고 있다. 올여름 정부가 8월부터 대기업 강제절전에 돌입하기로 했지만 당장 6~7월은 한빛 3호기가 재가동되지 않을 경우 대규모 정전사태(블랙아웃)를 맞을 상황이다. 안전이 최우선으로 고려돼야 할 고장 원전의 재가동이 전력위기를 핑계로 또다시 쫓기듯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공급 일변도 수급정책과 원전 수출 강박증=근본적으로 공급 중심의 전력정책이 이 같은 원전 해바라기 국가를 만들었다.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줄여나갈 고민을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그 수요를 맞출 생각만 하다 보니 원전과 같은 대형 발전소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전기 소비량은 세계 9위이며 발전원에서 발전단가가 낮은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달한다. 싼 전기요금 덕택에 전력 소비량은 지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5.6%씩 증가하고 있다. 여름철 전력피크 냉방부하는 이제 1,700만kW를 넘어섰다. 이는 원전 17기를 지어야 감당할 수 있는 규모. 석탄이나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로는 수십 기가 필요하다.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은 "에너지 정책이 공급 중심으로 가면 규모의 경제에 따라 원전과 같은 대형 에너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며 "최근에 정부가 수요관리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이는 진정한 수요대책이라기보다 특정 기간 민간과 기업에 무작정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 정부가 아랍에미리트(UAE)로의 원전 수출에 성공하면서 원전을 성역화한 것도 이번 위기를 자초한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원전 확대가 국가의 당면과제가 되는 사이 원전을 운영하는 구성원들에 대한 견제는 약해졌고, 결국 대규모로 썩은 환부를 드러내고 말았다.

◇수요정책 다시 세우고, LNG 확대 등 검토할 때=정부는 당초 내년이 되면 설비 예비율이 16%를 상회해 전력사정이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봤다. 올해 신월성 2호기와 신고리 3호기, 내년에 신고리 4호기를 가동하는 대형 원전 공급 그림을 짜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계획은 벌써부터 틀어지고 있다. 가동을 앞둔 3기의 원전 모두 이번 위조 부품 파동과 맞물렸다. 정권 차원에서 대대적인 원전 비리 재조사에 나선 가운데 이들 원전의 가동에도 상당한 진통이 수반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의 전력수급 정책 방향을 수요관리 중심으로 다시 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전력 설비 공급에 집착하는 현재의 방식은 말 그대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며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발전기 가운데 27%는 20년 이상 된 노후 발전소들이다. 강희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우리나라가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성장을 해오면서 어쩔 수 없이 전력 공급 위주로 간 부분이 있었지만 이제는 전기요금 등 전력수요 정책을 현실화할 때가 됐다"며 "단기적으로 산업계가 힘들기는 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체질개선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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