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에 사는 직장인 박모(34)씨는 얼마 전 아내와 장을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파, 배추 등의 가격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순간 농산물과 관련된 펀드에 투자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박씨는 다음날 종합자산관리계좌(CMA)에서 놀고 있었던 자금을 모두 농산물 펀드에 몰아넣었다.
전세계적인 이상기후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그 동안 어느 곳에 투자해도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은 시장 환경에서 농산물 가격 상승은 새로운 투자처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투자할 대상을 찾아 방황하던 투자자들에게 그야 말로 가뭄 속의 단비인 셈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밀ㆍ콩ㆍ옥수수의 자급률이 극히 낮아 농산물가격 폭등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밀은 빵과 과자, 라면 등의 주 원료기 때문에 음식료품의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벌써부터 전망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최근과 같은 상품 부재의 시기에 에그플레이션를 소비가 아닌 투자로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지난 5월부터 농산물에 투자하는 금융상품들의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어 관련 펀드들의 수익률이 상승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기후로 촉발된 이 같은 농산물가격상승이 단기간에 해결되지 않을 조짐이다. 지난 7월 농산물관련 펀드들은 시장에서 독주했다. 다른 투자처를 찾지 못한 투자자들이라면 과감히 눈을 돌려 농산물펀드로 눈을 돌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판단일 듯 하다.
최근 유럽 재정위기로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 갈증을 호소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전세계적인 기상 이변으로 농산물 가격이 급등하고 관련 주식과 펀드 수익률이 고공행진을 하자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로 연초 한 때 2,050포인트까지 치솟았던 코스피지수는 지난 25일 1,760포인트대로 무너지며 연중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갈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투자자들은 변동성이 커진 시장에서 주식과 펀드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다. 실제로 올 들어 국내주식형펀드로부터 빠져나간 자금은 1조6,000억원을 넘어섰으며 지난달 일평균 주식 거래대금은 4조706억원으로 2010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농산물 관련 주식과 펀드의 수익률은 최근 급상승하고 있다. 전세계적인 기상이변이 농작물 작황을 악화시키면서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특히세계의 곡물생산공장인 미국이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으면서 지난 24일 기준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된 옥수수선물가격은 부셀당 7달러90센트까지 뛰는 등 올 들어 19.9%나 급등했다. 콩과 밀도 각각 30% 이상 오름폭을 보였다.
농산물가격이 폭등하자 국내증시에서도 농업 관련주들이 폭등하고 있다. 비료회사인 조비와 효성오앤비는 이달 들어 코스닥시장에서 20% 이상 급등세를 보이고 있고 농우바이오는 5% 넘는 상승폭을 그렸다.
농산물관련펀드들도 수익률이 빠른 속도로 치솟고 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24일 기준 우리애그리컬쳐인덱스플러스특별자산은 이달 들어 23.65%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신한BNPP애그리컬쳐인텍스플러스자1(21.19%)와 삼성KODEX콩선물(H)특별자산상장지수펀드(10.10%)도 20% 이상 오르며 최근 폭등하는 곡물가에 힘입어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이외에 미래에셋TIGER농산물선물특별자산상장지수펀드(19.54%), 미래에셋로저스농산물지수특별자산종류B(15.27%), 신한BNPP포커스농장물자1(18.83%), 산은로저스애그리인덱스1(9.98%), 미래에셋퇴직플랜농산물40안정형(6.55%), 블랙록월드애그리컬쳐(4.02%) 등 농산물관련 모든 펀드상품들이 큰 폭의 수익률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같은 기간 국내주식형펀드의 수익률 -4.02, 해외주식형펀드의 수익률 -0.15%와 비교하면 엄청난 초과수익을 보인 셈이다. 김태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가뭄이 미국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어 밀과 옥수수 등의 공급량이 감소하고 있다"며 "농산물시장에 투기세력들도 가세하고 있는 상황이라 농산물관련 상품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가뭄이 지속되면서 농산물가격 폭등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 기상청(NOAA)은 최근 미국 지역의 가뭄은 10월까지 중서부지역에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지난주에 발간된 미국 농무부(USDA)도 주요작물 작황상태(crop condition)를 발표하면서 옥수수와 대두의 작황상태가 지난 2008년ㆍ2010년과 비교해 크게 악화돼 곡물작황부진이 지속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윤교 토러스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농무부와 기상청(NOAA)의 자료에 따르면 옥수수와 대두의 우수품질 비율은 지난 5년 동안 평균의 절반 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10월말까지 가뭄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가을수확에 대한 전망도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이 연구원은 또 "러시아와 주변 소맥 주요생산국도 홍수로 인해 생산량전망을 22% 하향 조정한 상태라 전세계 곡물가격에 폭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농산물 관련 상품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석진 동양증권 연구원은 "올해 미국은 지난 1934년 이후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어 밀과 옥수수공급이 감소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글로벌 자금이 원자재에서 가격상승 모멘텀이 있는 농산물로 이동하는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장춘하 우리투자증권 연구원도 "재고와 생산량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점진적인 농산물가격 상승세가 유효해 보인다"며 "농산물에 투자하는 상품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장 연구원은 이어 "꼭 가뭄으로 인한 폭등이 아니더라도 신흥국들의 경제성장과 경기부양에 따라 농산물의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라며 "수요가 뒷받침되는 시장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도 농산물가격은 상승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농산물가격이 기후조건에 따라 급격히 변동할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고 투자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은경 제로인 연구원은 "농산물관련상품은 농산물의 선물가격에 따라 움직인다"며 "가뭄이 단번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사정이 나아지면 선물가격이 다시 떨어질 수도 있어 투자를 할 때 미국 등 주요 농산물 생산국의 기후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농산물가격이 급등해 최근 남반구에서 옥수수 등의 경작을 크게 늘리고 있다"며 "내년에 추가공급이 나올 수 있는 내년 상반기 이후에는 농산물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선물에만 투자 땐 하락 위험 커 채권혼합형으로 안전성 높여야 구경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