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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고지전

싸우는 이유마저 잊은 잔혹한 전쟁터


'고지전'은 헐리우드 대작 영화들의 파상공세 속에 나오는 한국 휴먼 영화다. 1950년 6월 25일 시작해 공식적으로 1953년 7월 27일까지 37개월간 진행된 한국전쟁. 국가간의 영토전쟁이 아닌 단일민족간 전쟁으로는 사상 최대인 400만명의 사상자를 낸 전쟁. 하지만 그 400만 사상자 가운데 300만 명이 휴전협상이 진행중이던 기간에 희생됐다는 사실은 그간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남북이 1951년 휴전협정을 시작한 이래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공식 발효되기 전 2년 2개월간의 기간 동안 최전방에서는 한치의 땅을 더 확보하기 위해 백마고지 전투 같은 대규모 공방전이 숱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백마고지 외에 다른 고지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거의 알지 못한다. 고지전은 바로 그 지점에 주목했다. 뭔가 뻔할 것 같은 소재 속에서 담담히 풀어가는 얘기가 이 영화의 강점이다. 영화는 의학을 전공하다 전쟁 후 소위로 입대한 방첩대 중위 강은표(신하균)라는 한 엘리트의 눈을 통해 전쟁 이야기를 전한다. 휴전이 되면 전역할 예정인 은표는 남북회담 중의 실수를 이유로 '애록고지'를 놓고 전투를 벌이던 동부전선 10사단 3연대 1대대 1중대, 일명 '악어중대'로 갑자기 전출된다. 해당 중대에서 고향에 보낸 편지가 인민군이 보낸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됐고, 그 부대 내 인민군과 내통하는 자를 알아내라는 게 그가 맡은 임무다. 그곳에서 뜻밖에 2년 전에 헤어져 죽은 줄 알았던 대학 친구 김수혁 중위(고수)를 만난다. 수혁은 그간 혁혁한 공로가 인정돼 이등병에서 중위까지 진급해 있었고 악어중대의 실질적 리더이자 전쟁 병기처럼 변해 있었다. "살아서 집에 가자"는 이곳 중대원들의 갈망 때문인지 장교들 중에는 매일 필로폰을 투약하며 전투에 나서는 사람까지 있었다. 왜 악어중대일까. 악어는 50마리 정도의 알을 낳는데 1~2마리만 어른 악어로 자란다는 점을 따와 살아나가기 힘든 애록고지 전투를 빗대 미군이 붙여준 중대의 별칭이다. 그만큼 애록고지는 남ㆍ북 병사들이 서로 얼굴을 알 정도로 주인이 자주 바뀐 상황. 고지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었냐는 은표의 질문에 "30번까지는 세봤는데 그 이상은 모르겠다"는 한 병사의 대답 속에 이곳의 치열한 전투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은표는 이곳에서 결국 해당 중대에서 군사우편을 통해 고향에 보낸 편지가 왜 인민군이 보낸 것으로 돼 있는지, 해당 장교는 왜 필로폰을 맞아야만 전투를 할 수 있는지 등을 속속 알아내게 된다. 은표와 수혁이 헤어진 지난 2년 동안 그에게 혹은 그들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살아남는 것이다. 우리는 빨갱이랑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것이다"(악어중대 장교)"너무 오래돼서 싸우는 이유를 잊어버렸다"(인민군 중대장)는 말들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650m 실제 고지에서 영화를 만들어낸 장훈 감독은 "볼거리로 소비되는 영화가 아니라 사람들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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